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부국장 sun@donga.com

    입력2005-07-12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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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기와 욕구 달래주는 든든한 국물맛 ‘soup’는 ‘고깃국’이라는 뜻이지만 이미 ‘수프’라는 외래어가 더 익숙하다. 우리네 국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국과 달리 수프에 밥을 말아 먹으면 약간 어색해 보이는 딱 그 정도의 차이. 하지만 영양은 고깃국을 초월한다.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마광수(馬光洙·54) 교수가 기지개를 활짝 켰다. 5월 초 자신의 박사논문인 ‘윤동주 연구’ 개정판에 이어 6월1일 철학 에세이집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소설 ‘광마잡담’, 에세이집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3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1992년 ‘음란물’로 찍힌 소설 ‘즐거운 사라’를 ‘제조’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후 13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마 교수. 2003년 가을학기 연세대 강단에 복귀한 이후 서서히 일탈했던 삶의 정상궤도에 올라서는 모습이다.

    그 사이, 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살만큼이나 세상은 많이 변했다. 오랫동안 움츠렸던 그가 느끼는 변화는 더욱 크다. 하지만 마 교수는 오히려 그게 더 반갑다. 1980년대 후반, 그를 검열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페티시즘’ ‘페티시’ ‘피어싱’ ‘염색’ 같은 단어가 이젠 그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느덧 일상용어가 됐다.

    소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에서 밝혔듯 마 교수의 성적 취향은 ‘손톱이 긴 여자’다. 과거 보수 문학계는 그를 ‘변태’로 취급했지만, 오늘날 ‘네일 아트’라는 산업이 생겨나 호황을 누리고 있다.

    1989년 마 교수의 첫 장편소설 ‘권태’에 등장한 여주인공은 10㎝의 손톱에 머리는 초록색으로 염색을 하고 12㎝에 달하는 하이힐을 신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그래서 사회평론가 강준만 교수(전북대)는 마 교수를 “염색 하나만 예로 들더라도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마 교수의 심경은 어떨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즐거운 사라’에 대한 변명에서 진한 페이소스가 전해진다.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이날 요리는마 교수의 개인 사정으로 제자(이대 청강생이었음) 최유미(맨 오른쪽)씨 집에서 했다. 맨 왼쪽은 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 최씨 왼쪽은 최씨의 선배 공남윤씨.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 번역출간(1994)돼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일본 평론가는 책 이름 옆에다 ‘성적 교양소설’이라고 붙였어요. 일본 쓰쿠바대 한국학자 후루다 교수는 한국에서 근대 이후 반유교적 소설은 ‘즐거운 사라’가 최초라면서 가부장제도에 대한 반발이자 반유교적 이념소설이라고 평가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음란물이었죠.”

    1992년 구속, 1993년 해직, 1995년 유죄확정, 1998년 복직, 2000년 재임용 탈락. 그후 마 교수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스트레스에 하루 담배 3갑, 술로 지새는데 버틸 장사가 없다. 결국 중증 우울증에 당뇨질환까지 겹쳤다.

    이 시기에 그나마 그의 기력을 지탱해준 음식이 바로 ‘러시안수프’다. 1971년 대학 2학년 때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의 애인에게서 레시피를 전수받은 후 30여 년째 마 교수가 즐겨 먹는 음식이다.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마 교수가 직접 만든 ‘러시안수프’를 친구와 제자들의 그릇에 담아주고 있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보면 ‘러시안수프’가 자주 나오는데 보통 ‘배춧국’이라고 번역하더군요.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야채수프와는 달라요. 원래 러시아 농민은 고기를 안 넣었지만 고기가 좀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가난한 대학시절에는 고기가 비싸서 시레이션(미군 전투식량)으로 대용하기도 했죠. 집에 한솥 끓여놓고, 출출할 때 빵을 적셔 먹거나 밥을 말아 먹으면 좋아요. 만들기도 쉽고, 맛도 그만이죠.”

    음식의 중심재료는 채소와 고기다. 먼저 양배추와 브로콜리, 셀러리, 당근, 양파, 피망, 감자 따위를 잘 씻은 후 적당한 크기로 썬다. 센 불에 푹 익히기 때문에 너무 잘게 썰지 않고 ‘숭덩숭덩’ 자른다. 고기도 마찬가지. 고기는 쇠고기 양지머리 부위가 적당하다.

    그 다음 냄비에 채소와 고기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버터로 볶는데, 이때 버터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버터가 음식 맛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채소와 고기가 적당히 볶아졌으면, 냄비에 담긴 재료가 충분히 잠길 만큼 물을 붓고 감자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푹 끓인다.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본 다음, 케첩이나 잘 익은 빨간 토마토를 넣고 10분 정도 더 끓인다.

    이때 브라운소스가루(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것)를 넣으면 수프가 걸쭉해지는데, 마 교수는 요즘 넣지 않는다. 그래야 맛이 담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먹어보니 양배추 등 채소에서 우러나온 단맛과 버터의 고소한 맛 고기의 육수가 어우러진 맛은 환상적이다. 여기에 빵과 밥을 더하면 그 나름의 맛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사람은 먹는 만큼 배설욕구를 느낀다. 배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섹스를 통한 배설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마 교수는 아내와 이혼한 1990년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배설’을 하지 못했다”는 게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의 전언이다.

    마 교수에게 글은 성적 욕구불만의 배출구다. 그가 진정 쓰고 싶어 하는 글은 ‘혼음’처럼 일탈을 소재로 한 무라카미 류의 소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없다. 또다시 들이댈 검열과 윤리적 비판의 칼날이 두렵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의 원뜻은 ‘설사’입니다. 배설이나 같은 뜻이죠. 우리는 그걸 ‘정화’라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에게 글은 카타르시스고, 문학은 설사이자 배설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원하게 배설하지 못하고 있어요. 무서워서.”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예수가 말했다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은 좀 이상해. <br>성의 억압이나 도덕적 테러리즘이 모두 ‘진리’의 이름으로 행해졌지. <br>이젠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가 돼야 해. <br>어쩌면 진리 자체가 없는 건지도 몰라. 이렇게 고치는 게 좋겠군. <br>“자유가 너희를 진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리라.” <br><br>-마광수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의 서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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