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을 주관하는 WTF(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가 스포츠로 발전한 반면 ITF(국제태권도연맹) 태권도는 무도정신과 실전성을 중시한다. 세계태권도문화축제 마지막 날 국내 이종격투기 선수들과 맞붙은 ITF 선수들은 실전태권도의 위력을 한껏 과시했다. ITF 총재는 북한의 장웅 IOC 위원. 하지만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이와는 다른 ITF 소속이다. ITF 분란에 얽힌 비화. 남북 교류 내세운 ITF와 WTF의 ‘정치적 통합’ 논란. 정통성 시비에 휘말린 북한 태권도의 앞날.
상대는 종합격투기(MMA=Mixed Martial Arts) 선수인 한국의 김형렬(19). 경기는 니킥(무릎공격)이 허용되는 입식타격기 규칙에 2분 2라운드로 진행됐다.
땡. 공이 울리고 시합이 시작됐다. 라모스는 빠른 발차기로 상대를 공략했다. 뒤돌아 옆차기(뒤차기)로 복부를 정확히 가격하는 등 여러 차례 유효타가 나왔다. 태권도 선수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접근전에도 강했다. 그는 유연한 몸놀림과 날카로운 주먹 공격으로 상대를 유린했다. 태권도 선수가 주먹을 잘 쓰는 것이 이채로웠다.
하지만 약점도 눈에 띄었다. 종종 옆차기 자세를 취했는데, 이것이 상대에게 역습의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뒤돌려차기나 뛰어돌아 옆차기 같은 화려한 발차기는 실속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성공률이 낮았다. 동작이 크기 때문에 상대가 붙으면 발이 돌아가다가 상대 팔이나 몸에 걸렸다. 더러 가격에 성공하더라도 파괴력이 약했다. 어쨌거나 승리는 예상대로 라모스의 것이었다. 심판 전원 일치의 3대 0 판정승.
종합격투기 선수들과 맞붙어 실전태권도의 위력을 한껏 발휘한 ITF태권도 선수들. 주먹공격에도 능한 일본의 히로키 호리고메가 앞차기를 날리고 있다.(좌) 발차기 공격이 실패한 직후 상대에게 밀려 넘어져 고전하는 아르헨티나의 아리엘 알리마노. (중) 이탈리아의 실비아 파리구는 점프 스트레이트, 뛰어돌아 옆차기 등 탁월한 기량으로 승리했다.(우) 지호영 기자
토요일인 7월5일 오후 8시. 충북 청원에 있는 충청대학교 야외음악당에서 벌어진 태권도 대 종합격투기의 대결은 시종 긴장감이 넘쳤다. 이날 시합은 7월1일부터 5일간 이 학교에서 열린 제10회 세계태권도문화축제의 마지막 행사였다.
대회명은 ‘스페셜 배틀’. 실전태권도를 표방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 태권도 선수들과 국내 종합격투기 대회인 스피릿MC에서 활동하는 격투기 선수들이 맞붙은 것이다. 태권도 선수들은 한 명만 빼고 모두 외국인이었다.
원래는 8경기가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태권도 선수 한 명이 부상으로 불참하는 바람에 한 경기가 취소됐다. 입식타격기 규칙으로 진행된 5경기에서는 태권도가 3대 2로 앞섰다. 하지만 그래플링(grappling·붙잡거나 뒤엉켜서 싸우는 것) 2경기에서 완패하는 바람에 종합전적 3대 4로 졌다. 종합격투기 선수 중에는 세계적 이종격투기 대회인 프라이드FC에서 활약한 최무배도 포함돼 있었다. 이날 아르헨티나 태권도 선수 가르시아 크리스티안과 맞붙은 최무배는 암바(arm bar·다리로 상대의 팔을 고정시켜 관절 꺾기)로 승리를 따냈다.
관중석 곳곳에 외국인이 앉아 있었다.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참가한 선수들과 그 가족,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스페셜 배틀’에 출전한 태권도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했다. 발차기 유효타나 화려한 공격이 나올 때마다 열광적으로 환호하면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태권도의 실전성. 실전에 약하다고 평가받는 태권도가 과연 종합격투기계에서 통하느냐는 것. 상당수 언론이 이 대회를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출전 선수들이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아닌 국제태권도연맹 소속이라는 점도 눈길을 끄는 데 한몫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세계 태권도계는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과 북한이 관련된 국제태권도연맹으로 양분돼 있다. 물론 주류는 올림픽 태권도 경기를 주관하는 세계태권도연맹이다. 국제태권도연맹은 한국 정부에 의해 친북인사로 낙인찍혔던 고(故) 최홍희씨가 창립한 단체다.
