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예비 경찰이다. 각종 수사 이론과 무술에 정통한, 문무를 겸비한 예비 경찰이다. 허를 찌르는 수사와 날렵한 몸동작으로 어떤 범인이고 잡을 자신이 있다. 때론 영화 ‘무간도’의 주인공처럼 위장수사에도 기꺼이 몸을 던질 테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범인과 두뇌게임을 하기보다는 취객 간의 다툼에 시시비비를 가릴 일이 더 많았다. 임의동행을 요구하면 백이면 백 고분고분 따라왔다. 그래서 실망했느냐고? 아니, 일상의 평온함이 내 어깨에 달렸다는 책임감에 가슴이 벅차다.
찰칵, 소리를 확인했다면 두 팔을 눈높이에 맞춰 수평으로 쭉 뻗는다. 미끈한 권총의 척추 앞머리에 달린 가늠쇠와 가늠자를 일자로 맞춘다. 가늠쇠와 가늠자와 목표물이 일치된 정조준 상태. 방아쇠에 닿은 검지에 살짝 힘을 싣는다.
탕, 소리와 함께 몸이 휘청거린다. 힘들어도 3초간은 온 힘을 다해 반동에 맞서야 한다. 1mm의 롤링(rolling·좌우 흔들림)이 11.3m 이상의 오차로 이어진다. 총알이 날아간 위치를 가늠한 뒤 목표물로 다가가 결과를 확인한다. 사격 한 발은 이렇게 ‘자세-파지-조준-격발-추적-예연-분석’의 7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1탄 사격 개시!” “2탄 사격 개시!”
통제관의 지시에 따라 다섯 시간째 이 과정을 반복하는 이들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 시흥구에 위치한 경찰대학 실내 사격장. 수업을 듣는 이 학교 2학년 학생들의 사격술과 미간 주름이 동시에 깊어간다. 방학을 보름이나 훌쩍 넘겼지만 학내 어디에서도 나태한 학생은 찾을 수 없다.
경찰대 학생들에게 방학은 휴식기간이 아니다. 절반은 학기 중 배운 이론을 교실 밖에서 실습하는 기간이다. 사격 실습도 그중 하나. 수업은 꼴찌 학생이 통과점수인 70점을 넘기고서야 마무리됐다. 정조준을 수없이 반복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 그는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매일 대여섯 시간씩 집중 훈련을 하니 실력이 부쩍 는 것 같다”며 사격장을 빠져나갔다.
젊은 경찰간부 육성을 목표로 설립된 경찰대는 규모가 작다. 각 학년 정원은 120명. 그중 10%인 12명이 여학생이다. 4년 대학생활은 법학, 경찰학, 무도, 사격 등 경찰 업무에 필요한 교육으로 이뤄진다.
“학교 규모가 작아 동아리, 학회, 학생회 등 어떤 식으로든 나를 드러내는 활동을 하게 돼서 좋아요. 이런 장점이 있는 반면 기타 교양과목이 다양하지 못한 점은 아쉽죠.”
한 2학년 여학생의 말처럼 리더의 화법 등 일찍부터 간부 소양교육을 받아서일까. 다른 대학생들보다 한층 의젓한 느낌이다.
전교생은 방학 3, 4주 동안 여름학교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그 백미는 경찰서 실습이다. 3학년 학생은 희망 연고지의 형사과 강·폭력팀에서, 4학년은 교통과에서 2주간 현장 근무를 하게 된다. 이들을 동행 취재한 내용과 학생들의 감상문을 바탕으로 올해와 지난해 여름 경찰대생들의 실습체험을 일지로 재구성했다.
