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훔쳐보기는 재밌다. 훔쳐본 일상이 의외라면 더 그렇다. 시청자는 마냥 새침할 것 같은 미녀 배우가 드르렁 코를 골고, 얼굴만 봐도 우스운 개그맨이 근엄하게 자녀를 호통 치는 리얼리티 쇼를 보며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안도와 짜릿함을 동시에 느낀다. 한데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비분강개하다 보면 이런 의문도 든다. 같은 세상을 사는데 내 일상은 왜 평화롭다 못해 단조로울까? 당연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편집된, ‘허구의 리얼(real)’이니까.
심플 라이프.(좌) 오스본 가족.(우)
TV 프로그램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 온 가족이 즐기는 퀴즈쇼가 인기를 끌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토크쇼가 붐을 이뤘다. 요즘 대세는 리얼리티 쇼다. ‘리얼 버라이어티’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 ‘리얼 휴먼 버라이어티’ 등 웬만한 프로그램 앞에는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대사는 물론 농담까지 대본 그대로 말하던 시절에 비하면 즉석 대사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요즘의 오락 프로그램은 말처럼 ‘리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사실 작가의 요구에 따른 캐릭터 설정임을 각종 연예정보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현실’일까.
‘빅 브라더’의 짜릿함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보는 것은 ‘가상현실’이다. 이는 현실과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리얼리티 쇼는 시청자로 하여금 현실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가상현실은 유쾌하다. 현실 속의 초라한 부분은 편집돼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현실보다 더 재미있는 현실’, 여기에 리얼리티 쇼의 인기 비결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의 포맷은 1999년 네덜란드에서 방영된 ‘빅 브라더 (Big Brother)’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 출연자를 한 장소에 두고 약 3개월간 그들의 일상을 24시간 감시한다. 매회 출연자들은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정한다.
카메라에는 시기, 질투 등 공적인 상황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들이 가감 없이 포착됐다. 훔쳐보기의 짜릿함은 단숨에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탄, 3탄 시리즈가 제작됐고 수십 개국에 프로그램 포맷이 수출됐다.
본격적인 리얼리티 쇼의 전성시대는 미국 CBS가 2000년 미국판 ‘빅 브라더’를 제작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서바이버(Survivor)’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배철러(The Bachelor)’ 등 셀 수 없이 많은 리얼리티 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소재도 다양해서 짝짓기, 가수 오디션, 슈퍼모델 선발, 취업, 다이어트, 의상 디자인, 공포체험, 심지어 아내 바꾸기에 이르기까지 안 다뤄본 것이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제작된 리얼리티 쇼가 200여 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에서 리얼리티 쇼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미국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에 따르면 2004년 리얼리티 쇼의 방영시간이 시트콤을 능가했다. 리얼리티 쇼가 미국에 도입된 지 불과 4년 만의 일이다. 코미디, 드라마, TV용 영화 방영 시간은 크게 줄었다.
미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리얼리티 쇼의 최대 제작국이자 수출국이다. 국내에도 웬만한 미국 리얼리티 쇼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소재는 다양해도 이들의 공통분모는 ‘스타 만들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타가 되고자 하는 일반인의 욕망이다. 리얼리티 쇼의 최종 승자에게는 엄청난 상금과 함께 스타의 길이 보장된다. 현대판 신데렐라의 탄생이다.
‘평등지향’ 한국식 리얼리티 쇼
한국식 리얼리티 쇼는 미국 스타일과는 다르다. ‘리얼’을 표방한다지만, 드라마보다 조금 덜 연출된 상황일 뿐 계산된 설정 속에 연예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기존의 오락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다. 신데렐라도 없다. 한국의 리얼리티 쇼는 오히려 스타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소탈하고 소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매주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거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코를 골거나 잠에서 막 깬 얼굴을 공개하는 식이다.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연예인들의 인간적 면모에서 시청자는 재미를 찾는다. ‘리얼’이라는 동일한 모토를 표방하지만 표출되는 양상은 미국과 상반된다. 왜일까.
한국인의 평등의식이 유난히 강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바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저서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내면화된 한국인의 평등주의를 지적했다. 이는 한국 리얼리티 쇼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인이나 재벌 2세들의 초호화 일상을 그린 리얼리티 쇼 ‘마이 슈퍼 스위트 식스틴(My Super Sweet 16)’이 국내에서 제작된다면 아마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폐지될지 모른다. 미국에도 유명 연예인이 일반인처럼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 쇼가 있긴 하지만, 초점은 다르다. 인간미보다는 이들이 얼마나 ‘무개념’인지를 비춘다.
가령,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의 농장 체험을 그린 리얼리티 쇼 ‘심플 라이프(The Simple Life)’에서 그녀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다. 국내 시청자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이다. 그런데 미국 시청자의 반응은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다. 어차피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식이다.
