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미친 별 아래 집’

포화 속 동물원장 부부의 선행기

  •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입력2008-07-31 1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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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별 아래 집’

    ‘미친 별 아래 집’ :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미래인, 404쪽, 1만5000원

    다이앤 애커먼은 수사학의 달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애커먼의 전작들 ‘감각의 박물학’과 ‘뇌의 문화지도’를 읽으며 신경과 감성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그 화려한 수사학에 거듭 감탄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애커먼의 책을 읽는 내내 도파민의 분비가 활발해져 뇌수가 넘치는 도파민에 충분히 젖는다. 신경호르몬 가운데 하나인 도파민은 감정중추에서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몸과 정신, 동물과 식물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경계 없는 글쓰기의 매혹을 뿜어내는 애커먼의 신작이라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미친 별 아래 집’은 바르샤바 동물원 원장이던 얀 자빈스키와 아내 안토니나가 남긴 일기, 메모, 회고록 등을 종합해서 다이앤 애커먼이 쓴 논픽션이다. “끔찍한 현실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가득”했던 나치 점령기의 폴란드에서 양심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 저자는 “동물들은 겨우 몇 달 만에 포식 본능을 억누르기도 하는데, 인간은 수세기 동안 교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렇게나 급속히 짐승보다 잔인한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이유는?”이라고 묻는다.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책은 낡은 단벌 정장을 정성들여 갠 뒤 의자에 걸쳐놓는 사소한 행위, 밤이면 누워서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조차 신성한 기쁨과 경이의 체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이 버무려져 나타나는 애커먼의 화려한 수사학은 이 책에서도 빛이 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새로운 요소가 더해졌다. 그것은 바로 감동이다. 책을 다 읽은 뒤 내면 저 깊은 곳을 울리는 깊은 감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목숨 건 선행

    ‘미친 별 아래 집’은 나치 강점기에 지하에서 저항 운동의 참여자 일부가 폴란드 바르샤바 외곽의 한 동물원, 즉 ‘비스와 강변의 녹색 동물왕국’과 동물원장 부부가 살던 빌라를 암호화해서 부르던 별칭이다. 동물들이 다른 동물원으로 이송된 뒤, 바르샤바 동물원은독일군 식용으로 쓰일 돼지 농장과 모피 제조용 동물 사육장으로 변한다.



    동물을 돌보던 평범한 부부 역시 이제 동물이 아니라 전쟁으로 미친 세상에서, 즉 화장터와 가스처형실 문턱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폴란드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뛰어든다. 얀과 안토니나는 수백명의 유대인을 게토에서 빼내 이 동물원의 은신처에 숨기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목숨들을 구한다. 얀은 유대인을 숨기는 일을 하며 나치에 타격을 주는 폴란드 지하군 조직의 일원으로 뛰어든다. 얀과 안토니나는 길 잃고 다친 동물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상처를 치유하고 주린 배를 채워주듯 갈 곳 잃은 유대인들을 동물원과 빌라에 은닉한 뒤 먹이고 재우며 돌본다.

    이 군식구들을 거두는 행위는 저와 제 가족이 한꺼번에 몰살에 이를 수 있는 ‘중대 범죄’다. 그러나 얀과 안토니나에게 그런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부부임에 분명한 이들은 그럴싸한 거짓말과 창조적인 위장으로 나치의 감시를 따돌리고 이들 군식구들과 즐거운 동거를 한다. 얀과 안토니나는 위기에 대비해서 항상 청산칼리를 갖고 다니면서도 유머와 음악을 잃지 않고, 숨어 사는 군식구들에게 흥겨운 삶을 독려한다. 이 빌라의 주인이거나 임시 거주자들은 ‘작은 왕국의 엄격한 규율’을 따른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이 기묘한 동거는 참으로 아름답다.

    전쟁의 참화(慘禍)는 원래 사람에게만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되는 전쟁으로 동물원에도 포탄이 떨어진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 우리에서 들리는 사자의 끙끙거리는 신음소리, 호랑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안토니나는 사자며 호랑이 어미들이 ‘공포에 질려 어린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숨길 안전한 장소를 찾아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코끼리가 나팔소리 같은 울음을 미친 듯이 뿜어대고, 하이에나들은 겁에 질려 가끔씩 딸꾹질을 하며 킬킬거리고 숨을 헐떡였다. 아프리카사냥개는 섬뜩하게 짖어댔고, 붉은털원숭이들은 흥분하여 서로 뒤엉켜 싸웠다. 병적으로 흥분한 녀석들의 날카로운 외침이 대기를 갈랐다.”