“잡기 힘들 것 같아요”
강·폭력팀에서의 실습 첫날. 팀장과 형사 7명이 한 팀을 이뤘다. 팀의 하루는 각자 맡은 사건에 대한 간략한 현황 보고와 상부 지시를 듣는 회의로 시작된다. 무전기를 받았는데 관할지구대 3개소와 팀원들이 연결돼 있다고 한다. 무전기에서 불완전한 문장이 흘러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실습 전 형사 일반행정, 과학수사, 형사실무, 통신수사 기법 등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았다. 교수님은 수업 내내 “이론을 백번 듣는 것보다 실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게 도움이 된다”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범죄는 일어나지 않아야 마땅하지만, 실습하는 2주 동안 다양한 사건사고를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선배 형사의 외근 길에 따라나선다. 형사기동대(형기대) 승합차에 오르며 “어떤 사건이냐”고 물었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한 뒤 그냥 놓고 왔다는 시민이 돈을 찾아달라며 신고한 사건이라고 했다. 은행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CCTV 분석을 의뢰했다. “최근 통신수사에 의지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수업 때 배웠는데, 과연 거의 모든 교통사고와 금융관련 사건 수사에서 CCTV가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IP추적,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 등 통신수사의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감청영장 청구 등의 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통신수사는 최후의 방법입니다. 과도한 통신수사로 인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죠. 다른 모든 수사기법으로도 사건 해결이 불가할 때 통신수사를 진행합니다.”
경찰대 3,4학년 학생들은 방학마다 희망 연고지의 경찰서에서 현장 실습을 해야 한다.
CCTV 화면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돈을 인출한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일단 줄무늬 운동복에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는 피해자부터 찾기로 한다. 현금인출기를 사용하는 수십명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길 40분. 드디어 피해자가 나왔다. 자, 이제 뒷사람이다. 그가 피해자의 돈을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다.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주위를 살피던 뒷사람은 피해자의 돈만 가지고 떠났다. 골치 아프게 됐다. 은행 거래를 하지 않았으니 그의 인적사항을 추적할 길이 없다.
“너 같으면 어떻게 할래?” 형사가 물었다. 통화 추적? 화면에서 범인은 통화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 시간에 근방 400m에서 전화통화한 사람은 수백명이 넘을 거라고 한다. 본인 명의가 아닌 경우를 고려하면 추적 대상은 수천명으로 늘어난다. 아무래도 마땅치 않다. 빤히 얼굴은 아는데 단서는 없는 상황. 약만 오른다.
“잡기 힘들 것 같다”는 나의 답변에 형사는 “큰 사건보다 이런 사건이 더 복잡하고 품이 많이들뿐더러 해결도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비밀번호를 읽는 기계로 훔친 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현금을 인출해가는 범죄가 기승인데, 모자와 장갑에 선글라스까지 끼면 범인이 누군지 알 길이 없다는 어려움도 들려줬다.
“‘내 이름은 000입니다. XX경찰서 협상가로서 당신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습니다’로 시작한다. 가명을 쓰는데, 도중에 실수로라도 본명을 말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파악한다. 사건의 동기를 파악하되 속단하지 않는다. 인질범이 협상가의 계획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를 몰아붙여서도 안 된다. 오히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 어수룩하게 구는 전술이 유리할 수 있다.
‘협상의 기술’
경찰관에겐 다양한 자질이 요구된다. 경찰대 학생들은 4년간 경찰학, 법학, 무도, 사격, 외국어 등 경찰 업무에 필요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인질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어디선가 본 인질범 대응 매뉴얼을 떠올린다. 팀원들은 범인이 전화를 건 공중전화 번호를 신속하게 추적한 뒤 곧장 그곳으로 내달렸다. 실제 상황은 아니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연출한 모의훈련이었다.
범죄는 다양하다. 아무리 매뉴얼을 숙지해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대응이 나올 수 있다. 긴장하면 손발 척척 맞던 팀워크도 어긋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작전 수행시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의훈련을 실시한다. “인질강도 사건은 흔하진 않지만 한번 일어나면 피해가 크기 때문에 평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팀장이 말했다.
일상이 일탈로 얼굴을 바꾸는 금요일 저녁, 거리에는 취객과 이들을 노리는 절도범이 넘쳐난다. 금요일 당직을 서는 경찰로서는 이날이 ‘대목’이다. 새벽 2시, 형사분들과 함께 술집과 호텔 주변으로 순찰을 나갔다. 치기범들은 보통 대리운전을 가장해 새벽녘에 어슬렁거린다.
동행한 팀장님은 잠시 현장을 둘러본 뒤 치기범들을 솎아내는 신기를 발휘했다. “경찰간부는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해. 그렇지 못하면 그냥 도장만 찍고 돌아다니는 어설픈 간부밖에 안 되거든. 현장을 모르면 아랫사람 마음도 헤아릴 수 없고.”
