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문이 열리는 무자년(戊子年) 동지 무렵, 바람 없는 날 밤의 우주쇼
- 러시아는 왜 ICBM을 우주발사체로 전환하게 되었나
- 현무미사일은 20G, KSLV-1은 1.4G로 비행을 시작하는 이유
- 레이건 전화 받고 폭발한 챌린저호 “대통령은 우주센터에 오지 말라”
- 세 번 모두 발사 실패로 끝난 브라질의 꿈
- 한국 위성 띄워주겠다는 일본의 야심
- 일본은 달나라로 간다
행정구역상 주소를 이야기하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외(外)나로도’라고 해야 “아, 우주센터가 있는 섬” 하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외나로도를 관할하는 행정조직이 봉래면이다. 이 섬에는 신금·외초·예내·사양의 4개 리(里)가 있는데,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예내리는 세(勢)가 약한 편에 속한다. 우주센터는 예내리에서도 한갓진 남쪽 끝 바닷가에 면해 있다.
우주센터 뒤에 해발 410m의 봉래산이 치솟아 있어, 우주센터는 산자락 끝에 걸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해발 410m라지만 바다에 면한 곳에 솟아 있어 매우 높은 편이다. 말이 바닷가이지 산골과 다를 바 없는 이곳에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든 것은 KSLV-1을 발사하는 ‘우주쇼’를 보기 위해서다.
고흥 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 설치된 실물 크기의 KSLV-1 모형. 좌우에 있는 것은 항우연이 과거에 개발한 KSR로켓 시리즈다.
사람 운수를 따질 때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서른아홉, 마흔아홉, 쉰아홉 등 아홉으로 끝나는 나이에 결혼이나 이사를 하면 불운을 만날 수 있다는 속설에서 나온 말이다. 세계 우주개발사업이 이 아홉수에 걸려 있다. 현재 우주발사체를 제작해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인도 이스라엘 여덟 나라뿐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우주선을 발사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발사체는 구소련이 개발한 것이라 우크라이나는 자력으로 발사체를 개발해 발사에 성공한 나라로 꼽지 않는다. 세계 아홉 번째로 위성발사에 도전했던 나라는 브라질이다. 그런데 아홉수 탓인지 브라질이 시도한 세 번의 발사는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브라질의 실패는 맨 뒤에 있는 상자 기사 참조).
그로 인해 브라질은 세계 9위를 차지할 기회를 대한민국에 넘기게 됐다. 한국으로서는 한 자리 순위에 들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KSLV-1 발사를 성공시킬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처음 개발하는 발사체의 성공 확률은 50% 내외이기 때문이다. KSLV-1이 ‘세계적인 망령’이 된 아홉수를 돌파할 것인지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외나로도(봉래면)와 내나로도(동일면)는 말할 것도 없고, 포두면에도 이렇다 할 숙박시설이 없다. 숙소로 삼을 만한 곳은 고흥읍이나 여수시로 나가야 있다. 영향력이 있다는 사람들은 고흥읍과 여수시에서 기다리다가 “오늘 발사한다”는 연락이 오자 부리나케 이곳으로 달려왔다. 비중 있는 요인들은 광주나 서울, 그리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원장 백홍열)이 있는 대전에서 기다리다가 자동차나 헬기 편으로 내려왔다.
지난 1년 이상 고흥군과 전남도 등은 이 날을 대비해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해왔다. 그러나 땅 위의 도로는 넓힐 수 있어도 십수년 전에 건설된 왕복 2차로의 나로1교와 나로2교는 확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두 다리에서 심각한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을 염두엔 둔 극성팬들은 일찌감치 외나로도에 들어와 민박을 하거나 텐트를 치고 기다리며 발사 날짜를 기다렸다.
2008년 동지 무렵의 외나로도
그러나 우주 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은 외나로도 건너편의 여수시 돌산도다. 돌산도를 필두로 여수반도 전체는 KSLV-1 발사 광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여수는 2012년 해양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된 데다 덤으로 우주쇼를 즐길 수 있는 명당으로 소문 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특수를 누렸다.
우주센터가 있는 고흥에서 쇼를 구경하려는 사람도 많다. 고흥군에서 우주쇼를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공지(空地)로는 고흥군 영남면 남열리에 있는 해수욕장이 꼽힌다. 고흥군은 이곳을 ‘고흥우주해양리조트특구’로 공고하고 KSLV-1 발사가 임박하면 이곳에 대규모 관람석을 만든다. 고흥(高興)은 ‘하늘로 인해 흥하는 곳’이라는 뜻이니 고흥군은 우주센터로 인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진짜 꾼들은 외나로도로 들어가 우주쇼를 보고 싶어한다.
음력 동짓달의 겨울 해는, 특히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나왔다가 쏙 들어가는 자라목처럼 그야말로 ‘꼴깍’ 넘어가버린다. 그러곤 칠흑 같은 어둠이 덮쳐온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한다. 호들갑을 떨며 먼저 분위기를 잡기 시작한 것은 TV 방송이다.
발사통제동 옥상에서 바라본 발사대와 조립동(아래 건물). 발사대는 발사통제동에서 직선으로 1.8km 떨어져 있다.
우주센터 안에서도 KSLV-1의 발사 광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한 TV 중계팀은 대낮보다 밝은 불빛을 받고 우뚝 서 있는 KSLV-1을 화면 가득 비추면서 치열했던 한국의 우주개발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방송사 중계팀이 포진한 곳은 KSLV-1 근처가 아니다. KSLV-1이 세워진 발사대로부터 1.8㎞나 떨어진 발사통제동의 옥상이다.
연말을 앞두고 뭔가 큰 이벤트가 벌어졌으면 하는 시기에, 더구나 해가 져서 폭죽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대감이 넘치는 시각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한국의 첫 번째 우주발사체 KSLV-1을 발사하는 것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KSLV-1을 발사하기 위해 준비해온 작업이 이때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일몰 무렵을 발사 시간으로 삼은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KSLV-1은 한반도 남쪽을 향해 수직으로 날아간다. 발사 후 540초가 지나면 KSLV-1은 호주 부근에서 2단까지 떨어뜨리고 고도 306km까지 올라간다. 이곳은 공기가 없으니 마찰도 거의 없다. 그리고 위성을 보호하기 위해 탑재부에 설치한 페어링(fairing)을 떼어내 위성을 분사시킨다. 1단과 2단 로켓이 실어준 힘 덕분에 위성은 점점 더 고도를 높이다 발사 40여 분이 지나면 남극을 넘어 지구 반대편에서 돌아야 할 궤도에 진입한다.
