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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명黎明

6장 머나먼 강

려명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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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있어요?”

윤기철이 묻자 장원석이 주머니에서 지갑부터 꺼냈다.

“얼마?”

“얼마 있는데요?”

공단 매점은 상품값을 달러로 받기 때문에 과장들은 대부분 달러를 갖고 있다.



“한 300달러 되나?”

“오늘 환율로 바꿔드릴 테니까 다 주세요.”

그러면서 윤기철이 지갑을 꺼냈더니 지나던 시설과장 오석준이 물었다.

“아까도 나한테 200달러 바꿔가더니만, 뭐 살 것이 있다고 그래?”

“술 좀 몇 병 사가려고요.”

“그거 누가 마신다고.”

윤기철이 장원석에게 원화를 건네고 대신 달러를 받았다. 10달러짜리, 5달러짜리까지 있어서 꽤 두툼했다. 오후 10시 반이다. 특근을 끝낸 직원들이 돌아온 숙소는 떠들썩했다. 다음 달 초 100명이 충원된다는 결정이 난 후부터 회사 분위기는 밝아졌다. 개성공단 파견 요원들에게 특별 보너스가 지급된다는 소문도 났다.

방으로 들어간 윤기철이 구입한 달러를 세어보았더니 575달러다. 100달러짜리가 두장, 나머지는 소액권이다. 정순미가 쓰기에는 이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달러를 세던 윤기철이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는 머리를 들었다. 주방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또 소주를 마시는 모양이다. 대개 장원석이 바람을 잡으면 모이는데, 마시자고 부르지는 않는다. 달러를 모아 쥔 윤기철이 심호흡을 했다. 내일 오후에 허가증을 받아 개성을 떠나면 정순미 또한 내일 밤에 개성을 떠날 것이다. 하나는 허가증을 받고 떠나지만 또 하나는 탈출이다.



개성은 직할시여서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더구나 명승지가 많아서 선죽교나 표충비, 공민왕릉과 고려의 여러 왕과 왕후의 무덤, 개성첨성대와 개성성균관 등이 학생들의 견학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밤 10시 40분, 정순미가 선죽동 집에서 500m쯤 떨어진 남대문 뒤쪽의 작은 공터로 들어섰다. 공터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지만 수백 명의 남녀가 움직인다. 공터 옆쪽의 골목에도 남녀가 웅성거렸는데 이곳이 바로 장마당이다. 어둠에 익숙한 정순미의 눈에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앞에 펼쳐놓은 상품까지 다 보였다. 남조선의 드라마 테이프, 중국에서 들여온 휴대전화에 짝퉁 명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정순미도 이곳에서 남조선 드라마 테이프와 짝퉁 운동화, 남조선 라면까지 산 적이 있다. 회사에서 받아온 초코파이를 판 적도 있기 때문에 거래는 익숙하다.

“뭐 사려고?”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물었는데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40대쯤으로 어두웠지만 단정한 차림이다. 이곳은 전혀 불빛이 없었지만 모두 밤고양이처럼 활동한다.

“아뇨, 그냥 구경.”

정순미가 짧게 말하자 사내가 바짝 붙어 섰다.

“남조선 드라마, 요즘 끝난 것 있는데. ‘별들의 사랑’, 10달러.”

사내를 그냥 스쳐 지나가자 이번에는 여자가 다가와 붙어 같이 걷는다. 사람이 많아 부딪치고 비켜야 앞으로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마당은 조용하다. 그저 작은 웅성거림만 울릴 뿐이다. 여자가 낮게 말했다.

“뭐, 팔 거 있어? 다 살 테니까 말해.”

“아뇨, 없어요.”

“롤렉스 15달러. 정품이야. 보위부에서 나온 거야. 뒤에 장군님 서명도 있어.”

숨을 들이켠 정순미가 걸음을 빨리 떼자 여자는 곧 사람들 사이에 묻혔다. 골목으로 들어선 정순미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양쪽 폐공장 담장에 붙어앉은 암상인 주위로 사람이 가득 몰려 서 있다. 행인은 그들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그때 정순미가 담장에 붙어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내를 보았다. 담배를 빨아들이자 얼굴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정순미가 사내에게로 다가섰다.

“아저씨.”

“아, 단골 아가씨.”

반색한 사내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잘 오셨어. 내가 ‘별들의 사랑’을 다 팔고 딱 두 개 남았어. 8달러만 내.”

40대 중반의 사내는 조선족으로 그저 성이 김씨라는 것만 안다. 정순미와 정순미 어머니하고 2년 가까이 거래했으니 그에겐 단골손님인 셈이다. 정순미가 김씨에게 바짝 붙어 섰다.

“단골 아가씨, 오늘은 뭐가 필요해?”

김씨가 묻자 정순미가 숨부터 골랐다. 이 사람을 만나려고 온 것이다.

“언제 돌아가세요?”

“왜?”

김씨가 금방 정색하더니 정순미를 보았다.

“누구, 손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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