스포츠적 요소가 강한 WTF 태권도에 비해 ITF 태권도는 무도정신과 실전성이 두드러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외형상 가장 큰 차이점은 발차기 못지않게 주먹기술이 발달한 것. 실전태권도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페셜 배틀’은 밤 10시 넘어 끝났다. 일반적 예상과 달리 ITF 태권도 선수들이 선전한 편이었다. 태권도의 새로운 가능성과 더불어 ‘화려한 발차기는 실전에서 금물’이라는 격투계의 ‘상식’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시합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컨벤션센터 회의실에서 시합에 출전했던 태권도 선수 7명 중 3명과 인터뷰를 했다. 이긴 선수, 진 선수 한 명씩에 여자 선수 한 명이었다.
선수들은 지친 기색이 뚜렷했지만 비교적 성실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승자인 일본의 히로키 호리고메. 상대 선수는 격투기 전적 4전 전승의 고종현. 히로키는 발차기보다는 주먹 공격으로 키가 6㎝ 더 큰 상대를 압도했다. 여러 차례 얼굴에 주먹을 꽂았고 훅으로 다운까지 빼앗아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히로키는 경기 소감을 묻자 “태권도가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통한다는 걸 입증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주먹 공격이 주효했던 것 같다.
“ITF 태권도는 주먹과 발을 대등하게 사용한다. 평소 훈련도 그렇게 한다. K-1(일본에서 열리는 입식타격 이종격투기 대회)에 영향을 받아 2년 전부터 킥복싱 시합에 참가하고 있다. 그런 경험이 승리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발차기 후 곧바로 역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타이밍은 괜찮았다고 본다. (발차기로) 상대를 눕힐 수 있도록 더 훈련하겠다.”
히로키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선수와 싸우고 싶다”며 “‘ITF의 사무라이’를 잊지 말라”고 호기를 부렸다.
다음은 패자인 아리엘 알리마노. 아르헨티나 국적인 그는 유우성과 5분 2라운드의 종합격투기 규칙으로 맞붙었다. 1라운드 초반에 활발하게 발차기 공격을 펼치다 유우성의 서브미션(submission·상대의 항복 신호를 받기 위해 관절을 꺾거나 경동맥 등을 조르는 행위) 기술인 하이 키 락(high key lock·팔을 위로 비틀어 어깨 꺾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레슬링과 킥복싱을 연마한 유우성의 격투기 전적은 8전 6승 2패.
-발차기 공격을 잘못한 후 곧바로 상대의 힘에 밀려 넘어졌고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잡히는 순간 느낌이 어땠나.
“두려웠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손목을 잡히는 순간 상대의 힘이 나보다 훨씬 세다고 느껴졌다.”
-다양한 발차기를 선보였는데,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MMA 룰로 처음 해본 경기라 감을 못 잡았다. 같은 발차기라도 상황에 따라 좋은 발차기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발차기가 될 수도 있다. 경험을 더 쌓으면 나아질 것이다.”
-오늘 경기로 봐선 아무리 태권도를 잘해도 종합격투기 규칙으로 붙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 태권도가 유리하다. 다음엔 거리 유지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이다. 잡히지만 않으면 승산이 있다. 그래플링에 대비해 파운딩(pounding·누워 있는 상대에 올라타 펀치를 날리는 것) 기술을 보강하겠다.”
스텝보다 호흡 중시
마지막으로 유일한 여성 선수인 실비아 파리구. 이탈리아 태생인 그의 상대는 격투기 전적 12전 8승 4패의 손나영이었다. 킥복싱과 무에타이를 익힌 손나영의 특기는 니킥.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단 한 차례도 니킥을 시도하지 못했다. 점프 스트레이트, 뛰어돌아 옆차기 등 탁월한 기량을 갖춘 파리구가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해 파고들어갈 공간을 전혀 내주지 않았기 때문. 결과는 파리구의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 스물두 살인 파리구는 인터뷰 내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발차기 기술이 다양하고 적중률도 높았다. 하지만 상대에게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 차례 큰 타격을 입혔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태권도학교에서 뒤돌아 옆차기 훈련을 많이 했다.”
-경기 내용에 아쉬운 점은 없나.