그리고 태양전지판을 펼치는데, 이때 해가 떠 있지 않으면 태양전지판은 에너지를 발생시키지 못한다. 한반도에서 발사한 위성이 지구 반대편으로 넘어가 가장 오랫동안 태양전지판을 가동하려면, 12월 말에는 일몰 즈음에 우주발사체를 쏘아야 한다. 이러한 판단에서 역산한 발사시각이 오후 4시에서 7시 사이다. 그래서 이 시간을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각’, 영어로는 ‘론칭 윈도(launching window)’라고 한다.
저녁 7시를 넘겨 KSLV-1을 발사해도 위성은 햇빛이 쏟아지는 한반도 반대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위성이 펼치는 태양전지판은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등진 형태가 되므로 에너지를 많이 발생시키지 못한다. 물론 위성에는 배터리가 장착돼 있어 태양전지판이 가동하지 않아도 위성을 가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배터리의 조기 작동은 위성 수명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2008년 12월 말의 KSLV-1 발사는 하늘 문이 열리는 일몰 직후에 이뤄지는 것이다. 덕분에 방송사 중계팀과 국민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우주쇼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날은 바람 한 점 없어 불꽃이 더욱 잘 보일 수밖에 없다.
ICBM 만들던 흐루니체프 사
방송사 중계팀이 옥상을 차지한 발사통제동에는 나로우주센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발사관제소(LCC)’와 ‘발사지휘소(MDC)’가 있다. 우주발사체 발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최초 추력을 내는 1단 로켓엔진을 점화시켜 제대로 날아가게 하는 것이다. KSLV-1의 1단은 러시아 흐루니체프(Khrunichev) 사가 제작한 ‘앙가라(Angara)’ 로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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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발사체는 ICBM으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흐루니체프 사가 우주발사체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전략무기 감축협정 START-2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흐루니체프 사는 ‘23호 공장(OKB-23)’으로 불리며 폭격기를 생산했다. 1951년 소련은 23호 공장에 대형 폭격기를 개발하는 설계1국’을 만들었다.
KSLV-1 발사와 관제를 하는 발사통제동의 발사관제소. 이곳에서는 러시아 흐루니체프 사 기술진이 주도권을 잡고 포진해 KSLV-1 발사를 최종 결정한다. 이들 옆에는 동수의 항우연 연구진이 앉는다.
이러한 여론에 직면한 미·소는 1970년대 두 나라가 생산하는 ICBM을 제한하자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맺었다. 이로써 두 나라가 보유할 수 있는 ICBM에 한계가 지어졌는데, 이러한 제한은 23호 공장의 풀가동을 막는 브레이크 기능을 했다. 그러나 이때의 브레이크는 그 후 요동치는 역사가 건 제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SALT 협정을 통해 상대도 핵전쟁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파악한 미·소 양국은 1982년부터 핵무기를 줄이는 새로운 협상에 들어가 1991년 START-1으로 약칭된 전략무기감축협정을 맺었다. SALT는 ICBM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생산을 제한하자는 것이었으나 START는 이미 실전 배치된 핵무기를 폐기해 일정 숫자 이하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합의 직후 소련이 붕괴했다. 88 서울올림픽이 있은 후 헝가리를 필두로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동유럽의 공산 정권이 줄줄이 무너지더니 START-1 협정 서명이 있은 직후인 1991년 말 소련도 무너졌다. 그리고 구소련 영토에서 러시아와 발트3국, CIS의 12개 나라가 독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역사가 요동치자 전략물자를 생산하던 구소련의 공장이 일제히 멈춰 섰다. 23호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국은 러시아에만 신경을 곤두세워서는 안 된다. 우주개발의 의지가 있다면 미국의 움직임에도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미국은 우주왕복선은 물론이고 화성과 목성 탐사선을 띄우는 최강의 우주개발 선진국이다. 이런 미국은 한국의 우주개발 기술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파트너가 되지 않았지만 한국의 우주개발 사업에는 미국에서 제작한 많은 부품이 사용된다. 이러한 부품은 미 의회의 수출승인이 있어야만 도입할 수 있으므로 한국의 우주개발은 철저히 민수(民需)에 맞춰야 한다. 미국은 민수에만 쓰는 조건으로 부품 수출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말 KSLV-1이 성공적으로 발사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우주에 진입한 나라가 된다. 세계 9위는 대단한 명예이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웃한 일본은 38년 전인 1970년 과학기술위성-2호와 비슷한 오스미(大隅) 위성을 실은 람다(Lambda) 4S-5 발사체를 쏘아 올렸다.
한국은 조선이나 자동차 석유화학 전자 제철산업 등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으나 항공과 우주개발에서는 의미 없게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1, 2위는 말할 것도 없고 8, 9위와도 까마득한 차이가 나는 10위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십년간 압축성장을 거듭한다고 해도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은 상당기간 세계 10위권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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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주개발을 등한시하면 한국의 우주 주권(主權)은 상실된다. 대항해 시대의 말기인 19세기, 한국은 개항(開港)을 등한시했다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불운을 맛보았다. 21세기는 우주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때 한국이 경제성만 따지고 우주를 향한 항구를 폐쇄한다면 금세기 말 한국은 또 다른 역경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2008년 무자년 한국에 떨어진 특명은 ‘아홉수를 넘어라’다.
