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br>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월 논어의 명구절을 빌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미일 공동성명을 비난했다. “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사람을 넓게 사귀되 패거리를 짓지 않는다.” 미일 안보조약이 냉전시대의 산물이며 댜오위다오(일본 이름 센카쿠 열도)가 중국에 속한다는 근본적 사실은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이 대목을 들었다.
두 사례는 송나라 재상 조보가 임종할 무렵 황제 태종에게 아뢰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신에게 논어 한 권이 있사온데 그 반으로 폐하(송나라를 세운 태조를 지칭)를 도와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고, 그 반으로 폐하(태종을 지칭)를 도와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훗날 “논어를 절반만 읽으셔도 천하를 다스립니다”라는 말로 단장취의(斷章取義)되기도 했다. 홍정욱 전 국회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을 읽으려면 ‘한비자’를, 사람을 이기려면 ‘손자병법’을, 사람을 다스리려면 ‘논어’를, 사람을 구하려면 ‘성경’을 읽으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는 오랫동안 동아시아에서 지배계층의 성전(聖典)으로 통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논어의 핵심 개념은 ‘인(仁)’이다. 공자는 인간이 인을 실천하는 이유는 누구나 정직한 마음을 가진 데 있다고 했다. 가장 신임했던 제자 안회가 ‘인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답한다. 사사로운 욕망을 극복해 예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돌아가야 할 예는 주나라의 전통적인 질서와 문화다. 공자는 사회의 여러 계층을 하나로 결속하는 원리가 인(仁)이라고 여겼다.
공자는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려면 각자 자신의 위치에 맞는 예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이는 각자의 신분과 지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위정자와 지식층이 선왕 대대로 전하는 예를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논어 안연편 첫 장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 이를 ‘사물(四勿)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논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과 더불어 ‘군자(君子)’다. 두 단어가 각각 109번, 107번이나 언급된다. 공자의 이상적 인간관인 ‘군자’는 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논어가 군자들에게 내리는 생활 지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자는 논어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나올 정도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군자는 곧잘 소인(小人)과 대비된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잇속에 밝다.” “군자는 큰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안온한 삶의 터를 생각한다. 군자는 두루 적용되는 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작은 혜택을 생각한다.” “군자는 두루 마음 쓰고 편당 짓지 아니하며, 소인은 편당 짓고 두루 마음 쓰지 아니한다.” “군자는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면서 태연하지 못하다.” “군자는 자기에게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공자가 내린 소인의 정의에는 성적·계급적 편견이 어느 정도 담겨 있다는 게 고문헌·고고학의 대가인 리링 베이징대 교수의 생각이다.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논어에는 ‘소인’이란 말이 스물네 번 나온다. 평소에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려운 시절이 오면 군자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것을 비유한 대목도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