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에 기술적 분석의 토대를 쌓은 다우이론과 리버모어의 전설적 투자기법에 대해 논한 시골의사. 이번 호에는 기술적 분석과 그에 따른 주가 예측의 허구성을 미국 증시의 역사와 각종 투자이론을 고찰함으로써 낱낱이 파헤쳤다. 그는 시장에 난무하는 추세, 트렌드, 패턴, 파동의 온갖 주가 그래프는 한낱 무용지물이며, 각 기업의 현실에 기초를 둔 가치투자만이 원금과 장기수익을 보장하는 투자법이라고 주장한다. 길고 어려운 글이지만 기술적 분석에서 가치투자로 넘어가는 현대 주식시장의 맥락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가격의 변화가 새로운 추세의 시작인지, 혹은 기존 추세의 일시적 조정인지는 이전의 주가 흐름을 살핌으로써 알 수 있다. 가격의 궤적에는 그 길이 나와 있고 거래량이나 매집자의 흔적, 시가와 종가, 고가와 저가를 분석함으로써, 혹은 의미 있는 저점과 고점을 연결한 추세선을 통해서도 주가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
필자의 주장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아무리 틀린 논리나 주장이라도 무려 100년씩이나 살아남았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기술적 분석에 의한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레 나온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무수한 증권 분석가와 전문가들이 시장전망을 토해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조언을 따른 투자자들이 수익을 낸 경우는 대충 살펴도 30% 남짓이다. 심지어 2008년 5월의 신문 기사들은 “2007년 연말 증권사들이 탑픽(최우선 추천주)으로 꼽은 종목의 포트폴리오 대부분이 시장평균 대비 모두 마이너스 수익이었으며, 단 두 개의 증권사만이 가까스로 시장 수익률보다 아슬아슬하게 높은 수익을 냈을 뿐”이라고 전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지금은 기술적 분석만이 맹신되던 1930년대의 미국이 아니다. 증권분석가들이 모두 추세선이나 봉의 패턴, 혹은 파동을 보고 시장을 기술적으로만 예측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는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나 워런 버핏의 영향을 받은 가치 분석가도 별처럼 많다. 그런데 왜 결과는 늘 왜 이 모양일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시장 분석가들의 군집효과에서 찾는다.
‘아니면 말고’식 주가 예측
시장이 상승을 하건 하락을 하건 분석가들은 어지간하면 그들 집단의 분위기에 맞춰 예측을 낸다. 분위기를 거슬러 반대 의견을 냈을 때 맞으면 일시적으로 홀로 스타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틀려도 여럿이 같이 틀리면 묻혀서 넘어가지만, 어쩌다 자신의 소수의견이 틀리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빚는다는 얘기다.
하여간 필자가 이 글에서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핵심 내용은 기술적 분석이건 아니건 간에 시장 예측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의 역사는 이런 논리를 거부해왔다. 시장은 기술적 분석의 허구를 지적한(혹은 시장예측 전문가들의 허구를 지적한) 알프레드 코울스(Alfred Cowles, 증권데이터 분석의 아버지)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1929년 미국 증시 대폭락 이후 1950년대까지 상당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시장 자체에 관심이 없었고, 그나마 남은 투자자의 대부분은 주가가 하락하건 상승하건 상관없는 기업의 대주주였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 재산가이거나 증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투기꾼들이었다. 당시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1980년대 우리나라를 꼭 닮았다. 주식 투자자는 이성적이지 못한 ‘투기꾼’ 취급을 받았고, 누군가가 주식 투자에 나선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말리려 했다. ‘투자전략가는 증권시장을 절대 예측할 없다’는 코울스의 논문이 시장에 알려질 동기도 계기도 없었던 셈이다.
1960년대 들어 코울스의 주장은 정반대의 이유로 사장됐다. 시장이 활황을 보이고,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시장 회전율이 100%에 달하자 투자자들 사이에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면 주가수익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됐다. 당시는 무슨 종목이건 손을 대면 무조건 오르던 때였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에 도취해 실제 전문가의 조언이 얼마나 맞는지를 확인하려하지 않았다. 미국의 증권회사들이 무더기로 상장된 것도 바로 이즈음, 증권사와 자문가에 대한 투자자의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런 믿음은 이후 1974년 주가 대폭락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사이 증권시장의 기술적 분석방식에 대해 ‘조용하게’ 회의를 제기한 이들도 있었다. ‘워킹’도 그중 한 사람. 그는 당시 모든 투자자가 믿고 있던 ‘모든 가격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가설을 실제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무작위로 뽑은 수열과 실제 거래된 밀의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패턴에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밀이나 금, 은,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믿고 있던 추세, 트렌드, 패턴, 파동의 정상적 가격 그래프와 그가 무작위로 추출한 수를 연결한 그래프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같은 모양으로 일치한 것.