2008년 12월 동짓날 부근으로 예정됐던 KSLV-1 발사가 2009년 2/4분기로 연기됐다.연기된 이유는 현대중공업이 러시아 측으로 제공받은 도면을 토대로 제작하는발사대 제작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사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여러 나라에서 조달하는데이중 중국에 주문한 부품 일부가 사천성 지진 때문에 제작이 늦어지고 있다. 항우연은 중국에서 제작하는 발사대 부품이 도입되는 대로 발사대 제작을 완료해 KSLV-1을 발사하는데,발사 시기는 대략 2009년 2/4분기가 될 것으로 수정 발표했다.항우연은 이러한 발표를 신동아의 이 기사가 나간 후 발표했기에 발표 시기에 관해서는 현실과 다른 내용이 실리게 되었다. |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고 살아온 전략물자 공장의 기술자들은 하루아침에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을 노리는 세력은 많았다. 핵무장을 꿈꾸던 중규모 국가들은 좋은 대우를 내걸고 이들을 유치하고자 했다. 반미 테러세력도 이들을 고용해 미국을 공격하는 핵무기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미국이 다급해졌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제일 먼저 할 일은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START-2 협정이 가져온 변화
소련의 붕괴는 START-1이 무용지물이 됐음을 의미한다. 비록 러시아가 소련의 지위를 승계해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됐다고 하나, 미국은 러시아의 START-1 이행을 확신할 수 없었다. 구소련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러시아 이외의 공화국에도 핵무기를 배치했는데, 이 핵무기는 그 지역에서 독립한 나라의 것이 되었다. 소련 붕괴는 핵무기 보유국 증가를 가져온 것이다.
미국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 사태를 막고자 했다. 첫째는 러시아를 상대로 START-2 협상을 추진해 두 나라가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모두 줄이자고 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START-2는 1993년 발효됐다. 이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는 더 많은 ICBM과 SLBM을 폐기하게 되었다.
미국은 ‘지갑이 두툼한’ 나라이므로 약속한 대로 ICBM과 SLBM을 완전 폐기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경제위기가 심대했으므로 돈을 써가면서 ICBM과 SLBM을 폐기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대로 방치하면 러시아 기술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핵과 미사일 기술을 제3국이나 테러단체에 빼돌릴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사태를 염려한 미국은 러시아에 ICBM을 폐기하지 않고 우주발사체로 전용(轉用)해도 좋다는 데 동의했다. 또 우주발사체로 전환한 ICBM의 탄두에서 떼어낸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로 전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로 인해 ICBM을 생산하던 러시아의 공장이 줄줄이 위성을 쏘는 회사로 바뀌었다. 이때 23호 공장이 흐루니체프 사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흐루니체프 사는 23호 공장 시절에 개발한 초대형 ICBM인 UR-500을 ‘프로톤(Proton)’이란 이름의 우주발사체로 개조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프로톤’과 이소연씨가 타고 가서 더욱 유명해진 ‘소유즈’, 2002년 한국이 제작한 실용위성 아리랑-2호를 발사시켜준 ‘로콧’, 그리고 과학기술위성-1호를 띄운 ‘코스모스’ 등의 우주발사체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때 우크라이나도 그들이 갖게 된 ICBM을 개조해 ‘제니트-3’라는 발사체를 만들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달리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노선을 선택했다. 이로써 우주발사체 시장이 갑자기 커지고, 위성을 대신 쏘아주는 가격이 하락했다. 우주개발에 목말라 하던 나라들은 싼 가격에 위성을 쏘아 올릴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국제 핵연료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START-2가 발효되기 전 원자력발전부문 선진국인 프랑스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얻은 플루토늄을 우라늄과 섞어 다시 원자로에 넣을 수 있게 한 ‘목스(MOX) 연료’를 개발했으나, 러시아 등이 핵탄두를 해체해서 얻은 핵연료를 다량으로 내놓는 바람에 재미를 보지 못했다.
MTCR 가입으로 기회 잡은 한국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우려한 미국은 클린턴 정부 시절 러시아를 제외한 구소련 공화국에 돈을 주고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를 구입해 폐기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기에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돈을 주고 북한이 개발했거나 개발하려고 하는 핵무기를 ‘사서’ 폐기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6자회담에서 논의되는 북핵 상황이다.
러시아는 위성 발사를 대행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유한 우주개발 기술 판매에도 나섰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위성발사기술을 도입하게 된 계기는 2001년 3월 미사일기술통제체제로 번역되는 MTCR에 3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찾아왔다.
MTCR은 ICBM으로 대표되는 군사용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그 기술의 수출을 금지하는 대신, 민수용 발사체의 기술은 회원국 사이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한 체제(Regime)다. MTCR 가입으로 한국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우주개발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그러나 기술을 가진 MTCR 회원국들이 기술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너무 높은 가격을 요구해도 도입할 수 없다.
한국의 가입으로 MTCR 회원국이 33개국으로 늘어났지만, 실제로 위성 발사 기술을 갖춘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중국, 인도, 이스라엘 여덟 나라뿐이다. 그런데 영국은 우주개발 사업이 경제성이 없다고 보고 포기함으로써 우주개발국 대열에서 탈락했다.
위성에는 지구 상공 수백에서 수천 km에 올라가 지구의 남북극을 돌아가는 ‘저궤도위성’과, 적도 직상공 3만6500km쯤에 떠 있으면서 지구 자전에 맞춰 지구주위를 돌기에 지구에서 보면 항상 같은 자리에 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정지위성’으로 불리는 것 두 종류가 있다.
그러나 정지위성의 ‘정지’를 멈춰 있다는 ‘정지(停止)’로 적으면 안 된다. 남북극을 도는 저궤도위성이 하루에 지구궤도를 14바퀴 반을 돌 듯이, 이 위성도 적도 직상공에서 지구 자전에 맞춰 매일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돌기 때문이다. 이 위성은 정지위성에 비해 조용히 움직이므로 한자로는 ‘고요하게 있다’는 뜻을 가진 ‘靜止(geostationary)’를 사용한다. 저궤도위성보다 정지궤도 위성을 띄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기술이다.
순위 | 나라 | 발사 성공일 | 발사체 | 위성(무게) |
1 | 러시아 | 1957년 10월4일 | R-7 | 스푸트니크 (83.6kg) |
2 | 미국 | 1958년 2월1일 | 주피터-3 | 익스플로러(14.0kg) |
3 | 프랑스 | 1965년 11월26일 | 디아망 | A-1(41.7kg) |
4 | 일본 | 1970년 2월11일 | 람다 4S-5 | 오스미(大隅(24.0kg) |
5 | 중국 | 1970년 4월24일 | 장정(長征)-1호 | 동방홍(東方紅)-1호(174kg) |
6 | 영국 | 1971년 10월28일 | 블랙 애로 | 프로스페로(72.5kg) |
7 | 인도 | 1980년 7월18일 | SLV-3 | 로히니(Rohini)-1B(35kg) |
8 | 이스라엘 | 1988년 9월19일 | 사비트(Shavit) | 오페그(Ofeq)-1(156kg) |
9 | 한국? | 2008년 12월**일 | KSLV-1 | 과학기술위성-2호(100kg) |
정지위성은 지구에서 봤을 때 항상 같은 자리에 떠 있으므로 방송과 통신용, 기상관측용으로 주로 쓰인다. 지구에서 쏜 방송이나 통신전파를 받아 지구로 다시 쏘아주거나 특정지역의 기상을 관측하려면, 지구에서 봤을 때 항상 같은 자리에 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무궁화’라는 이름의 방송통신 위성을 보유하고 있다. 무궁화위성 덕분에 한반도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작은 접시안테나를 설치해 위성방송을 청취할 수 있다. 한국군은 이 위성을 이용해 한반도 전역을 통신가능 지역으로 만들었다.
