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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차이 속 평등 일깨운 ‘여성해방운동 교과서’

성 차이 속 평등 일깨운 ‘여성해방운동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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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차이 속 평등 일깨운 ‘여성해방운동 교과서’

제2의 성<br>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희영 옮김, 동서문화사

공부와 운동은 물론 리더십에서도 남자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더 뛰어난 경우도 많다. 당연히 자신감, 자긍심, 열정이 넘쳐난다. 진취적이고 도전의식이 강하다. 성실하고 낙천적이면서 실용적이다. 관심 영역도 넓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지만 평등주의와 이상주의를 추구한다.

미국 하버드대 아동심리학과 댄 킨들런 교수가 2007년 제시한 신조어 ‘알파걸’의 특성이다. 미국 10대 엘리트 소녀들을 의미하는 알파걸은 ‘최상’ ‘으뜸’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그리스어 첫 자모 ‘알파(α)’와 ‘걸(girl)’을 결합한 낱말이다. ‘혁명의 딸들’이라는 별칭이 붙은 알파걸은 여성해방운동가들의 딸이나 손녀뻘이다. 은수저가 아닌, 페미니스트의 눈물 어린 투쟁의 과실을 물고 태어난 첫 세대다.

킨들런 교수는 알파걸이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원제 Le Deuxieme Sexe)이라는 책에서 예견한 대로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경제적·사회적 평등의식으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 가능성이 무한대인 여성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킨들런 교수가 말했듯이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성의 잠재의식을 일깨우고, 이후 세대에게 길을 터줬다. 알파걸을 포함해 모든 현대 여성이 이룩한 수많은 변혁이 그녀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여성은 만들어진다”

책에서 가장 상징적인 문장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이다. 이 말은 이미 1800년대에 여성참정권을 외친 여성해방의 선구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약간 다른 표현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졌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가 소크라테스의 말로 더 유명해진 것과 흡사하다. 보부아르는 서양문화권에서 ‘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넓고도 깊게 천착했다.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비대칭적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돼 있고 자유롭지 못하다. 여자와 남자가 신체적 조건에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신체적 차이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여자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자아이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기 시작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여자아이는 사회·문화적 환경 때문에 남자의 종속물이나 다름없이 길든다.

여자는 성장해가면서 사회의 강요와 구속을 한층 더 노골적으로 받는다. 그럴수록 여성은 스스로 ‘여자다움’이란 굴레를 쓰게 된다. 여성적인 것은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은 정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성은 스스로를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시각과 가치를 통해 규정된다. 남성이 지배하는 문화는 여성을 경제적, 정치적, 육체적, 정신적, 법적, 역사적으로 억압받는 존재로 만들었다.

여성이 독창적인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남성은 물론 여성도 없다. 여성은 관습에 얽매이게 된다. 자연히 여성은 불가피하게 남성의 보호나 사랑을 받으며 안주한다. 사랑의 의미도 남녀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난다. 사랑이 남자에게는 일시적인 관계이며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반면, 여자에겐 인생 자체다. 사랑의 결실인 결혼도 여성에게는 구속력을 지니지만, 남성에겐 남성 우위 사회를 떠받치는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결혼이 여성의 자유를 구속하는 현실에서는 부정돼야 한다. 남자들은 그동안 남녀 역할분담으로 인한 차별장치를 만들어두고 이를 ‘불평등 속의 평등’으로 미화해왔다. 남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성 차이 속의 평등’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보부아르 자신도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이 계약결혼은 1931년 2년간 시한부 동거로 시작됐으나 1980년 사르트르가 죽을 때까지 50년간의 ‘평생계약’으로 끝났다. 보부아르는 여성 문제의 근원을 경제력에서 찾았다. 그는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가 사회주의운동이라는 도구로 여성해방을 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부아르는 출산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모성애까지 부정하는 과격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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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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