혹은 한때 최고였으나 지금은 쇠락한 스타들이 출연해 돈을 벌 수 있다면 아무리 남루한 일상이라도 공개하는 모습에서 재미를 느낀다. 헤비 메탈의 전설로 통하는 오지 오스본은 자신의 일상을 다룬 리얼리티 쇼 ‘오스본 가족(The Osbournes)’에서 버릇없는 아이들에게 절절매고 개와 고양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초라한 가장으로 그려진다.
사실 미국 TV에서 방영되는 리얼리티 쇼의 대부분은 일반인의 참여로 이뤄진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일반인의 모습이 미국 리얼리티 쇼의 관전 포인트다. 이미 시중에는 ‘리얼리티 쇼에 캐스팅되는 법’ ‘리얼리티 쇼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법’과 같은 책도 나와 있다. 책 한두 권을 읽는 것으론 부족하다. 출연자들은 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천달러를 소비한다.
헤비메탈의 전설로 통하는 오지 오스본의 일상을 그린 리얼리티 쇼 ‘오스본 가족’의 한 장면.
언론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뉴욕의 의상 디자이너 바리오씨는 ‘프로젝트 런웨이(project runway)’에 캐스팅되기 위해 자비 7500달러(한화 750만원)를 들여 샘플을 제작했다. 또 설리반씨는 ‘서바이버’에 출연하기 위해 자신을 홍보하는 비디오테이프를 제작 발송하는 데 지난 5년간 8000달러를 지출했다.
영국의 문화학자 아니타 비레씨, 헤더 넌은 저서 ‘리얼리티 TV’에서 “리얼리티 쇼를 통해 일반인이 유명세를 타고 거액의 상금을 거머쥐는 장면이 전국에 중계되는 것은 시청자에게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청률로 이어진다는 것.
물론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리얼리티 쇼는 각계각층의 미국인이 한데 모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를 제시하지만 계층이동에는 무관심하고 온통 짝짓기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했다. 계층 갈등이 제시되고 종국에 해소되는 드라마나 시트콤과 달리 리얼리티 쇼는 갈등이 제시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리얼리티 쇼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를 단순히 평등의식이나 계층이동의 가능성 같은 국민정서상의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TV산업의 한 가지 특징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바로 스타들의 출연료다. 천문학적 액수의 출연료 때문에 유명 연예인을 쇼에 고정 출연시키기가 쉽지 않다.
탐 크루즈와 같은 A급 배우의 경우 영화 1편당 출연료가 2000만달러를 웃돈다. 시청률을 보장할 만큼의 스타급 연예인이 아니라면 차라리 일반인을 등장시킨 신데렐라 스토리가 제작비도 절감하고 시청률을 상승시킨다. ‘빅 브라더’의 성공이 이를 증명한 것이다.
드라마나 시트콤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적게는 200만달러에서 많게는 1000만달러 이상 드는데 그중 대부분은 스타들의 몸값으로 나간다. 2002년 시트콤 ‘프렌즈’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700만달러였고 그중 600만달러가 주인공들의 출연료였다. 그러나 리얼리티 쇼는 편당 100만달러선에서 제작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격차는 단순히 경제적 이슈를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미 시나리오 작가협회의 파업 당시 제작사 및 방송 관계자들은 “(리얼리티 쇼와 같은) 대본 없는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작가들의 요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백이 리얼리티 쇼로 대체 편성됐다. NBC 엔터테인먼트 공동회장인 벤 실버맨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본으로 진행되는 쇼의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리얼리티 쇼의 성황으로 배우들의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드라마와 시트콤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일부 유명 연예인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와 코미디언들의 출연 기회가 줄어든 것. 미 배우조합에 따르면 조합원의 3분의 2가 연간 1000달러도 못 되는 돈을 번다. 일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리얼리티 쇼로 인해 이 같은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TV의 민주화’
연예기획사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캐스팅을 주선하던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제작진은 전국에서 보내온 출연 희망자들의 비디오테이프를 직접 모니터하고 인터뷰해 캐스팅을 확정한다. 기획사에 속해 있지 않은 일반인을 출연시키기 때문에 ‘중간상인’에게 지출되는 비용이 절감되는 것이다.
경쟁을 통해 스타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프로젝트 런어웨이’.
리얼리티 쇼의 주된 시청자 층은 젊은이들이다. 미국의 인구통계 전문지 ‘아메리칸 데모그래픽스’가 2001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8~24세 집단의 27%가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되는 어떤 프로그램보다 리얼리티 쇼가 재미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체 평균 15%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른바 ‘디지털 혁명’을 경험한 세대다. ‘디지털 혁명’의 핵심은 쌍방향 소통(interactive communication)에 있다. 기존의 매체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에 소통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독재에 가까웠다. 그러나 인터넷과 같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소통 방식이 민주화하면서 누구나 정보전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쉬운 예로 한국의 인터넷 얼짱 문화는 네티즌들의 참여만으로 스타를 만들어낸다. 동영상 사이트에 올린 UCC로 인기를 얻어 연예계에 데뷔하는가 하면 드라마 홈페이지의 시청자 의견란에 글을 올려 드라마 줄거리를 바꾸기도 한다. 디지털 세대는 이미 ‘참여’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리얼리티 쇼의 팬들은 쌍방향 소통에 적극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E-poll 마켓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리얼리티 쇼의 팬 가운데 70%가 정기적으로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드나든다. 2003년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2의 결승전 당시 시청자의 전화참여가 2억3000만통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다.