정지위성이 지구 상공 3만6500km에 떠 있는 것은 그곳에서 지구의 적도궤도를 도는 것이 지구 자전과 꼭 맞기 때문이다. 3만6500km보다 위로 올라가 있으면 이 위성은 지구 자전보다 늦게 돌게 된다.
반대로 3만6500km 이하에서 돌게 되면 지구 자전보다 빨리 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구에서 봤을 때 항상 같은 자리에 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정지위성은 항상 3만6500km 상공으로 발사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지위성 발사는 저궤도위성 발사보다 어렵다.
우주에는 임자가 없다. 먼저 들어가서 차지한 나라가 계속해서 사용권을 주장할 뿐이다. 저궤도위성은 각기 다른 고도로 들어가기에 문제가 적으나 정지위성은 적도 직상공의 고정된 고도에 들어가야 하기에 많은 위성이 진입할 수 없다. 이 공간에 미국과 러시아 등 선진국들은 이미 많은 정지위성을 띄워놓았다.
한국이 사용하는 무궁화위성은 한반도 정남쪽에 있는 적도 직상공에 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선진국이 띄운 정지위성이 즐비하기에, 무궁화위성은 동남아 부근의 적도 직상공에 떠서 한반도를 바라본다. 동남아의 직상공에는 정지위성을 띄울 수 있는 나라가 없기에, 한국은 그 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국력이 약하면 눈 뜨고 뺏겨야 하는 것이 우주 주권이다.
한국이 MTCR에 가입할 당시 정지궤도 위성을 띄울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였고, 일본 중국 인도는 정지위성을 띄우는 발사체 개발을 안정화해가는 단계에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우크라이나로 압축됐다.
그러나 미국은 WMD 확산 우려를 이유로 우주개발 기술을 팔 의사를 비치지 않았고, 프랑스는 너무 높은 가격을 요구했다. 반면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기술을 팔겠다고 했다. 우주기술에 관한 한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가 원조(元祖)이니, 러시아가 응하면 굳이 우크라이나를 두드릴 필요가 없다.
KSLV-1을 띄우는 3총사. 왼쪽부터 백홍열 항우연 원장,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 조광래 발사체사업단장.
MTCR 가입 3년 후인 2004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에 서명했다. 그리고 한 달 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러시아의 흐루니체프 사가 ‘한-러 우주발사체 시스템 협력계약’을 맺음으로써 KSLV-1을 제작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러시아의 소유즈 발사체가 실린 소유즈 우주선을 탈 수 있었던 것도 이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KSLV-1은 저궤도위성을 띄우는 발사체다. 제대로 작동하는 저궤도위성의 무게는 1t 이상이다. 그러나 KSLV-1은 1t 무게의 저궤도위성을 띄우지 못한다. KSLV-1은 100kg 정도의 작은 저궤도위성을 띄우는 발사체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다. 1t짜리 위성을 띄우는 발사체 제작은 100kg 수준의 위성을 성공적으로 띄워본 후에 도전해야 한다.
한국은 1t짜리 저궤도위성을 띄우는 발사체를 KSLV-2로 정해놓았다. 위성으로 본다면 KSLV-2에 싣는 게 진짜이므로, KSLV-2는 진짜 발사체가 되고 KSLV-1은 이를 위한 시험 발사체가 된다. KSLV-1에 이어 KSLV-2 발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KSLV-2의 성능 개량과 함께 정지위성을 띄우는 보다 큰 발사체 개발에 도전한다. 정지위성을 띄우는 발사체는 KSLV-3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지위성을 올리는 발사체는 저궤도위성을 올리는 발사체보다 덩치가 크다. 따라서 정지위성을 올리는 발사체는 저궤도위성도 올려줄 수 있다. 정지궤도위성을 올리는 발사체는 저궤도 위성을 두 개 싣고 가 차례로 궤도에 올려놓는다.
흐루니체프 사는 정지궤도위성을 올리는 발사체 ‘프로톤’을 갖고 있으니 저궤도위성을 올리는 발사체 개발에 진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이 저궤도위성을 올리는 발사체를 개발하고자 하니, 이 회사는 따로 발사체를 개발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흐루니체프 사가 KSLV-1의 모든 것을 만들지 않는다. MTCR에는 늦게 가입했지만 한국은 전자산업과 자동차용 엔진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과거 한국은 KSR-1,2,3라는 로켓엔진을 개발한 적이 있다. 또 현무 미사일에 들어가는 로켓엔진도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KSLV-1의 1단은 흐루니체프 사가 만들고,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단은 한국이 제작하기로 했다.
고체연료는 한마디로 ‘화약(火藥)’이다. 화약은 불을 붙이는 순간 ‘뻥’ 하고 터지거나 ‘확’ 하고 불꽃이 일어난다. 그러나 액체연료는 곧바로 큰 화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고체연료는 덩어리로 돼 있으니 보관하기도 좋다. 게다가 즉각적으로 큰 화력을 내기에 항상 발사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미사일에 주로 사용된다.
바람에 취약한 발사 직후의 KSLV-1
그러나 한국은 액체연료용 로켓엔진과 이를 다루는 기술은 개발한 적이 없기에 흐루니체프 사에 맡기기로 했다. 올해 초 흐루니체프 사는 KSLV-1을 위한 1단 개발에 성공하고, 여기에 바이칼 호에서 빠져나와 북극해로 흘러가는 앙가라 강의 이름을 붙였다.