팀장의 말에 다른 무리를 관찰하던 중 무전기 연락이 왔다. 만취한 취객의 지갑을 훔쳐 돈만 꺼낸 뒤 지갑을 버리려던 범인을 다른 형사가 현장 검거한 것이다. 피해자와 피의자를 태우고 경찰서로 향했다. 만취한 피해자를 차에 싣느라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피해자를 깨우는 것은 더 난감한 일이었다. 집으로 가겠다는 것을 음료수를 먹여가며 달래고 달래 겨우 조서를 받았다. 조서를 꾸밀 때는 쉬운 용어와 문구를 사용해야 한다. ‘강취했습니까’ 보다는 ‘빼앗았습니까’를, ‘폭행 사실이 있습니까’보다는 ‘때린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좋다. 별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말 한마디에 마음이 얼어붙기도 풀어지기도 하는 게 조사받는 사람의 처지라고 했다. 최근에는 ‘~바 있다’ ‘~함에 따르면’과 같은 호흡이 긴 문장보다는 단문 사용을 선호한다고 한다.
살인현장을 재현한 실습실에서 감식 수업을 받는 학생들.
“부검 전에 1차로 확인해야 할 부분은 머리의 외상입니다. 혹 상처가 없는지 시체의 머리를 골고루 살펴야 하지요. 그리고 몸에서 작은 상처라도 발견했다면 그 부분은 절개해서 꼭 확인해야 합니다.”
부검을 맡은 박사가 설명했다. 목이 졸려 죽은 것으로 판단될 때에는 목 부위 근육을 벗겨 사인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제일 안쪽 V자의 갑상선 근육으로 압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목을 조르면 종종 부러지는 U자의 설골 확인도 필수다.
머리 부검은 메스로 표피를 벗긴 뒤 골을 깨는 것으로 시작됐다. 골을 깨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다. 바깥에 출혈이 있으면 경막외 출혈, 안쪽에 출혈이 있으면 경막하 출혈인데, 이를 토대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있었는지를 판단한다. 경막하 출혈이라면 외상 없이 자연 출혈이 생긴 경우다. 이번 변사는 경막하 출혈로, 피해자는 고혈압이나 뇌종양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해 국과수 견학에서 주마간산으로 부검을 보긴 했지만, 이번에야 자세한 설명을 통해 전문지식을 깨칠 수 있었다. 방화로 불에 탄 시체는 식도의 그을음을 통해 미리 살해됐는지를 판단할 수 있고, 목 근육의 출혈과 선골을 통해 목을 매 죽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배웠다. 단, 마구 떼어낸 장기를 한꺼번에 뱃속에 털어 넣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시체는 사람일까 아닐까.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서라지만 한끝의 예의가 아쉬웠다.
영장실질심사 과정을 보게 됐다. 당직 형사 두 분, 그리고 피의자와 함께 형기대 차에 올랐다. “집에 전화 한 통 하게 휴대전화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법원으로 호송되는 중 피의자가 물었다. 형사들은 단호히 안 된다고 거절했다. 순간 수업시간에 배운 변호인 접견교통권이 떠올랐으나 실습생 신분이라 눈 질끈 감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피의자의 부탁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차 안에서까지 접견교통권을 단절시켜야 하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 역시 피의자 인권보호와 수사상 편의 간 가치 선택의 문제였다.
법원에 도착하니 여러 사람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이 있나요?” “더 할 말이 있나요?” 오래 기대하고 기다린 끝에 들어간 법정이건만 심사는 고작 몇 개의 질문으로 1분 만에 끝나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영장실질심사가 실효성이 있을까 싶었다. 또 변호사의 선임 여부에 따라 실질심사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변호사가 배석한 경우에는 10분 동안 판사 앞에서 피의자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설 변호인이 없는 이들에겐 국선 변호인이 선임됐는데, 국선 변호인의 심문은 형식적일뿐더러 전문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부터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실제 현장을 볼 수 있겠구나.’ 마음 한구석이 설렌다. 부리나케 달려간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흉기에 목을 찔린 피해자는 피범벅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청 테이프에 손목이 묶인 채였다. 법의학 시간 교수님이 들려주신 “시체는 말을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싸늘한 주검이 온몸으로 이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너 전화 사기범이지?”