    이는 살아 있는 것들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본능적으로 드러내는 공포와 절망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는 대목이다. 동물들은 찢기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동물원 안에서 위기를 감지하고 날카롭게 울부짖고, 신음하고, 킬킬거리고, 헐떡이고, 딸국질을 하고, 짖어대고, 뒤엉켜 싸운다. 그렇게 무차별적인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 ‘동물원’에 대한 묘사는 호모 사피엔스 전체가 종(種)의 사멸에 이르리라는, 세상 끝 날에 대한 요한묵시록의 은유로 읽힌다.

    ‘저승 합창곡’

    맹수들의 우리가 파괴되고 빗장이 풀리자 우리 안에 있던 맹수들은 밖으로 튀어나와 우왕좌왕한다. 그 대목에서 애커먼의 묘사는 서사시와 같은 문학적 울림을 준다.

    “상처에서 피가 철철 나는 얼룩말이 허겁지겁 달리고, 겁에 질린 원숭이와 오랑우탄이 울부짖으며 나무와 관목들 사이로 돌진하고, 뱀들이 미끄러지듯 바닥을 따라 이동하고, 악어들이 발끝을 세운 채 종종걸음을 치는 동안, 유리며 금속 파편이 동물들의 피부, 깃털, 발굽, 비늘 등을 무차별 공격했다. 날아온 포탄이 조류사육장의 그물을 찢자 앵무새가 아스텍 문명의 신들처럼 빙빙 돌며 위로 솟구치더니 이내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탁한 공기 때문에 호흡이 곤란했고 불타는 나무, 건초, 살 등이 악취를 풍겼다. 원숭이와 새들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은 차라리 저승의 합창곡 같았다.”

    유대인들이 수용된 게토와 ‘저승의 합창곡’이 울려 퍼지는 이 파괴된 동물원은 묘하게 상호 조응한다. 게토는 약탈, 협잡, 기만, 일상적으로 참수형과 총살이 이루어지는 생지옥이고 아수라장이다. 약탈자와 희생자가 공존하는 게토의 생태학은 곧 악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저를 드러내는지를 보여준다. 악은 세계의 도처에서 으르렁거리며 그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위기에 직면한 산 자들은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고, 곤두박질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우리 안에 갇힌 맹수들을 향해 재미 삼아 총질을 하는 나치 고위 관료들의 ‘사냥’과 게토의 유대인 어린아이들을 향해 재미 삼아 총을 난사하는 나치 경비병들의 모습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극악무도함은 어디까지인가. 아리안족의 순수 혈통을 확립한다는 명분 아래 대량 살상과 강제 불임수술 등을 행한 나치즘의 생물학적 이데올로기의 근거는 망상이다. 그들은 한 마디로 미친 것이다. 반면에 얀과 안토니나는 그 미친 자들과 싸운 진정한 의인이다. 그들은 곤경에 빠진 동물을 구하고 돌보듯,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도망자에게 은신처로 제 집의 일부를 내주고, 불안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듯 사람은 신성에 민감하며 경이와 초월을 추구하는 숭고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추악한 생물 종이기도 하다. 나치가 유대인을 ‘인간 이외의 종’으로 분류해 조준하고, 추적하고, 총구를 들이대고, 가스실에 집어넣어 박멸하는 광경은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혐오스럽고 사악한 존재라는 명백한 증거다.

    포탄 속 작은 낙원

    사람은 도덕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도덕은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내면의 도덕이 세계의 파멸에 맞서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행동의 원동력이 될 때 그것은 숭고해진다. 사람은 도덕 때문에 숭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이 행동으로 전환하는 강력한 동기가 될 때 비로소 숭고해진다. ‘미친 별 아래 집’의 주인인 얀과 안토니나가 바로 거기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들은 미친 세상 속에서 지치지 않는 용기와 위엄, 그리고 이타주의의 행동으로 고통과 절망의 바다에서 유일하게 그것을 벗어난 ‘노아의 방주’를 창조한다. 그 방주 바깥은 나치의 만행으로 위험과 불안이 상존했지만 방주 안은 “놀이, 동물, 경탄, 호기심, 경이, 천진무구한 동심”이 존재했다. 죽음을 피해온 사람들과 사향쥐, 수탉, 산토끼, 개, 독수리, 햄스터, 고양이, 새끼여우 같은 천진난만한 생명들이 동거하며 자기들만의 작은 낙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 되기의 어려움은 언제나 절망과 고통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홀로코스트 속에서 피어난 감동적인 실화를 담은 이 논픽션은 한 동물원 사육사 부부의 특별한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절멸에 이르게 할 수 있고, 거꾸로 어떻게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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