KSLV-1 제작을 통해 항우연이 얻고자 하는 것은 우주발사체의 설계와 제작기술이다. 이를 위해 항우연은 ‘도제(徒弟)시스템’을 도입했다. 러시아 기술자 한 명에 항우연 연구원 한 명씩을 붙여서 모든 일을 함께 하면서 기술을 배우게 한 것이다. 군대 용어로 말하면 흐루니체프사 기술자는 ‘사수’이고 항우연 연구자는 ‘부사수’ 내지는 ‘조수’가 되는 셈이다.
앙가라는 로켓엔진이 들어 있는 ‘빈 통’이다. 앙가라가 제 몫을 하려면 액체연료를 가득 채워야 한다. 연료를 주입한 앙가라는 매우 무겁지만, 연료가 실리지 않은 앙가라는 보기보다 가볍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제작한 ‘빈 통’ 앙가라를 러시아 화물기에 실어 부산 김해공항으로 옮겼다.
우주센터에는 반드시 대형 화물기가 내릴 수 있는 활주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케네디 우주센터를 비롯한 미국의 우주센터는 대형 활주로가 있는 미 공군기지에 건설됐다. 그러나 한국은 군사적 지원을 받으면서 우주개발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부담을 안고 우주개발에 나선 나라이기에, 공군과는 전혀 연결점이 없는 외나로도에 우주센터를 만들었다. 바다에 면한 산골인 이곳에는 활주로가 없다.
이 때문에 앙가라는 부산항에서 배에 실려 나로우주센터에 황급히 건설한 부두로 옮겨온다. 그리고 조립동으로 보내져 한국에서 만든 1단 및 위성을 싣는 탑재부와 결합함으로써 KSLV-1의 외관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조립은 민간기업이 한다. 미국에서는 보잉이나 록히드마틴이 하고, 일본에서는 미쓰비시(三菱)가 조립을 한다. 한국에서는 KSLV-1 조립을 대한항공이 담당한다.
우주산업 기술은 정부에서 기업으로 흘러가는 구조다. 미국과 일본도 이런 흐름으로 우주산업을 발전시켰다. 보잉이나 록히드마틴 같은 기업은 미 공군이 주도한 ICBM 개발에 참여해 기술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지금 위성을 쏘아주는 사업을 벌이게 됐다. KSLV-1의 사례로 본다면 한국에서는 장차 대한항공이 위성을 쏘아주는 발사체 업체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KSLV-1 최종 조립을 담당하게 된 대한항공이 KSLV-2와 3의 조립까지 맡는다면 대한항공은 우주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항공기 제작은 한국항공에서 우주산업은 대한항공에서 하는 투톱 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일본은 미쓰비시가 우주와 항공산업을 모두 맡는 단일 체제를이루고 있다.
바람 없는 날, 손 없는 날
조립동에서 KSLV-1 조립이 끝나는 것이 2008년 동지 무렵인데, 이때부터 항우연은 기상청 예보에 귀를 곤두세우게 된다. 이사를 앞둔 사람은 역술인에게 ‘손 없는 날’을 잡아달라고 한다. 손 없는 날에는 ‘귀신이 움직이지 않아’ 무사히 이사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KSLV-1은 지상에서 우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존재다. 항우연은 기상청에 귀신이 아니라 ‘바람이 움직이지 않는 날’을 잡아달라고 한다. KSLV-1 발사에서 바람은 악귀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KSLV-1에 바람은 악귀와 같은 존재일까. 수치로 본 KSLV-1의 위용은 정말 대단하다. KSLV-1의 높이는 10층 건물과 맞먹는 33m이고 무게는 140t이다. KSLV-1의 위용은 한국 육군이 갖고 있는 사정거리 300km의 지대지 미사일 ‘현무(玄武)’와 비교해보면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나로우주센터의 조립동 내부. KSLV-1 탑재부 제작 작업이 한창이다. 이곳에서 한국이 제작하는 탑재부와 2단은 러시아가 만든 1단과 결합해 KSLV-1을 이루게 된다.
140t의 발사체를 띄우려면 1단 로켓은 140t 이상의 추력을 발휘해야 한다. 140t의 추력이 발휘된다면 KSLV-1은 지상에 대해서는 하중을 가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깃털처럼 얇은 종잇장처럼 ‘부양(浮揚)’된 상태로 있는 것이다. 발사 직후의 KSLV-1의 상태가 바로 바람이 불면 날리기 쉬운 깃털이나 종이와 같다. 이유는 1단인 앙가라의 추력이 170t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많이 쓰는 항공 용어 중에 ‘G(Gravity, 중력)’가 있다. 1G는 일반인이 느끼는 무게감, 즉 지상에서 자기 몸무게로 서 있을 때 느끼는 무게감이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순간적으로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를 가리켜 ‘G가 올라갔다’고 한다. 따라서 G가 1보다 높아지면 몸은 위로 뜬 상태가 된다. 10G, 20G 식으로 G 값이 높으면 매우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고, 1.3G, 1,5G 정도면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나 여객기가 이륙할 때 느끼는 G는 1.2 정도라고 한다. 앙가라가 170t의 추력으로 최초로 밀 때 KSLV-1이 받는 G 값이 1.4 정도라고 한다.
발사시 KSLV-1의 G 값이 1.4 정도라하면, 고속 엘리베이터 정도의 속도로 올라간다는 것을 뜻한다. 고속 엘리베이터는 건물 안의 공간을 올라가지만, KSLV-1은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허공을, 오로지 1단 로켓엔진 힘만 믿고 올라간다. 그러니 비유해서 말하면 하늘로 던져진 깃털이고 종이인 것이다. 이때 강한 바람이 불면 깃털과 종이가 날아가듯, KSLV-1도 쓰러져버린다.
그러나 현무는 발사시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자기가 가야 할 방향으로 정확히 날아간다. 이는 현무의 G 값이 20에 이르기 때문이다. 고체연료를 쓰는 현무의 로켓엔진은 현무 무게보다 20배나 강한 힘으로 밀어주므로 현무는 태풍이 불어와도 쓰러지지 않고 제 갈길로 날아간다. KSLV-1은 왜 현무처럼 날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 비밀은 KSLV-1에 담겨 있는 액체연료에 있다.
140t에 달하는 KSLV-1 무게의 92%는 연료이고 나머지 8%가 KSLV-1을 이루는 각종 하드웨어와 껍데기, 그리고 100kg에 불과한 위성을 더한 것이다. 무게의 92%를 차지하는 연료 가운데 액체연료 비중이 91.9%이므로, KSLV-1은 액체연료를 담은 ‘거대한 통’이라고 할 수 있다. KSLV-1에 실리는 액체연료 무게는 130여 t이고 고체연료 무게는 2t이 채 안 된다.