가격패턴 분석이론은 거짓말
심지어 그는 난수표에서 뽑은 수를 기반으로 그래프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식시장에서 가격 그래프를 뽑은 후, 이를 증권분석가들에게 제시하고 어느 것이 진짜 주식시장의 그래프인지 고르라는 실험까지 벌였다. 그랬더니 전문가 그룹은 그가 무작위로 뽑은 그래프들을 주식시세 그래프라고 뽑았다. 이는 주식 가격 그래프와 이를 토대로 기술적 분석을 제공한 전문가들의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한 실험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실험은 결과물의 폭발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주장은 이후 해리 로버트(Harry Robert)가 워킹의 가설을 동전 던지기 실험으로 다시 한번 증명해 보임으로써 이론으로 확정됐다. 시장이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격 패턴은 무질서하고 무작위적이며, 향후 가격을 예측하는 데 전혀 쓸모가 없음’을 주장한 로버트의 논문은 현재 기술적 분석가들이 황금률로 사용하는 ‘헤드 앤 숄더, 네크라인(Head & Shoulder, Neck Line)’과 같은 개념들을 탄생시켰다.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주식 가격 패턴분석 관련 용어들은 로버트가 그린 동전 던지기의 시계열 그래프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런 가격패턴 분석이론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인물은 따로 있다. 천체물리학자 오스본(osborne)이 바로 그다. 오스본은 주가의 무작위운동이 분자의 운동, 즉 ‘브라운 운동’과 같다는 사실을 통계학적으로 증명했다. 물리학자인 그는 주식시장에 하등의 관심이 없었지만 주식시장의 주가패턴이 무작위적, 즉 ‘랜덤 워크’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을 지켜보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가 통계학적으로 증명한 사실은 ‘주가는 무작위적이며, 가격 패턴으로 오늘 이후의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주가가 결정되는 순간은 매도자의 하락 의견과 매수자의 상승 의견이 충돌할 때만 이루어진다. 이 두 의견이 충돌하지 않을 경우 가격은 매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매도자와 매수자 중 누가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는 다음날 주가만이 판정해줄 수 있다.”
이때 매도자와 매수자의 기대수익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으므로, 결국 투기꾼들의 기대수익은 ‘0’이 된다. 그는 “주가의 변동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하고, 브라운 운동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한편, ‘주가 변동은 시간의 제곱근에 비례한다’는 프랑스의 수학자 루이 바슐리에의 주장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한 달간의 주가변동이 3%일 때, 열 달간의 주가변동은 30%가 아닌, 10% 남짓에 불과하다는, 즉 ‘시간의 제곱근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통계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2008년 6월 미 증시가 폭락하자 거래소의 직원이 고민에 빠져 있다.
코울스, 워킹, 로버트, 오스본의 실험 이후 시장에는 투기거래에 대한 4가지 결론이 확립됐는데, 그 첫째는 투기성 거래자가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이들을 이기려면 그는 다른 사람이 절대 모르는 정보를 독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시장의 정보를 잘못 이해한 바보가 많아야 그에 비례해 차티스트들(가격패턴 분석가)이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그것도 스스로가 대단한 현자(賢者)라는 전제에서만 그렇다. 다시 말해 정보가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있지만 그 정보를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해석할 수 있는 투기성 거래자가 있다면, 그가 내는 이익의 크기는 곧 그 정보를 거꾸로 해석하거나 늦게 해석하는 바보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셋째는 이때 그가 바보들에 비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 정보가 새나가면 바보의 수는 줄 것이고 그의 수익은 바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론은 주가 추세는 시장에 대한 불완전 정보를 순차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만약 시장이 효율적이고 정상적이라면 현재의 주가에는 모든 정보가 완전하게 반영돼 있어야 하고, 다음에 나타날 새로운 정보로 인해 주가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기술적 분석 진영의 입장대로 주가가 진짜 추세를 형성하고 그 추세가 한번 형성돼 오랫동안 유지되는 존재라면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는 데 상당한 시차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정보가 빠른 순서대로 주식을 사게 되며 가격 추세는 이들의 진입속도에 따라 만들어진다. 현재의 주가에는 모든 정보가 반영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기술 분석 진영의 주장이 참이 되려면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정적,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기술적 분석가들의 주장은 ‘시장은 효율적이다(모든 정보는 주가에 반영되어 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이가 바로 경제학자 알렉산더(Alexander)로, 그는 주가를 분석하고 통계작업을 하면서 ‘경계면(Barrier)’을 두는 방식을 택했다. 주가가 5% 이상 오르면 사고, 5% 이상 내리면 파는 방식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추세가 형성되면 고점 매수하고, 반대의 추세가 형성되면 저점 매도하는 추세매매를 한 다음 이를 시뮬레이션화한 것이다. 그랬더니 역시 결과는 ‘의미 없음’으로 내려졌다. 이쯤 되면 추세, 혹은 패턴으로 주식을 예측하고 매매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수없이 많은 학자가 이런 사실을 증명했음에도, 그로부터 50~60년이 지난 오늘까지 차트에 줄을 그어가며 ‘대박기술이니, 비법이니’하며 혹세무민하는 분석가들이 넘쳐나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론상 주가는 무조건 오른다?
