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어느 날, 귀가 중이던 강영두(79) 씨는 운전하던 차가 한쪽으로 자꾸만 쏠리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보름 전에 잰 강씨의 혈당수치는 300~400(정상수치 70~110)mg/dℓ을 넘나드는 위험한 수준이었다. 몸이 좀 피로하긴 했지만 생활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기에 그리 심각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바로 병원에 갔었다면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후회스럽다는 강씨.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뇌경색에 이은 실명
일주일 뒤, 잠자리에서 일어난 강씨는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어지럼증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구급차로 실려 가는 동안 강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은 머리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뇨 합병증인 뇌경색. 이후 강씨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전남 장흥에 살던 강씨는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되뇌는 날이 늘어만 갔다. 그런 강씨의 재활을 위해 아내와 자녀들이 직접 나섰다. 강씨의 마비된 왼쪽 팔을 고무줄로 묶어 억지로 끌고 다녔다. 마비된 팔도 펴지고,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한 가족들의 고육지책이었다.
또한 강씨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매일 산에 올라 아내와 손자의 이름을 500번씩 부르도록 했다. 처음엔 그런 강씨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등산객들도 사정을 알고 나서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며 가며 건네는 등산객들의 격려에 강씨는 더욱 힘이 났다. 그렇게 강씨는 신체와 언어장애를 조금씩 극복해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3개월 동안의 병원 치료를 마치고 고향 집으로 돌아온 강씨는 오랜 세월 끊지 못한 술과 담배의 유혹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강씨는 또다시 쓰러졌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된 뒤였다.
당뇨에 의한 2차 합병증. 뇌경색이 시신경을 건드려 실명했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그렇게 오른쪽 눈을 잃은 데 이어 양쪽 눈에 녹내장과 백내장이 함께 찾아왔다. 각막을 기증받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엄청난 수술비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내 인생은 끝났구나.’ 막막한 절망감이 강씨를 덮쳤다.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당뇨로 떠나보낸 강씨는 자신까지 당뇨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병원에서는 혈당수치를 잘 유지해야 녹내장과 백내장이 더 심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강씨의 건강을 위해 쌀밥 대신 보리밥과 현미밥을, 육류 대신 해산물을 밥상에 올렸다.
그즈음 우연히 라디오에서 당뇨에 도움 되는 음식으로 꼬시래기를 소개하는 것을 듣게 됐다. 꼬시래기는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남도의 바다에서 서식하는 해조류. 강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식당에 가서 꼬시래기를 맛보기로 했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제법 괜찮았다.


한 달이 지난 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혈당치를 검사했다. 결과는 130. 평균수치 300을 넘나들던 이전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 2번씩 먹던 당뇨약도 하루 1회로 줄이고, 심하던 변비도 꼬시래기를 먹고 난 뒤부터 많이 좋아졌다. 지난 5월 진료 때는 의사로부터 혈당 조절을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비록 한쪽 눈은 잃었지만, 꼬시래기와 함께라면 이제 당뇨도 두렵지 않다는 강씨는 조금 더 일찍 꼬시래기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란다.
“꼬시래기는 제 혈당을 조절해주고 녹내장과 백내장이 더 심해지지 않게 도와주는 고마운 음식이죠. 하늘이 내려준 천초(天草)라고 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