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도프케·파브리지오 질리보티 지음, 김승진 옮김, 메디치, 512쪽, 2만3000원
조국 부부는 ‘헬리콥터 부모’다. 아이의 머리 위를 ‘뱅뱅 돌면서’ 아이 삶을 촘촘히 관찰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양육을 택한 부모 말이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에 대한 관여도가 높고 통제적 양육 방식을 추구한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헬리콥터 부모는 ‘입시 스펙’을 쌓기 위해 고등학생 딸이 의학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도록 돕고 봉사활동 표창장을 위조했다. 대학생 아들의 온라인 시험을 대신 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과목명은 ‘민주주의(democracy)’였다.
저자들이 실증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헬리콥터 부모의 부상은 변화된 경제적 환경에 부모가 합리적으로 반응한 결과”(135쪽)다. 오늘날의 헬리콥터 부모가 유년기를 보낸 1970년대만 해도 (헬리콥터 양육과는 반대인) 허용형 양육이 대세였다. 느긋한 유년을 보낸 부모가 자녀를 ‘매니저처럼’ 관리하기 시작한 기점은 1980년대다. 이때부터 소득불평등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우파의 우세와 재분배 효과가 작은 경제정책의 도입”에도 영향이 있지만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기술변화가 불평등 증가를 초래”(115쪽)했다는 얘기다.
저자들은 임금 불평등이 심하고 경쟁적인 사회일수록 부모가 성취 지향적으로 자녀를 몰아붙일 개연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영국에서는 1990년대 이래 급격히 헬리콥터형 양육이 확산됐다. 저자들은 그 전환점을 1998년 통과된 ‘수업 및 고등교육 법안’에서 찾는다. 이후 명문대 입학 경쟁이 치열해졌고 어느 대학과 전공을 택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장래가 급격히 달라졌다.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은 미국에는 허용형 부모가 거의 없다. 복지 선진국 노르웨이에서조차 1996~2007년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허용형 부모 비율이 줄었다.
책의 관심 밖에 있지만 한국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950년대 농지개혁으로 ‘평등한 자영농의 나라’가 됐다. 자영농의 자식들은 맨손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경제 호황은 1990년대 중반 절정에 달했다. 한데 1997년 한반도를 휩쓴 국가 부도의 위기는 중산층까지 공포로 몰아넣었다. 한국이 사교육 공화국의 덫에 빠진 시기와 절묘하게 겹친다.
헬리콥터 양육은 금세 디스토피아에 가닿는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는 부모가 그들을 성공의 경로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큰 반면 부유하지 않은 부모는 승산 없는 경쟁의 판에 들어갈 유인을 점차 잃게 될 것”(442쪽)이다. 계층 사다리는 헐거워지고, 중상류층 안에서는 혈투가 이어질 테다. ‘조국 사태’가 여태 활화산인 까닭이다.
세상의 모든 시간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을유문화사, 242쪽, 1만4000원
어떻게든 더 빨리 살아가는 게 최선인 듯 여겨지는 디지털 시대에 저자는 느림에 대해 얘기한다.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밥 딜런의 말을 인용하며, ‘오랜 시간의 힘’을 보여준다. 20년에 걸쳐 만든 뒤샹의 작품과 시골 우체부가 33년에 걸쳐 만든 돌멩이 성, 1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역청을 관찰하는 과학 실험 등이 인상적이다.
나는 왜 엄마가 힘들까
썸머 지음, 책과 이음, 256쪽, 1만5000원
가정은 많은 이에게 세상 살아갈 힘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 또한 가족인 경우가 많다. 썸머는 어린 시절 ‘엄마’와의 비틀어진 관계 때문에 여러 고통을 겪었고 이후 오랜 공부를 통해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유튜브 채널 ‘사이다힐링’을 통해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과 소통해 온 ‘썸머’의 노하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