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김민경 ‘맛 이야기’

복잡 미묘한 풍미 가진 작은 거인, 올리브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05-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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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올리브를 샐러드 토핑으로 사용하면 요리의 풍미가 살아난다.

    1. 올리브를 샐러드 토핑으로 사용하면 요리의 풍미가 살아난다.

    꼬마였을 때 초록색 고추와 빨간색 고추는 서로 다른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과일을 보면 배는 금색, 감은 주황색, 참외는 노란색, 수박은 초록색인 것이 정답이다. 과일뿐 아니라 오이, 가지, 무, 배추도 모두 자기만의 색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초록색, 빨간색 고추는 따로 진열해 놓고 판매하니 당연히 고추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고유색이 있다고 생각했다. 

    올리브를 처음 먹었을 때도 “나무마다 색이 다른 올리브가 열리나”라는 질문이 휙 하고 머릿속을 지났다. 올리브라는 이름만 같지 확연히 다른 생김새에 색깔까지 다양하니 올리브마다 정해진 색이 있는 줄 알았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과일답지 않은 과일

    올리브를 얹은 피자.

    올리브를 얹은 피자.

    올리브 나무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여기서 열리는 올리브는 초록색으로 열매가 영근 다음 불그스름하게 익어 자줏빛을 띠며 갈색을 거쳐 까맣게 익는다. 익어감에 따라 풍미와 식감이 달라져 수확하는 때도 제각각이다. 어떤 종자는 초록색일 때 먹어야 맛있고, 어떤 것은 색이 진해지도록 푹 익혀서 따야 좋다. 이러니 우리가 만나는 올리브 중 어떤 것은 늘 초록색인 채로 머물고, 또 어떤 것은 늘 까맣게 익은 모습만 보인다. 

    올리브는 과일이 분명하지만 생과는 잘 먹지 않는다. 쓴맛과 떫은맛이 강해 숨겨진 다른 맛은 알아채기 힘들다. 즉, 맛이 없다. 올리브는 맛 대신 좋은 기름 즉, 불포화지방산을 가득 머금은 과일이다. 철새가 먼 길을 떠날 때 올리브로 배를 채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름기 많은 올리브는 적은 양만 먹어도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가 가진 독특한 맛의 원천도 결국 기름이다. 

    한국에 살면 올리브를 과일로 만나기보다 기름으로 먼저 접한다. 조리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기름으로 치면 참기름, 들기름 다음으로 두루 쓰이는 게 올리브기름 같다. 특유의 산뜻한 향, 부드러우며 쌉싸래한 맛, 묵직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윤기를 가진 올리브기름은 빵 반죽에 넣고, 샐러드나 피자에 뿌리고, 드레싱을 만들고, 파스타와 쌀 요리에 쓰고, 소스나 수프, 스튜를 끓일 때도 쓴다. 채소, 고기, 생선을 구울 때 다양한 허브와 함께 사용하면 재료의 풍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며 버터와 적절하게 섞으면 요리 맛이 더욱 풍성해진다. 



    조금 특별한 올리브기름을 맛보고 싶다면 향으로 골라 보자. 로즈메리 같은 허브나 마늘, 고추 같은 향신채소를 넣어 맛과 향을 우린 것, 트러플처럼 값비싼 재료의 향이 깃든 것 등이 있다. 가향(加香) 올리브기름은 가열하기보다는 요리 마지막에 살짝 뿌리거나 빵 등을 찍어 먹을 때 또는 드레싱을 만들 때 써야 제 향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삶은 감자를 으깨 마요네즈나 우유를 넣고 부드럽게 할 때 트러플 향이 밴 올리브기름을 넣는다. 감자의 구수한 맛과 찰떡궁합이다. 그대로 푹푹 떠먹어도 맛있고, 잎채소나 햄과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되며, 스테이크 같은 고기 요리 옆에 동그랗게 떠서 얹어 내도 좋다. 이때는 스테이크 위에도 트러플 올리브기름을 살짝 끼얹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올리브의 풍미

    기름을 짜는 올리브와 과육을 먹는 올리브는 서로 다른 종류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올리브는 초록색, 갈색, 자주색, 검정색 등으로 색이 다르다. 씨를 그대로 둔 것과 뺀 것, 그리고 씨를 뺀 자리에 다른 것을 채워 넣은 것 등 종류도 다양하다. 

    올리브도 여느 과일과 마찬가지로 초록색일 때 과육이 단단하고 풋풋한 풍미를 지니며, 색이 진해질수록 말랑해지고 풍미도 부드럽게 무르익는다. 올리브 제 맛을 보려면 씨가 든 것을 고른다. 씨를 뺀 것은 잘게 썰거나 갈아서 요리할 때 사용하는 게 좋다. 

    올리브는 저장액에 담겨 캔이나 병에 든 채로 유통된다. 올리브 알맹이를 그대로 건져 먹고, 샐러드에 섞고, 소스나 스튜처럼 푹 끓일 수 있다. 또 빵이나 피자를 구울 때 넣고, 다지거나 갈아서 소스를 만들거나 반죽처럼 만들어 튀겨 먹을 수도 있다. 

    올리브는 쓴맛, 짠맛, 신맛, 단맛, 떫은 맛 때로는 매운맛까지 품고 있는데,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하고 다양한 풍미가 이 기름진 과일의 매력이다. 하지만 전혀 과일답지 않은 이 맛 때문에 올리브를 영원히 즐기지 않는 이도 있다. 