KSLV-1과 현무미사일
점화를 시작한 KSLV-1의 1단에서는 액체연료가 빠르게 소진된다. KSLV-1은 227초 만에 1단에 있던 연료를 다 쓰고 막 대기권 밖으로 나가 필리핀 근처쯤에서 1단을 분리시킨다. 이렇게 빨리 연료를 소진하므로 KSLV-1의 무게는 급속히 가벼워진다. KSLV-1의 무게가 줄어들면 처음에는 별것 아니던 170t의 추력은 거대한 힘이 되면서 폭발적인 속도로 KSLV-1을 부상시킨다.
현무 미사일은 탄도(彈道) 미사일이다. 하늘을 향해 쏜 총알은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올라갔다가 소진되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데, 총알이 만드는 이 궤적을 가리켜 ‘탄도’라고 한다. 현무 미사일에는 에너지가 소진되는 정점까지 올라가는 힘이 중요하다. 정점에 오른 다음에는 자유낙하를 하며 목표물로 떨어진다.
이때 발사팀은 현무의 날개를 원격 조종함으로써 현무가 목표물에 근접해 떨어지도록 유도한다. 현무는 올라갈 때 모든 힘을 소진하기에 강한 추력을 갖고 발사된다. 그러나 우주발사체는 위성을 우주로 올리는 기동체이기에 자유낙하 힘은 이용하지 않는다. 끝까지 자체 연료를 사용해 올라가야 하니 현무처럼 발사시 너무 강한 추력을 내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KSLV-1은 발사시 바람에 취약하고, 항우연은 기상청이 ‘바람 없는 날’을 잡아주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기상청이 ‘내일은 바람 없는 날’이라고 통보하면 항우연은 조립한 KSLV-1을 트레일러에 실어 발사대로 옮긴다. 이때의 KSLV-1은 액체연료를 주입하지 않은 빈 통이다. 1단에 들어가는 액체연료는 KSLV-1을 수직발사대에 세운 후에 주입한다.
2008년은 쥐띠 해인 무자년(戊子年)이다. KSLV-1은 무자년 동지 무렵, 바람 없는 날,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각에 밤하늘을 향해 발사되는 것이다. 발사는 KSLV-1이 조립동을 나선 후 24시간 내에 이뤄진다. 따라서 KSLV-1이 조립동을 떠나면, 발사가 임박했다는 신호이므로 서울과 대전 광주에서 기다리던 VIP들은 황급히 외나로도로 출발한다.
KSLV-1을 발사대에 세운 후 액체연료를 채우는 것은, 1단이 갖고 있는 기계적 특성 때문이다. 미리 채워놓으면 1단 안에 있는 로켓엔진 등의 기계가 액체연료와 반응해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려면 KSLV-1은 액체연료 주입을 끝낸 후 30분 안에 발사돼야 한다.
조립동에서 끌고 나온 KSLV-1을 발사대에 세우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 액체연료를 채우는 데에도 5시간 정도가 걸린다. 따라서 KSLV-1을 발사대에 세운 항우연은 기상청으로부터 5시간 후의 바람에 대한 정확한 예보를 받는다. 그리고 가장 바람이 약할 것으로 예보된 때로부터 5시간을 뺀 시간에 액체연료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연료 주입 후 30분 내 발사해야
우주발사체는 산소가 전무한 우주를 날아가므로 액화시켜 부피를 크게 줄인 액체산소와 연료인 케로신(등유)을 싣고 간다. 액체산소를 발사체에 옮겨 넣을 때는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한 방울이라도 새나가면 대기와 결합해 큰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세계 아홉 번째로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려고 했던 브라질이 바로 액체 연료가 누출되는 바람에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액체연료 주입을 끝냈는데 기상청 예보와 달리 바람이 거세지면 항우연은 발사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발사가 좌절되면 KSLV-1에 주입한 연료를 뽑아내야 한다. KSLV-1에 주입한 연료는 30분이 지나면 사용불능이 되므로 다시 발사하려면 새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나로우주센터의 발사대 인근에는 KSLV-1에 두 번 주입할 수 있는 연료를 보관하는 탱크가 있다. 그러니까 두 번째로 연료를 주입한 다음에도 다시 일기가 나빠지면, KSLV-1는 새 연료를 갖고 와 연료탱크를 채울 때까지 장시간 기다려야 한다.
KSLV-1을 위한 발사대. 이 발사대는 ‘시소’원리를 이용해 KSLV-1을 세운다. 사진에서처럼 무게 중심에 기둥이 있어 KSLV-1을 눕혀 묶은 후 바로 일으켜 세운다. KSLV-1 발사 직전 이 발사대는 다시 뒤로 눕고, KSLV-1은 혼자 서 있다가 발사된다.
KSLV-1의 1단이 점화되면 아래쪽으로 거대한 화염이 일어난다. 이 화염은 주변에 있는 풀과 나무는 물론이고 한참 떨어진 곳을 날던 새까지 태울 정도로 강력하다. 우주발사체를 발사하는 데 발사체에서 일어난 화염으로 인해 ‘산불’이 일어났다고 하면 이는 세계적인 토픽이 될 것이다.
발사 경험이 많은 흐루니체프 사는 이 화염을 처리하기 위해 ‘화염 유도로’라는 독특한 시설을 만들었다. KSLV-1 꽁무니에서 나온 화염은 콘크리트로 만든 지하시설로 들어갔다가 V 자 모양으로 꺾여서 바다를 향해 난 화염 유도로라는 구멍으로 쏟아져 나간다. 덕분에 KSLV-1은 산불을 내지 않고 폭음만 남긴 채 발사될 수 있다.
하늘 문이 열린 시각, 드디어 모든 권한을 쥔 발사관제소가 발사를 지령하면 KSLV-1은 부상하기 시작한다. 방송사 중계팀은 흥분된 목소리로 현장 상황을 전달한다. 이때 가장 바빠지는 것은 발사관제소다. 발사가 임박하면 1단 제작을 책임진 흐루니체프 사에서 많은 기술진이 날아와 발사관제소의 자리를 차지한다. 항우연 측은 같은 숫자의 연구자를 부사수 자격으로 이들 옆에 배석시켜 배우게 한다.