이후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분석가들은 기술적 분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연구는 어리석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연구의 초점은 자연스레 바이앤홀드(Buy&Hold)를 구사하는 장기투자자들로 옮겨간다. 기술적 분석을 통해 잦은 거래를 하는 게 결국 어리석은 투자임은 밝혀냈지만 그렇다고 바이앤홀더가 시장에서 매번 일정한 이익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당시까지 확인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바이앤홀드를 구사하는 투자자나, 잦은 투기거래를 하는 투자자나 그가 고른 종목의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확률은 마찬가지다. 다만 잦은 거래자들이 내는 손해는 잦은 거래에 따르는 비용부담일 뿐이다. 주가는 기본적으로는 오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가 발달하고 국내총생산이 증가하는 만큼 자본시장엔 새로운 자산가치가 생겨나고, 그렇게 생겨난 자산가치는 주주들에게 일정부분 배분되기 때문이다.
바이앤홀더가 항상 이기는 까닭
한동안 주식시장이 긴 침체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은 단기추세와 단기실적에 집착한 투자자들의 과도한 반응 때문에 주가가 저평가되거나 장기간 하락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에 공급되는 자산가치는 총생산이 증가하는 만큼은 반영된다. 시장에 유입되는 자산가치 이상의 거품은 폭락으로 연결돼 긴 침체를 부르지만 총생산이 이를 뒷받침하는 시기가 되면 장기적으로는 주식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주식이라는 권리에 대한 독특한 지위가 포함돼 있다. 주식을 가진 자, 즉 주주가 져야 할 책임은 유한하다. 투자한 기업이 망한다 해도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금액만큼의 책임만 지면 된다. 원본 손실만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기업이 부도가 날 때 부채변제의 책임까지 주주가 진다면 주식 거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가 주식을 누군가에게 팔면 이를 매수한 사람은 그 주식이 휴지가 될 위험을 안는 것만으로 손실한계가 확정된다. 회사가 무슨 짓을 하건 그는 책임이 없다. 경영상의 책임은 경영자가 지기 때문이다. 만약 주주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면 주주의 책임은 무한대가 된다. 그 경우 주주가 주식을 거래하기는 극히 어려워진다, 매수자가 그 주식이 가진 무한 책임의 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만약 그래야 한다면 주식을 매수한 사람은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행여나 회사가 폐수를 방류해 엄청난 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아닌지, 회사가 갑자기 빚더미에 올라 내가 그 빚을 변제해야 하는 건 아닌지를 분석해야 하므로 주식거래가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주식거래는 책임이 유한하다. 내가 가진 주권이 0원이 되는 것으로 위험이 한정된다. 반대로 이익은 무한하다. 주가가 5000원에서 5000만원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이론상으로 한정되지만 주가의 상승 가능성은 무한하다. 미국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 필요성이 제기된 데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 대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MF 관리체제 당시 기업이 위기에 빠지자 대주주인 재벌회장들이 사재를 턴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나라 기업에선 미국처럼 소유와 경영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법경영에 대해 경영자로서 책임을 졌을 뿐이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었다면, 그 책임은 경영자가 지면 그만이었고, 대주주는 잘못된 경영자를 뽑은 대가로 주가가 하락한 손실, 혹은 기업이 부도남으로써 주권이 소멸되는 책임만 지면 된다. 따라서 주주로서 져야 할 책임은 유한한데 주식시장의 자산가치는 계속 늘어나므로 주식을 바이앤홀드 하는 투자자는 이익을 낼 수밖에 없다.