미래학자 데릭 드 케르코프는 이미 10여 년 전 디지털 혁명이 가져올 충격을 예견한 바 있다. 그는 1996년 IT 전문지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권력이 제작자에게서 시청자로 옮겨갈 것”이라며 “이야말로 생산수단이 노동자(즉 시청자)에게 주어지는, 마르크스의 꿈이 실현된 사회”라고 말했다.
리얼리티 쇼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 중 하나도 바로 ‘TV의 민주화’에 있다. 남녀노소, 빈부격차에 상관없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미디어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빅 브라더’ 영국판의 제작자 피터 바잘젯은 한 강연에서 “리얼리티 쇼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파에 대한 접근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하위층이 주 시청자”
물론 이와 같은 긍정적 견해는 주로 프로그램 제작자나 방송 관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많은 이가 리얼리티 쇼의 내용이 상당부분 지나치게 저속해 쓰레기 같다는 혹평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 미국에 건너와 리얼리티 쇼에서 방송되는 내용을 보고 그 선정성에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가령 여러 명의 여성 출연자가 한 남자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이 있다. 출연 남성은 번갈아가며 각 여성과 데이트를 하는데, 남녀가 속옷 차림으로 욕조에 앉아 서로의 몸을 더듬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심야에 방송되는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출연 여성끼리 경쟁이 치열해져 욕설을 하거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장면도 가감 없이 방송된다.
리얼리티 쇼의 부작용은 또 있다. 일반인에게 벼락부자 혹은 벼락스타의 기회를 주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못했을 때 극도의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리메이크한 ‘서바이버’의 한 출연자는 첫 방송에서 탈락하자 자살해버렸다. 2005년에도 미국의 리얼리티 쇼 ‘콘텐더(The Contender)’의 한 출연자가 자살했다. 방송사 측은 그의 죽음이 프로그램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리얼리티 쇼의 경쟁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한국 리얼리티 쇼의 대표 격인 KBS 2TV ‘해피선데이’`의 인기 코너 `1박2일`팀.
‘탈규제’와 ‘상업화’라는 미디어 환경 속에 리얼리티 쇼는 제작자들에게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상품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고수익이 보장된 사업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사 과정에 있는 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미국 리얼리티 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쇼를 보지 못했다는 학생이 상당수였다. 집에 아예 TV가 없다는 이도 제법 많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리얼리티 쇼는 도대체 누가 보는 것일까.
‘아메리칸 데모그래픽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중하위층이 주로 리얼리티 쇼를 시청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낙후된 남부 지역의 시청자 비율이 기타 지역에 비해 두 배가량 높았다. 가난하기 때문에 교양이 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위험하다. 다만, TV 말고는 딱히 여가시간을 보낼 길 없는 계층에게 리얼리티 쇼는 저렴한 오락거리를 제공한다.
‘과잉현실’의 허구
리얼리티 쇼의 부정적 효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허구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내 일상의 한 시간을 토막 내 TV에 방영한다고 해서 쇼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리얼리티 쇼는 특이한 사람의 특이한 일상을 특이한 방식으로 편집해 내보내는 쇼다.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가정 생활을 그린 리얼리티 쇼 ‘호건 노우즈 베스트(Hogan Knows Best)’는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이 쇼에서 그는 자녀 교육에 엄격한 보수적 아버지이자 아내에겐 한없이 다정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미성년자 아들이 음주운전으로 대형 교통사고를 내면서 쇼는 중단됐고 곧이어 아내는 이혼을 청구했다. 호건은 아들의 재판정에서 판사에게 “사실 이 쇼는 각본에 의한 것이었으며 아들은 PD가 시키는 대로 연기했을 뿐”이라고 실토했다.
‘리얼리티 쇼’라는 단어는 사실 자기모순이다. 쇼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계산된 행위이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심지어 가상이 현실을 압도해간다. 현실보다 더 실제적인 현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과잉현실(hyperreality)’이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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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현실이 리얼리티 쇼만큼 흥미롭지도 재미있지도 않으냐며 종종 한탄한다.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묵묵히 참아내는 리얼리티 쇼 속의 남편을 보면서 오늘도 아내는 자신의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다. ‘과잉현실’이 ‘현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아이러니다. 일상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제대로 살고 있다. 삶은 원래 지루한 롱테이크처럼 느리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