발사관제소와 등을 맞대고 있는 곳이 발사지휘소다. KSLV-1은 한국의 발사체이므로 공식적으로 한국이 발사를 주도해야 한다. 항우연에서 KSLV-1의 발사를 책임진 이는 발사체사업단장인 조광래 박사다. 조 단장은 대형 유리창을 통해 발사관제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발사지휘소에서 관제소와 지휘소 양쪽을 지켜보면서 총괄 지휘한다.
발사관제소의 임무는 발사와 발사 이후의 관제 임무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발사지휘소는 안전 부문도 관장한다. 발사 준비와 관제 준비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예컨대 항해 금지수역으로 선포한 외나로도 해역에 어선이 들어오면 발사지휘소는 발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
KSLV-1은 안전성이 검증된 것이 아니기에 발사 직후 폭발해 바다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외나로도 앞바다에 어선이 있으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발사가 임박하면 발사지휘소는 해군과 해경 등에 협조를 구해 예상 궤도 인근 바다에서 모든 배의 출입을 금지한다.
‘쥐약’ 관계인 발사체와 대통령
발사지휘소 뒤쪽에는 강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를 설치한 ‘관람석’이 있다. 이곳에는 실무자는 아니지만 발사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지휘자들이 앉는다. 원장을 비롯한 항우연 간부들과 정부 요인 등 VIP들의 자리다. KSLV-1 발사 현장에는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대통령 방문은 발사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말의 발사는 본(本)발사가 아니라 시험발사라는 것도 대통령의 참관을 막는 또 한 가지 이유다. KSLV-1 본발사는 2009년 여름으로 예정돼 있다. KSLV-1은 KSLV-2를 개발하기 위한 시험체인데, 이러한 KSLV-1 발사도 다시 시험발사와 본발사로 나눠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KSLV-1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데서 찾아야 한다.
관계자들은 처음으로 개발한 발사체가 성공할 확률을 50% 정도로 보고 있다. 따라서 첫 번째 발사는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한 시험발사로 삼고, 두 번째 발사를 본발사로 보고자 한다. 실패를 각오하고 하는 2008년 12월 말 발사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경호팀에게도 큰 부담이 되므로 대통령은 오지 않는다.
대통령의 관심으로 인해 우주발사가 실패한 사례로는 1986년 1월28일 미국에서 일어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가 꼽힌다. 당시 챌린저호는 10번이나 우주 비행을 완수한 상태였다. 성공을 거듭했으니 관계자들은 11번째 비행도 성공할 것으로 보았다. 그에 따라 레이건 대통령도 이 왕복선의 발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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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은 발사 직전 챌린저호 조종사들과 통화하기로 했는데 백악관의 홍보 책임자가 무심코 이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자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조종사들과 전화 통화를 한 다음에는 반드시 챌린저호를 발사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됐다.
우주발사체는 1단 옆에 작은 엔진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보조엔진을 부스터(Booster)라고 한다. 챌린저호를 발사하는 케네디 우주센터는 따뜻한 플로리다 주에 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부스터 제작사는 0℃ 이하의 기온에서는 부스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시험을 해보지 않고 제작했다.
챌린저호를 쏘기로 한 날 바람도 없고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런데 기온은 예상 밖으로 낮았다. 그러자 부스터를 개발한 회사 관계자들이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발사에 반대했다. 그러나 10번을 성공한 바 있고 대통령이 조종사와 전화까지 했으니 발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책임자는 발사를 명령했다. 그리고 72초 후 챌린저호는 산산조각이 나며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1979년 지구로 돌아오는 도중 폭발한 콜롬비아호 사고 이후 두 번째로 우주왕복선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우주발사체 발사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이 발사 현장에 오는 것은 ‘쥐약’으로 여겨진다. 국가 위신을 높이고 국민 단합을 위해 우주개발에 전념하는 중국도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5호를 실은 장정(長征)발사체를 쏠 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비롯한 요인들은 발사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정치 쇼’의 무대는 지구로 한정돼 있어야 한다.
주변국 해군이 지켜본다
KSLV-1이 밤하늘로 올라가 사라지면 환호하던 국민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그러나 발사관제소와 발사지휘소의 사람들은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한다. 발사 직후 가장 큰 하중이 걸리는 쪽은 추적 레이더팀이다. 추적 레이더는 나로우주센터 외에 제주도 표선면에도 건설돼 있다.
두 곳은 KSLV-1이 더 이상 레이더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추적한다. 그 뒤부터는 해경 경비함이 KSLV-1을 추적한다. 해경이 가진 경비함 중 가장 큰 것은 ‘삼봉호’로 불리는 5000t짜리다. 다음이 태평양 1호, 2호로 나가는 3000t급 경비함이고, 그 다음은 제민(濟民) 1호, 2호로 나가는 1500t급 경비함이다.
삼봉호는 붙박이로 독도 경비를 맡고 있으므로 KSLV-1 추적 임무를 위해서는 태평양 시리즈 가운데 한 척이 차출된다. 이 경비함은 항우연의 추적 레이더를 싣고 사전에 일본 오키나와 남쪽의 태평양으로 나가 대기한다. 그리고 제주추적소에 이어 KSLV-1의 궤적을 추적한다.
KSLV-1이 남극을 넘어 지구 반대편으로 갈 때쯤이면 1단과 2단이 모두 떨어져 위성만 남은 상태가 되는데, 이 위성이 한반도 쪽으로 넘어오면 나로우주센터와 제주 해경함의 추적레이더가 차례로 이 위성이 쏘는 전파를 받아 위치를 추적한다. KSLV-1이 발사되면 우주센터만 바빠지는 게 아니다. 추측건대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해군도 바빠질 것 같다.
한국의 KSLV-1 발사와 관련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라는 일본이다. KSLV-1이 일본 상공을 지나기 때문이다. 발사 직후 KSLV-1의 고도는 높지 않다. 또 1단도 분리되지 않았기에 본래 크기 그대로인 상태다. 많은 연료를 담고 있는 KSLV-1이 일본 상공에서 폭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본은 우주기구인 JAXA와 우주기구는 물론이고 해상자위대의 모든 함정 레이더를 동원해 KSLV-1의 궤적을 추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KSLV-1이 안전하게 고도를 높이면 일반 함정의 레이더는 이를 추적하지 못한다. 오직 이지스함의 레이더만 추적할 수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공고(金剛)급으로 불리는 구형 이지스 구축함 4척과 최신형 이지스인 아타고(愛宕)함 한 척을 갖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우주개발 실력이 궁금할 것이므로 이 함정을 동원해 레이더의 성능이 닿는 데까지 추적할 것이다.