‘그림자 가격’ 이론을 만든 경제학자 새뮤얼슨.
하지만 이런 거대담론으로 주가를 연구한다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이론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1960년대 이후 연구자들은 ‘가치’라는 개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특히 가치와 가격의 괴리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갔다. 이와 관련, 노벨상을 수상한 정통 경제학자 새뮤얼슨은 ‘그림자 가격(shadow price)’이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그림자 가격이란 내재가치를 가리는 가상의 가격, 즉 그림자 가격이 존재하며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합의해서 결정하는 시장가격과 비슷한 개념이라 정의했다.
우리는 주식의 내재가치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내재가치를 가상으로 정의하게 되는데, 그 내재가치에 대한 기대가치가 바로 그림자 가격이다. 하지만 내재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선 결국 시장가격, 즉 현재의 가격과 내재가치 사이에 일정부분의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말장난 같지만, 그림자 가격은 완전한 내재가치를 상정할 때의 이론적 시장가격이고, 우리가 만나는 시장가격은 불완전한 내재가치를 상정한, 투자자들이 만들어낸 가격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밝혔듯,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의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주식의 가격이 결정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요인이 있다면 이는 모든 주식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도 핵심적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주식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그 기업 고유의 특별한 요소가 있고 그 기업이 속한 나라의 사정이 따로 있으며 심지어는 글로벌 경기까지 변수가 될 수 있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
결국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는 그림자 가격도, 내재가치도 아닌 어쩌면 모든 주식이 벗어날 수 없는, 그야말로 강수량이 적당하고 병충해가 없으며 해가 쨍쨍 내리쬐는, 그래서 절대 농사를 망칠 리가 없는, 그런 상황인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에서조차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사람은, 모두가 흥분해 정보를 가격 결정에 과도하게 반영하거나 모두가 공포에 질려 악재를 부풀려 인식하는 상황에서, 침착한 눈으로 시장 가격에 낀 그림자와 내재가치를 살피는 사람이다. 시장의 승자는 바로 그 사람이다. 사람들이 흥분하거나, 공포에 질려 정보를 지나치게 반영하거나 과소반영할 때 내재가치 대비 시장가격과 그림자 가격의 편차는 커지게 마련이다. 이런 편차는 주로 ‘과반응’ 또는 ‘과소반응’하는 투자자들의 ‘노이즈(투자자의 불합리한 행동)’로 인해 발생하므로 현명한 투자자는 이런 시장의 노이즈조차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이는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논리와도 같은 선상에서 연결된다. 그레이엄은 손익계산서보다 재무제표를 지나치게 중시한 투자자다. 하지만 재무제표이건 손익계산서이건 그것이 내재가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도구이기만 하다면, 또 시장가격과 내재가치 사이에 큰 편차가 생길 때는, 즉 노이즈가 커질 때는 주식을 매수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게 경제학자들의 결론이다.
위험은 절대 피할 수 없다
사실 지금껏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섹시하고 자극적인 연구 결과는 적지 않았다. 대공황 이전인 1925년경 한 연구자는 1890년부터 1920년까지 주식투자와 채권투자를 비교했더니 채권보다 주식의 수익률이 높았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이후 이 자료는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와 바이앤홀드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그리 멀지 않은 1929년의 증시 대폭락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30여 년 후인 1964년 피셔-로리는 이 자료를 근거로 “1926년 한 투자자가 1000달러를 주식시장에 투자했다면 그 돈은 1960년에 무려 3만달러가 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식 배당을 복리로 재투자했을 때의 상황이지만 이런 논리는 국내에서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홍보수단으로 최근까지 애용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주장이 나오자 당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대폭락을 경험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끔찍한 참사’의 기억이 생생한데, ‘주식이 채권이나 예금보다 수익이 높았다’는 연구결과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비극적이게도 당시 사람들은 이런 연구결과가 주식시장이 장기호황기에 있거나 극적인 상승을 거듭한 후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1920년대에도 그랬고, 60년대에도 다르지 않았으며 90년대 전설적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도 같은 계산치를 내놓았다. 그 누구도 이런 계산치가 계산의 기간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다. 투자자는 다만 자신이 듣고 싶은 분석이 나오자 흥분했을 뿐이다. 필자는 “‘20년, 30년 동안 주식을 보유하면 꼭 수익이 난다’는 식의 충고를 일반 투자자에게 하는 행위는 ‘거대한 사기’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이러저러한 연구 결과에서 도출된 공통된 결론은 주식시장에서 특정 종목을 많이 사는 것보다 모든 종목을 사서 보유할 경우 수익이 나며, 특정 주식을 보유해서 생기는 위험은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이렇게 믿기 시작했다. 주식투자를 하려면 장기로 해야 하고, 잘 분리된 포트폴리오를 구사하면 투자에 대한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고….
