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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요부라서? 아니, 말이 통해서!”

남자는 왜 바람을 피우나?

“그녀가 요부라서? 아니, 말이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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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영원한 미스터리, 남녀관계. 서로를 잘 안다고 믿기 쉽지만, 상대가 다른 별에서 온 사람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 그래서 남녀의 사고와 감정의 간극이 빚어내는 행동은 때론 흥미롭고, 때론 당혹스럽다. ‘마음 경영’을 위한 그 내밀한 심리 엿보기.
“그녀가 요부라서? 아니, 말이 통해서!”

일러스트·김영민

TV 드라마에선 바람피우는 남자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남자의 사정이 이해될 때가 있다. 남자가 외도 중에 괴로워 상담하러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때때로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정도는 아니다. 부인이 모르면 마음 아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남자는 상대 여자의 마음이 바뀌어 헤어지게 된 후 그것을 잊지 못하다 우울해져 병원을 찾는 경우가 차라리 더 많다. 더는 연락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연락하게 된다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부인에게 들키면 그땐 마음이 돌변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해서 흔히 ‘죄와 벌’이라고 한다. 누구를 죽인다거나 물건을 훔치면 그 행위가 죄라는 걸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벌을 받기 전까지는 그것이 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뇌물을 받고, 청탁도 받는다.

외도도 마찬가지다. 외도가 들통 나 부인의 비난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와 벌’이 아니라 ‘벌과 죄’다. 그렇다보니 외도와 관련해 남자가 상담센터를 찾는 가장 흔한 경우는 외도하다 들켜서 부인과 함께 오게 되는 상황이다.

센터에 오는 남자의 태도는 대략 두 가지로 갈린다. 어떻게든 이혼을 피하려는 경우와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황에서 부인이 하도 닦달하니 마지못해 오는 경우다.



‘죄와 벌’ 아닌 ‘벌과 죄’

외도를 한 후 이혼을 피하려 부인과 센터를 찾은 남성을 보면 그들을 지배하는 가장 주된 감정은 죄책감과 불안이다. 흔히 외도한다고 하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착한 남자도 바람이 난다. 그들의 경우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회식 후 집이 같은 방향이라 둘이서 한잔만 더 하자고 했다가 여관행으로 이어지거나 지방 출장을 함께 갔다가 외로운 마음이 들어 한 번 관계를 갖게 됐는데, 그다음에 끊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바람피우는 남자가 착하다고 하는 건 말 자체에 잘못이 있다. 하지만 불륜녀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는 가정에 충실한 남자다. 이 여자 저 여자 후리고 다닌다고 소문난 남자는 불륜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남자일수록 한번 불륜관계에 엮이면 끊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게 된다. 물론 자기도 좋아서 관계를 가진 것이기에 잘못이라는 걸 안다.

이런 남자는 일단 바람피운 게 들통 나면 그때부터는 180도 달라진다. 더욱이 부인이 현모양처인 경우 내가 미쳤었지 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울고불고 하는 부인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진다. 재산도 분할해야 하고, 이혼하면 아이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두렵다. 착한 남자는 체면도 중요시한다. 바람피우다 이혼하게 됐다는 사실은 부모에게도 알리기 싫다. 그러지 않겠다고 싹싹 빌고 죽을 때까지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의외인 것은 수도 없이 바람을 피운 남자도 막상 부인이 이혼 불사 의지를 보이면 어떻게든 헤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흔히 자신의 부모가 절대로 이혼은 안 된다고 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을 만들 수는 없다고 둘러대지만 사실은 부인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이런 남자에게 부인은 기둥과 같은 존재다. 어떤 점에선 어머니 같은 존재다. 바람피우고 밖으로 도는 것도 돌아갈 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항상 자신을 돌봐주고, 챙겨주고, 잔소리해주는 기둥이 무너지면 자신도 무너진다.

이들은 말썽을 피우는 아이 같은 심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오래 참고 지내온 부인이 이번엔 어떻게든 이혼해야겠다고 분명한 태도를 밝히면 기둥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일단 잡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한다. 재산도 분할해준다. 부부 상담도 받는다. 부인이 없다는 것, 가정이 사라진다는 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부인의 태도가 누그러지면 또다시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린다. 이들은 죽을 때 부인에게 살아생전 수없이 많은 여자를 사귀었지만 내가 사랑한 이는 당신뿐이라는 유언을 남기곤 하는데, 사실 그 말도 일정 부분은 진실이다.

흔들리는 마음

그러면 이제 마지못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살펴보자. 처음 외도 사실을 들키고 나서는 대다수 남자가 뜨끔해한다. 더 이상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남녀관계는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연애엔 상대방이 있다. 나는 헤어지고 싶어도 불륜 상대가 매달리면 마음이 약해진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기에 남자는 더는 안 만나겠다고 했으니 부인이 ‘쿨’하게 덮고 다시는 그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부인이 계속 의심하고, 확인하고, 시간이 지나도 조금만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면 바람피운 얘기를 하면서 죄인으로 몰면 점점 지친다. 부인이 의심을 하고 불륜녀에 대해 언급하면 남자는 그때마다 그 여자가 생각난다. 부인은 남편이 다시는 바람피우지 못하게 계속 확인하고 잔소리하는 것이지만, 의도와는 달리 남편으로 하여금 계속 그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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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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