한국 해군도 아타고 함과 성능이 거의 비슷한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을 동원해 KSLV-1을 끝까지 추적한다.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한 미 7함대 역시 이지스 순양함인 챈슬러스빌함 등을 동원해 KSLV-1을 추적할 것이다. 러시아의 이지스함은 ‘소브레멘니’로 불리는데, 러시아는 태평양 함대에 속한 소브레멘니급 구축함을 동원해 KSLV-1을 추적할 수 있다. 중국 해군은 러시아로부터 소브레멘니급 함정 두 척을 도입했으므로 역시 이 함정을 동원해 추적할 수 있다.
2008년 말에 올라가는 것은 짝퉁 위성
각국 해군이 KSLV-1을 추적하는 것은 자국 이지스함의 능력을 점검하고 가동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호주 상공을 지난 KSLV-1은 2단을 떨어뜨리고 100kg짜리 위성만 남게 된다. 이때부터 이 위성은, 위성 고유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 위성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지상 사진을 찍거나 우주를 관측하는 등 위성 고유의 일을 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알리는 전파만 발신한다. 그 이유는 좀 모자라는 위성, 이른바 짝퉁 위성이기 때문이다.
이 위성이 짝퉁인 이유는 2008년 12월 말의 발사는 시험발사인 데 있다. KSLV-1은 시험발사와 본발사로 2번 발사된다고 앞에서 밝혔다. 이 두 번의 발사 가운데 성공 확률이 높은 것은 문제점을 보정한 본발사다.
위성 제작비는 전체 발사 사업비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KSLV-1 발사에 100원이 들었다면 50원은 위성 제작비, 30원은 발사체를 만들어 발사시키는 비용, 20원은 보험료다.
항우연은 같은 일을 하는 위성을 두 개 띄울 필요가 없다. 시험발사는 성공 확률이 낮으니 전파발신기만 단 쇳덩어리를 올리고, 본발사에서 제대로 만든 위성을 띄우는 것이 제작비를 절약하는 방법이다. 이런 이유로 12월 말에 올라가는 KSLV-1에는 무늬만 위성인 짝퉁이 실린다.
2009년 여름에는 진짜 위성을 실은 KSLV-1을 발사한다. 본발사 때 실리는 이 위성의 이름은 ‘과학기술위성-2호’다. 과학기술위성은 과거 KAIST가 만들어온 ‘우리별’ 위성을 잇는 것으로, 우리별-3호 이후 과학기술위성-1호가 만들어졌다. 과학기술위성-1호는 2003년 9월 27일 러시아의 코스모스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올라간 바 있다.
시험발사가 성공하면 본발사 때는 대통령 등 요인들이 내려와 발사를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시험발사가 실패하고 본발사도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번의 발사가 실패하면 항우연과 흐루니체프 사는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발사를 시도한다. 세 번째 발사는 앞의 두 번이 실패했을 때만 실시하는 것인데, 이 발사는 꽤 시간을 두고 이뤄질 것 같다.
이유는 위성과 발사체를 완전히 새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발사를 한다는 것은 진짜 위성 또 하나를 만드는 것이므로, 상당한 비용이 든다. 따라서 항우연과 흐루니체프 사는 세 번째 발사는 염두에 두지 않고 시험발사와 본발사만을 위한 위성과 발사체 제작에 매달려왔다.
KSLV-1의 궤적을 추적하는 나로우주센터의 레이더. 추적 레이더는 나로우주센터와 제주도 그리고 해경 경비함에 설치된다.
세 번째 발사에도 실패한다면 한국의 KSLV-1 사업은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고, 세계는 또 한 번 ‘아홉수’라는 망령에 놀랄 것이다. 한국의 실패는 브라질에 ‘3전4기(三顚四起)’의 기회가 된다. 어쩌면 브라질은 한국이 세 번째 발사를 하기 전에 아홉수의 망령을 격파할지도 모른다. 브라질은 우주개발에 대한 열망이 강하기에 한국의 실패를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개발에 있어 실패는 약이다. 기술은 성공했을 때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발사에 실패하면 항우연 연구진은 물론 흐루니체프 사의 기술진도 눈에 불을 켜고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다. 사고 원인을 찾으려면 사고사한 ‘시체’가 있어야 하는데 실패는 곧 시체의 실종을 동반하기에, 연구자들은 스무고개를 하듯이 복잡한 추리를 해가며 원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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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창출된다. 미국도 러시아도 실패를 거듭하면서 1950년대 후반 우주발사체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미국은 러시아(소련), 러시아는 미국이라는 경쟁자가 있었기에 두 나라는 빠르게 우주개발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경쟁이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 인도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정지위성 발사를 성공시킨 중국과 일본, 인도는 현재 달 탐사라는 비슷한 난이도의 고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한국도 우주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강력한 라이벌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국가 GDP 규모가 비슷한 브라질은 호적수이자 동반자다.
KSLV-1 발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KSLV-2 사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KSLV-2의 밑그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은 KSLV-2는 1t 이상의 저궤도위성을 올리는 발사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나, 일부는 정지위성을 올리는 발사체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정지위성을 올리는 발사체는 2개 이상의 저궤도위성을 한꺼번에 띄워줄 수 있다.
KSLV-2의 목표를 어느 선으로 잡을 것이냐는 KSLV-1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KSLV-2 사업을 한다면 파트너를 계속 흐루니체프 사로 삼을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 우주산업의 미래는 KSLV-1의 성패에 달려 있다.
나로우주센터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흐루니체프 사 직원들을 태운 버스가 출입한다. 흐루니체프 사 직원들은 고흥읍의 호텔을 빌려 장기투숙하고 있다. 항우연 사람들은 흐루니체프 사람들과 일과 술자리를 통해 얽히고 있다. 낮에는 일하면서 다투고, 밤에는 낮에 못한 숙제를 푸느라 한 잔 들이켜며 싸우는 것이다. 결정적인 공부는 감정이 격해졌을 때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