‘미래 현금흐름 할인법’의 등장
이런 믿음이 고착화될 때쯤 결정적 뒤집기가 일어난다, 망델로브가 그 주인공. 그는 “주식의 분산과 공분산은 늘 변한다. 따라서 그에 따른 리스크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분산과 공분산 역시 과거의 기록일 뿐, 이것이 미래의 위험을 완전하게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파한다. 그는 “주가는 군집하며, 변동성은 몰려다니고, 주가의 변화는 특정지점에서 극적으로 움직이므로, 주식시장의 위험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망델로브의 주장은 이후 주식시장 ‘카오스(혼돈) 이론’의 시초가 되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주가는 그야말로 혼돈이므로, 우리가 믿고 있던 리스크와 기대수익의 선형관계마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1929년 증시 대폭락에 이은 대공황. 어떤 경제학자도 이를 예상 못했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내재가치란 존재하는가. 필자는 이론상 내재가치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다. 만약 내재가치가 존재하지 않고 투자자들이 내재가치에 근접한 가격으로 매매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주가는 미친 듯 움직이고 투자자는 도저히 그 변동성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주가는 일정한 폭으로 움직이고, 늘 적정한 밴드를 만드는 것으로 미뤄, 내재가치는 시장가격에 실시간 반영되고 시장 참여자 가운데 상당수는 내재가치를 의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내재가치 자체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까닭에 그에 대한 분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이때 A가 본 내재가치와 B가 본 내재가치의 차이가 시장 노이즈를 형성하며, 두 사람의 승부는 누가 더 내재가치에 더 근접했는지에 따라 갈린다. 물론 여기에는 심리적 요인을 배제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내재가치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잣대는 없을까. 현재 내재가치 분석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자 유용한 도구는 수학자이자 재무학자인 존 버 윌리엄스가 제창한 ‘미래 현금흐름 할인법’으로, ‘미래수익을 현재의 가치로 할인하는’ 방법이다. 이 이론은 매수인이건 매도인이건 기대수익은 ‘0’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현금흐름 할인법’도 추정치일 뿐
투자자들은 누구나 주식을 살 때 자신의 판단이 현명해 그 주식이 시세차익을 내줄 거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허무맹랑한 기대치일 뿐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쭉 살펴봤다. 주식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기대수익은 늘 ‘0’이다. 입이 아프게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이다. 기대수익이 ‘0’인데도 주식을 사려 할 때는 기대수익이 아닌 다른 데서 그만한 수익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자산가치와 배당금이다. 내가 주식을 샀을 때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이익은 주식을 보유한 기간 해당기업이 낼 수 있는 이익뿐이다. 주식을 사는 순간 나는 그 기업의 주주가 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면 내가 산 주식의 자산가치는 증가하고 배당금은 늘어난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미래의 현금흐름을 예상해 그것을 현재 주가에 적용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에 불과하고, 미래에 받을 돈(미래 배당금)은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받지 못할 위험도 있는데다 주식을 살 때는 이미 배당금을 받을 것을 가정한 가격에 샀지만 정작 그것을 받는 시점은 나중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5년 후 현금흐름을 주당 10만원으로 예상해 현재 주식에 그만큼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샀다면 그 주식의 가치는 실제로는 10만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주식을 사는 돈은 당장 투입되어야 하는 비용이고 배당은 미래에 받는 돈이므로 나중에 받을 배당의 현재가치는 그 기간의 이자만큼을 할인해야 정확한 계산치가 나온다. 다시 말해, 미래의 10만원은 현재의 7만~8만원 가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거기다 배당금을 받지 못할 위험까지 가산하면 다시 주식의 가치는 5만원 정도로 줄어든다. 위험에 대한 할인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이 큰 주식은 더 크게 할인해야 하고, 위험성이 낮고 탄탄한 주식은 그만큼 덜 할인할 수 있다. 또 5년 후의 현금흐름을 계산해서 5년 후의 주가를 예상한다면 실제 5년 후에는 또 그 다음 5년간의 현금흐름을 계산해서 주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5년 후의 주가를 특정하긴 어렵다. 