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선진 문명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이상적인 혼인제도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853종류에 이르는 인류 문화권 중에서 일부일처제를 규정한 곳은 16%에 불과하고 나머지 84%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하고 있다(인류학자 헬렌 피셔). 인간 사회에서도 일부다처제가 일부일처제를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슬람 문화권이나 일부 아프리카 부족의 남정네들은 공인된 일부다처제의 틀 안에서 성적 풍요를 옹골지게 누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티베트나 폴리네시아 일부 문화권에선 일처다부(Polyandry)의 혼인제도가 존속, 한 아낙이 다섯 남편을 거느릴 수 있다. 아낙이 상대하는 사내들은 대개 시댁 형제들이다. 맏형이 결혼하면 아우들도 형수의 육신을 균등하게 공유한다. 시댁 남자들을 싹쓸이할 수 있는 특혜(?) 때문에 이 지역 유부녀들은 우리나라 아내들과 달리 좀체 바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렇듯 인간의 성 관습이나 성 행동은 문화와 시대 배경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남녀 간 키스나 포옹이 친밀감을 표시하는 일상적 체어(體語)에 불과한 서구문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성 지식이나 기술을 미리 습득하기 위한 교육 과정으로 혼전 성 관계를 권장하는 성 문화가 존재하는가 하면 금욕주의가 삶 전체를 지배하는 문화권도 존재한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서안(西岸)의 이니스비그(Inis Beag)라는 섬에서는 비정하리만치 억압된 성 생활을 강요한다.
나신으로 생활하는 무의인종(無衣人種)과 신체 노출을 금기시하는 차신인종(遮身人種)이 공존하고 혼외섹스나 동성애를 당연시하는 프리섹스 집단과 이를 성적 방종으로 간주해 무서운 징벌로 다스리는 집단이 공존한다. 이들에게 섹스는 반드시 번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성인식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섹스를 허용하는 공인의식이다. 성인식을 치른 후에야 암암리에 성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보편적 형태다. 마취도 없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나 돌 조각으로 생살을 도려내는 할례 의식. 여성의 신품 딱지인 처녀막을 부족장이나 제사장이 미리 터뜨려주는 ‘파과(破瓜)의식(Defloration ceremony)’도 섹스를 용인하는 성인의식의 일부였다. 이렇듯 아픔을 감내하는 의식의 대가로 비로소 성적 쾌락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성기의 살가죽을 끊어내는 여성 할례가 성행한다. 여성의 성적 감열지역을 도려내고 봉쇄하는 야만적 관습의 바탕에는 여성의 성감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한 남성의 순수 혈통을 전승시키는 성실한 씨받이로 묶어두기 위한 얄팍한 남성 위주의 이기(利己)가 깔려 있다.
아무튼 한 문화권에서 지극히 보편화된 성 관습이나 성 행동이 다른 문화권에선 철저하게 금기 내지 배척되는 일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희한한 성 관습은 에스키모 사람들의 아내 접대 풍습이다. 남편이 친해지고 싶은 친구나 동료가 생기면 그들에게 자신의 부인을 잠시 임대, 제공해 성적 수발을 들게 하는 습속(習俗)이다. 아내는 남편이 지정한 사내와 수일 내지 수주 동안 동침해야 하는데 이때 사내와 아내와 동침을 거절하면 자신에 대한 적대감의 표시로 간주한다.
일부일처의 틀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일부다처와 일처다부를 꿈꾼다. 싸기만 하면 암컷을 외면하는 동물 같은 남자들만큼 아랫도리를 무단 임대한 후 아무 일 없다는 듯 입을 씻고 시치미 떼는 동물 근성의 여자가 어디 한둘인가? 싹을 틔워 열매를 맺는 소중한 텃밭의 생산성과 씨앗을 파종하는 막대기의 가치와 책임을 무시하고 무작정 싸고 그저 받아내는 ‘용기’가 넘치는 세상이다. 불륜이라는 정신적 고리를 잘라내는 접촉 사고가 많은 것은 동물적인 본디 색깔을 쉽사리 지워낼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일부일처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한 채 배우자의 눈치를 살피며 곁눈질, 도둑질에 여념이 없는 21세기의 일부일처 제도는 분명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에스키모 사내를 친구로 사귀거나 에스키모 남자와 결혼해 탈쇄(脫灑)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