“웃기지 마. 너 전화 사기범이지?” 출근하려고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화로 전해들은 부모는 현실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으리라. 안타까움을 잠시 접어두고 초동수사를 관찰하기로 한다.
경기청에서 나온 과학수사팀이 현장 감식을 했다. 감식은 엄격하고 세심하게 이뤄졌다. 피해자가 있는 방에는 강력팀 형사도 들어갈 수 없었다. 범인의 족적을 뜨고, 증거물을 수집하고, 지문을 채취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현장에 임장한 경찰관은 현장 임장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임장일지에는 사건 명부터 발생 일시, 장소, 피해자, 감정물, 증거물 채취상황까지 자세히 기록된다.
“지문은 변사자와 불상자 확인에 주로 활용됩니다. 현장 지문으로 범인을 잡는 일은 드물어요. 고체분말, 화학용액 등을 사용해 지문을 채취한 뒤 지문자동분류검색시스템으로 지문조회를 하면 됩니다. 감정물은 필요에 따라 추후 국과수나 경찰청에 분석을 의뢰해야 하죠.”
함께 간 형사가 말했다. 피해자의 시신은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법의학자와 현장 감식을 맡은 경찰관이 시체에서 증거를 수집했다. 단서가 남아 있을지 모를 피해자의 손톱을 점검하고 흉기에 찔린 상처 부위를 통해 공격 상황을 추정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과 절차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파악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뒤늦게 출근한 회사 사장이 죽은 여직원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금고 속 1억여 원이 털렸다. CCTV에는 두 명의 남성이 찍혔다.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잠입한 것으로 보아 범인들은 사전에 CCTV의 위치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CCTV는 많은 것을 알려주진 않았다.
경찰대의 각 학년 정원은 120명. 이 중 10%인 12명이 여학생이다. 전교생은 4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한다.
지문감식 결과 용의자의 인적사항이 나왔다. 전과기록 등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범인 검거가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아지자 형사과의 분위기가 다소 밝아졌다. 그러나 범인은 이미 국내에 없었다. 발 빠른 범인은 사건 당일 동남아시아로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낭패였다. 이제 희망은 인터폴 공조를 통한 수사다. 국외로 도주한 내국인 범죄자의 경우 체류 국가의 인터폴 중앙사무국의 협조를 받아 국제수배가 가능하다고 배웠다. 한편 용의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분석하며 공범을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자존감과 사명감
하루아침에 변을 당한 피해자와 오열하는 가족을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싹 달아났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고 화가 났다. 옆 사무실 사람들은 이른 아침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매일같이 사무실에 들르던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사무실 밖을 지키고 선 범인에게 음료를 건네곤 돌아섰다. 이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사무실을 한 번만 들여다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에 끝없이 실타래를 풀어놓았다.
이번 사건으로 초동수사, 현장 감식, 증거물 채취, 그리고 여러 수사기법과 수사 활동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수확이 있었다. 나날이 내성(耐性)을 기르는 강력·신종 범죄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다는 자존감, 그리고 치안 질서에 일조하겠다는 사명감이 그것이다.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싶은가?”
선배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는 정보과에 관심이 있었다. 지역 사정에 눈 밝은 전국 각지의 경찰들이 취합한 정보를 다룬다는 건 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이었다. 현장을 겪고 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상상력과 끈기를 요하는 수사에 눈길이 간다.
이번 실습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체험하고 재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테러, 마약수사, 통신수사, 인질수사…. 내가 배운 거창한 과목 명들을 떠올린다. ‘폴리스 스토리’ ‘투캅스’ ‘공공의 적’ ‘무간도’ ‘세븐데이즈’…. 꼬박꼬박 챙겨보던 경찰 영화의 주인공과 화려한 무공을 생각한다.
어젯밤, 새벽 2시가 넘도록 아이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미귀가자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이 어머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태연했다. 의문은 실종자 누나와의 대화로 풀어졌다. 누나는 “동생이 늦게 귀가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혜진양과 예슬양 사건 이후 실종신고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경찰의 업무는 생활 가운데, 혹은 그 언저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보다 행패 부리는 취객과 드잡이하거나 땀방울 배인 돈을 잃어버리고 절망한 시민을 다독이는 일이 일상에 가까웠다. 실습생이 아닌 진짜 경찰 신분으로 현장에서 뛸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