“경기를 즐겼다. 환상적인 시합이었다. 발차기와 펀치 모두 완벽했다.”
-태권도라는 무술을 어떻게 생각하나.
“태권도는 완전한 무도다. 이탈리아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다 교육받은 사람이다. 태권도는 내 삶의 방식이자 전부다.”
경기 시작 전 “굉장히 불안하다”라고 경기 결과를 전망했던 ITF대한태권도연맹 오창진 사무총장은 경기가 끝난 후 “기대 이상의 결과”라며 흡족해했다.
“젊은 태권도인들이 원하는 게 뭔가. 바로 태권도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도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이 경기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MMA 룰로 붙어도 이길 수 있다. 남미 쪽 태권도 선수들 중엔 유술(柔術)에 능한 선수가 많다. 이번 시합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선수 선발 폭이 좁았다.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참가한 선수들 중에서 뽑자니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축제기간에 벌어진 태권도 시합에 참가한 터라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둘째는 보호구 착용이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무거운 글러브를 끼고 발등에 보호대를 찼다. 보호대나 글러브가 없었다면 발차기나 주먹 공격이 훨씬 더 위력적이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마티아스 라모스나 실비아 파리구는 실전태권도의 명성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줬다. 비록 발차기 공격의 한계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올림픽 태권도에서는 찾기 힘든 실전성이 돋보였다. 특히 권투와는 또 다른 맛의 주먹기술이 매력적이었다. 오 사무총장은 “K-1 선수 중에 바다 하리를 비롯해 ITF 태권도 유단자가 6명이나 있다”고 자랑했다. K-1 헤비급 챔피언인 바다 하리는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모로코 태생의 격투가. 강력한 스트레이트 펀치와 더불어 뒤돌아 옆차기 등 태권도 발차기가 주무기다.
태권도 창시자의 정치적 망명
실전태권도를 추구하는 ITF 태권도는 WTF 태권도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기술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것이 허용된다는 점. 당연히 주먹기술이 발달해 있다. 실제로 ‘스페셜 배틀’에 출전한 ITF 태권도 선수들은 잽과 스트레이트는 물론 훅도 곧잘 적중시켰다.
반면 발차기 기술에서는 WTF가 앞선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올림픽 스포츠로 발전하면서 빠르고 섬세한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 이에 비해 ITF 발차기는 동작이 크고 무겁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형(型)도 차이가 난다. 우선 용어부터 다르다. WTF 태권도에서는 품새라 하고, ITF에서는 틀이라고 한다. WTF 품새는 ‘태극 1~8장’을 비롯해 16가지다. ‘천지’로 시작돼 ‘통일’로 끝나는 ITF 틀은 24가지로 구성돼 있다. ITF 측은 “WTF 태권도인들도 형만큼은 ITF가 낫다고 인정한다”고 주장한다. ITF 틀에서는 호흡법을 중시한다.
경기 규칙도 다르다. WTF 경기장 넓이는 12×12m이고 ITF는 9×9m다. 체급은 WTF가 8개, ITF가 5개다. 경기장 규모나 체급을 보더라도 ITF 태권도가 더 실전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오창진 ITF대한태권도연맹 사무총장은 “WTF 선수들은 절대로 (이종격투기) 링에서 뛸 수 없다”며 자신만만해했다.
“나도 WTF 쪽에서 운동을 해봐 안다. 그쪽 태권도는 오로지 경기에서 점수를 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득점에 유리한 스텝이란 게 따로 있다. WTF 선수들은 그런 것에만 익숙하다. 그런데 사각의 좁은 링에선 스텝이 제대로 안 된다. 반면 우리는 스텝보다 호흡을 중시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유리하다.”
ITF 태권도가 북한태권도로 알려진 것은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씨의 ‘친북’ 행적과 관계 있다. ITF 역사는 곧 최씨의 태권도 개척사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기네스북에도 최씨가 태권도 창시자로 기록돼 있다.
1950년대 태권도 탄생에 이바지한 무술인들은 대부분 일본 가라데를 배운 사람이었다. 최씨 역시 가라데 유단자였는데, 가라데를 변형해 독자적인 무술을 만들었다. 이것이 태권도의 원형이다. 1955년 육군 장성이던 최씨는 ‘한국형 가라데’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붙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인가를 받았다. 이후 국내 무도계에서 태권도라는 명칭이 공식 사용됐고, 군에는 최씨의 호를 딴 ‘창헌류’ 태권도가 빠르게 보급됐다.