현금흐름 할인 계산에 있어 ‘현재의 조건이라면’ ‘현재의 이자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기업의 지배력이나 영업이 현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만약 향후 기업의 이익이 현재기준보다 크게 좋아질 것으로 판단되면 할증을, 그 반대라면 추가 할인을 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계산해서 나온 가격이나 내재가치도 결국 추정치일 뿐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이익이 크게 좋아져 할인이 아니라 할증을 해야 한다는 판단은 바로 성장주에 대한 과대평가로 연결될 수 있다. 누군가 어떤 성장주의 현재 주가수익비율(PER,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이 100배라는 주장을 한다 해도, 5년간 실적이 몇 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이는 맞는 말이다. 따라서 성장주 투자를 즐기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낙관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모멘텀 투자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자신뿐만 아니라 대중도 미래에 대한 낙관이 현실화할 것을 믿을 것이므로 시세차익을 더 크게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을 현장 방문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이에 반해 가치 투자자들은 미래에 실적이 썩 좋아질 가능성 따위는 아예 무시한다. 이와 관련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은 기업의 자산, 실적, 그리고 미래수익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엄격한’이라는 말에 방점이 찍히는데, 그레이엄은 ‘미래’에 특히 엄격했고 자산과 현재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현금흐름표보다 대차대조표를 사랑했다는 평을 듣는다. 기업이 향후 성장할 미래가치보다 기업이 망했을 경우, 혹은 팔았을 경우의 청산가치나 양도가치를 더 중시했다. 그는 기업이 당장 청산할 경우에 주가에 이익인지 아닌지에 분석의 포인트를 둔 반면, 많은 투자자는 미래에 늘어날 현금흐름의 가치에 생각의 무게를 뒀다.
그레이엄의 이론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미국증시가 급속한 성장을 하던 시기마다 늘 손가락을 깨물어야 했다. 반면 이 시기 성장주에 투자한 사람들은 많은 이익을 냈다. 대신 성장주 투자자들은 상황이 악화될 때 모든 자산을 잃었지만, 그레이엄 추종 투자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원금손실은 입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급성장기에 높은 수익을 얻지 못했지만 항상 완만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그레이엄 추종자들이 승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아무리 악화되어도 원금은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의 현금흐름 할인은 성장의 논리에 기댄 이론이지만, 그레이엄의 이론은 항상 청산의 가치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내재가치를 따지며, 무분별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리석은 투자자들이 자신이 시장에서 무엇을 사는지, 왜 사는지도 모르며 신경제 혹은 신기술, 미래의 꿈, 오르는 가격 따위에 도취해 있을 때, 그들은 늘 엄격한 기준으로 기업의 회계장부를 분석하고 적절한 가치평가를 통해 기업의 내재가치를 파악하려 했다.
시장에서 ‘노이즈’를 생산하는 트레이더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치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이들 가치 투자자들에겐 그것에 비례한 기회가 제공됐고, 세상이 흥분에 도취하거나 절망에 사로잡히면 잡힐수록 이들은 더 큰 수익의 기회를 잡곤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항상 음지에서 일했다. 그들이 발견한 주식은 늘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고, 빛나지 않았으며, 때로는 대중이 그 가치를 뒤늦게 깨달을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그중에는 결국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함으로써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 주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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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투자방식의 최대 약점은 순환매(매수 인기의 순환)에 있다. 그들이 선택한 주식은 어떤 특정 유행이나 트렌드가 순환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수익을 낼 수 있다. 다른 종목의 가격이 대부분 올랐거나 충분한 거래를 통해 단물이 빠진 후 대중이 살 주식이 없어 오랫동안 거래되지 않은 종목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할 때, 또는 부동산시장의 호황으로 자산가치가 확연하게 부각될 때, 미래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시장 안정성이 중시되는 시기 등이 바로 그들이 선택한 주식이 빛을 볼 그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주식의 소유주들은 가치분석을 토대로 해당 주식을 샀지만 결국에는 대중이 그 주식을 사서 거품을 만들고, 시세를 경쟁하며 가격을 올리기 시작해야 수익을 취하고 떠날 수 있다. 절세미인이지만 왕의 눈에 들지 못하면 빛을 내지 못하는 무수리 궁녀와 같은 주식, 그것이 바로 가치분석 투자자가 선호하는 주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