    특히 쓴맛이 강해서 가공할 때 그 맛을 제거하는 작업을 거친다. 쓴맛을 빼는 방법은 물에 담금질하기, 소금물이나 소금에 절이기, 건조하기, 가열해 익히기, 알칼리용액에 절이기 등으로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올리브는 대부분 물에 헹궈 소금물에 절이고, 알칼리용액에 다시 담은 것이다. 올리브 첫 맛이 대체로 짠 것은 이러한 공정 때문이다. 구입한 올리브를 먹기 전 물에 살짝 헹구고 물기를 완전히 빼서 맛보면 한결 부드러운 첫맛을 만날 수 있다. 

    혹시 방문한 식품 매장에 표면이 건자두, 즉 프룬처럼 조글조글한 올리브가 있다면 구입해보자. 소금에 절였거나, 구웠거나 아니면 나무에서 과하게 익힌 다음 수확해 보존처리한 것이다. 수분이 빠지면서 농익은 맛이 훨씬 좋다. 값도 그만큼 비쌀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올리브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씨를 빼지 않은 블랙 올리브, 속을 채운 스페인산 그린 올리브, 그리스산 칼라마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베트라노, 씨 뺀 스페인산 블랙 올리브, 씨 뺀 캘리포니아 블랙 올리브. 가운데는 속을 채운 그린 올리브다.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씨를 빼지 않은 블랙 올리브, 속을 채운 스페인산 그린 올리브, 그리스산 칼라마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베트라노, 씨 뺀 스페인산 블랙 올리브, 씨 뺀 캘리포니아 블랙 올리브. 가운데는 속을 채운 그린 올리브다.

    올리브 종류가 달라지면 맛도 확연히 달라진다. 올리브 초심자라면 다음에 소개하는 몇 종류를 구분해 먹어보자. 

    칼라마타(kalamata)는 갈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 올리브로 크기가 작고 갸름하다. 그리스가 고향이다. 지중해 쪽에서는 ‘올리브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맛이 풍부하다. 그대로 먹어도 맛있고 토스터나 오븐에 넣고 살짝 구우면 개성 있는 맛이 진해진다. 올리브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칼라마타를 살짝 볶아 기름에는 빵이나 과자를 찍어 먹고, 칼라마타도 한 개씩 건져 먹는다. 

    카스텔베트라노(castelvetrano)는 비교적 구하기 쉬운 종류다. 풋풋한 맛이 정말 좋은 올리브로 이탈리아 시칠리아가 원산지다. 맛이 상상될 만큼 신선한 초록색이며 둥근 모양이 과일답다. 올리브 중에서는 그나마 단맛을 가지고 있고 다른 올리브보다 지방 함유량이 높아 부드러운 감칠맛이 나며 식감도 찰지다. 올리브 초보라도 쉽게 호응할만한 맛이다. 물에 가볍게 헹궈 물기를 완전히 뺀 다음 화이트와인, 맥주, 막걸리 안주로 먹으면 된다. 마티니 술잔에 담그는 올리브는 주로 피콜리네지만 카스텔베트라노도 잘 어울린다. 카스텔베트라노는 까맣게 익은 뒤 수확하기도 한다. 까만 것은 과육이 무를 수 있어 살짝 구워 유통한다. 풋풋한 맛은 덜하지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은 훨씬 좋다. 샐러드나 파스타에 곁들이면 고기나 해산물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 

    체리뇰라(cerignola)는 가장 구분하기 쉬운 올리브다. 다른 올리브에 비해 두 배 이상 크고 모양은 뚱뚱한 럭비공 같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 보존처리를 했음에도 아삭거릴 정도로 씹는 맛이 좋고, 크기만큼 먹을 것도 많다. 기름진 맛은 오히려 가볍고, 신기하게도 아몬드 같은 견과류 맛이 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올리브 중에 가장 과일다운 맛이랄까. 발효한 생 햄, 구운 소시지나 마늘, 향이 강한 치즈, 케이퍼나 앤초비 등이 들어간 요리와 곁들이면 잘 어울린다. 체리뇰라 자체는 조리하지 않고, 잘 조리된 향이 좋은 요리와 함께 먹는다. 스테이크 옆에 곁들이는 구운 채소처럼 생각하면 된다. 

    피콜리네(picholine)는 조그만 체리뇰라처럼 생겼는데 색은 더 누르스름하다. 개성 있는 향이 나며 과육도 부드러운 편이다. 파스타처럼 볶아 먹는 요리에 넣거나, 수프나 소스를 끓일 때 넣으면 허브처럼 향을 낸다. 리구리아(liguria)는 작고 단단해 먹을 수 있는 과육이 적지만 맛이 아주 진하다. 리구리아 올리브를 구했다면 조리나 가공 없이 꼭 그대로 맛을 보자. 리구리아는 이탈리아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가에타(gaeta)는 이탈리아 풀리아에서 많이 나는 자주색 올리브로 크기가 작은, 잘 익은 대추처럼 생겼다. 쓴 맛이 적은 편이고, 고소하며 향이 진하다. 이 외에 고달(gordal), 알폰소(alfonso), 미션(mission), 벨디(beldi), 암피사(amfissa), 만자닐라(manzanilla) 등도 있지만 구해 먹기는 쉽지 않다. 

    올리브는 구입한 통에서 필요한 만큼씩 건져 먹고 그대로 두고 보관하는 게 좋다. 통조림에 든 것이라면 보존액까지 병에 옮겨 보관한다. 깜빡하고 보존액을 모두 따라 버렸다면 물 한 컵에 소금 한 숟가락 정도를 넣고 짠 물을 만들어 올리브를 담가 둔다. 이렇게 두면 짠 맛이 강해지므로 먹기 전에 물에 다시 우리거나, 조리용으로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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