1959년 최씨의 주도로 대한태권도협회가 창설됐다. 최씨는 초대 회장과 3대 회장을 역임했다. 1966년엔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했다.
최씨의 아성이 흔들린 것은 1969년 대통령경호실 출신의 김운용씨가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면서. 유신 반대 등으로 박정희 정권과 갈등을 겪은 최씨는 결국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다. 이듬해 서울에서는 세계태권도연맹이 창립됐고 김운용씨가 초대 총재를 맡았다. 김씨는 또 초대 국기원장에도 취임해 태권도계의 절대 권력자로 떠올랐다.
태권도 통합의 虛와 實
1980년 최씨는 15명의 사범단을 이끌고 북한에 건너가 태권도 시범을 했다. 이것이 ITF가 북한과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이후 최씨는 여러 차례 방북해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에 의해 친북인사로 낙인찍혔다. 1985년엔 필생의 역작인 태권도백과사전을 완간했고, 캐나다에 있던 ITF 본부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겼다.
ITF는 북한과 남미, 동구권을 중심으로 세계태권도대회를 여는 등 세력을 확장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WTF를 공식 국제 태권도 기구로 인정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WTF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로는 태권도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최씨는 평소 “북한 땅에서 눈을 감겠다”고 말했다. 2002년 6월 그는 평양에 위암수술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4세.
창시자가 사망한 이후 국제태권도연맹은 같은 이름을 쓰는 세 단체로 분열됐다. 외형상 최홍희씨의 후계자는 북한의 IOC 위원인 장웅이다. 장 위원은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ITF 특별총회에서 새 총재로 추대됐다. 북한 당국이 공개한 최씨의 유언장에는 장 위원을 후임 총재로 지명하는 듯한 발언이 담겨 있다.
그러자 최씨의 장남으로 IFF 사무총장을 역임한 최중화씨를 지지하는 세력이 반발했다. 이들은 북한이 공개한 창시자의 유언장이 날조됐다며 그해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따로 총회를 열고 최씨를 총재로 선출했다. 이들은 최씨 사망 당시 평양에 있었던 최씨 딸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 당국이 최씨를 안락사시켰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번에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참가해 이종격투기 시합을 벌인 국제태권도연맹은 바로 최중화씨가 이끄는 단체다.
2003년 6월엔 또 한 명의 ITF 총재가 탄생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ITF 총회에서 베트남 출신 캐나다인 트란 콴이 총재가 된 것. 트란 콴은 최홍희 총재 시절 ITF 사무국 간부로 활동했다.
세 ITF 중 국제적인 위상이 돋보이는 것은 장웅 총재가 이끄는 ITF다. WTF와 태권도 기술 및 기구 통합을 두고 몇 년째 협상을 벌이고 있다. 두 단체의 태권도 통합 논의는 ‘남북태권도 통합’으로 불리며 태권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 통합이 쉽지 않은 데다 또 다른 2개의 ITF 단체가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 없는 ‘정치적 쇼’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대한민국으로 들어가라”
WTF와 ITF의 통합 논의는 IOC를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IOC 주변에서는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질지 모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지나친 점수 위주 경기로 대중적 흥미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것이 ITF와 통합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던 WTF를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한 배경이다.
ITF 장웅 총재가 IOC 위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IOC의 입김도 작용했다. 거기에 남북 스포츠 교류라는 명분이 가세했다. 사실 장 총재가 이끄는 ITF는 다른 두 ITF보다 세력이 약하다. 통합 논의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ITF와 올림픽 퇴출 위기를 해소하려는 WTF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WTF 측도 통합 논의에 ‘정치논리’가 개입됐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통합 실무회담 주역인 최만식 WTF 사무차장은 “ITF 총재가 IOC 위원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며 “IOC 위원장의 통합 권고도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최 사무차장에 따르면 양 기구는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자”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술통합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방안과 행정통합 문제를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그는 “남북태권도 통합이라기보다는 IOC가 관여하는 국제기구 대 국제기구의 통합으로 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종격투기 시합이 부록처럼 끼어든 제10회 세계태권도문화축제는 평소 소원한 관계인 WTF와 ITF가 처음으로 함께 참가한 태권도대회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최 사무차장은 “세계태권도문화축제는 WTF나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승인하지 않은 대회”라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WTF 소속 일부 선수가 대회에 참가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WTF의 공식 회원국은 188개. ITF는 그보다 회원국 수가 훨씬 적다. ITF 세 기구는 서로 자신의 세력이 가장 크다고 주장한다. 객관적인 기준은 가입 회원국 수. 세 기구 모두 100개국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 기구의 회원국이 겹치는 데다 나라가 아닌 단체를 포함시키기도 해 실제 회원국 수는 그보다 적다는 게 정설이다.
세 ITF는 모두 한국에 지부를 설립해 놓았다. 장웅 측은 ITF대한민국태권도협회, 최중화 측은 ITF대한태권도연맹, 트란 콴 측은 ITFKOREA라는 명칭을 쓴다.
최중화 ITF 측은 북한이 ITF를 주도하는 데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오창진 사무총장의 말이다.
“북한이 주도하는 ITF는 그간 무리한 돈 요구, 공(空)단증 남발 등으로 태권도인들로부터 외면받아왔다. 남미와 동구권 국가들도 다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더는 설 자리가 없으니 WTF와 기구 통합을 하려는 거다. 우리는 그런 통합에 반대한다. 태권도가 정치적으로 놀아나면 안 된다. 태권도의 종주국은 어디까지나 한국이다. 만약 최중화 총재가 북한으로 넘어갔다면 곧바로 자기네가 태권도 종주국이라고 주장했을 거다. 창시자(최홍희)께서는 죽기 전 ITF 태권도인들에게 ‘대한민국으로 들어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우리는 그 증서를 보관하고 있다. 타이핑 글에 창시자의 사인이 들어간 문서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이 한국으로 귀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ITF대한태권도연맹 오창진 사무차장.
장웅 ITF 측 설명에 따르면 한국은 태권도 종주국이고, 북한은 태권도 주도국이다. 한국지부인 ITF대한민국태권도협회 김훈 사무총장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며 최중화 ITF 측 주장을 반박했다. 김 사무총장은 장 총재의 특별보좌관이기도 하다.
“그쪽(최중화 ITF)이 주최하는 대회와 우리가 주최하는 대회를 비교해보면 안다. 그쪽은 세계대회를 열지 못한다. 세력으로 치면 오히려 트란 콴 쪽이 더 크다. 트란 콴 ITF는 유럽에서 큰 규모로 세계태권도대회를 열고 있다. 최중화는 창시자가 살아 계실 때 총회에서 제명당했다. 태권도를 비즈니스로 키우려 했기 때문이다. 최중화는 제명 조치에 반발해 ‘뉴 ITF’를 만들어 맞섰다. 그런데 창시자가 죽은 다음엔 말을 바꿨다. 동조자를 모아 별도의 총회를 열어 총재가 됐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중요하다. IOC에서 인정하는 ITF는 우리밖에 없다.”
김 사무총장은 예전에 기자와 만나 태권도 통합에 대한 WTF의 ‘무성의’한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낸 바 있다. ITF 측이 구체적인 통합방안을 제시하는 반면 WTF 측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협상장에 나타나 실제로 통합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 최근 북한에 다녀왔다는 그는 “북한도 더는 태권도 통합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전했다.
한국 처지에서는 국제무대에서 태권도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장웅 ITF보다는 ‘종주국으로의 귀환’을 내세우는 최중화 ITF가 더 반갑고 가까울 법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장웅 ITF가 한국이 이끄는 WTF의 공식 협상파트너로 존중받는 반면 최중화씨는 한국 입국이 금지돼 있다. 태권도를 북한에 보급한 ‘친북행위’와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 때문이다.
최씨가 전 전 대통령 암살을 꾸민 계기는 1980년 신군부의 ‘광주 학살’이었다. 캐나다 TV를 통해 무장한 군인들이 시민을 살상하는 광경을 지켜 본 최씨는 ‘의협심’에서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계획했다고 한다. 1981년 전 대통령의 방문 예정지인 필리핀의 한 골프장에서 사살하려 했으나 사전에 캐나다 경찰에 발각돼 미수에 그쳤다.
1982년 전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을 앞두고 캐나다 경찰이 이 암살미수사건을 본격 수사하자 최씨는 북한으로 피했다. 이후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을 떠돌다가 부친의 권유로 1991년 10년 만에 캐나다로 돌아와 자수했다. 캐나다 법원은 그에게 6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1년을 복역한 후 모범수로 출소했다.
오창진 ITF대한태권도연맹 사무총장은 “최 총재는 언젠가 한국으로 귀환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홍희 부자의 ‘친북 족쇄’가 풀릴 때 세계 태권도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