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박근혜 서간집 ‘그리움은…’ 편지 8만 통 읽으며 受刑 견뎌

12만 부 발행 새해 첫 베스트셀러 1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2-01-07 15: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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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 옥중서간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유영하 엮음)가 출간 일주일 만에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출간된 이 책은 1월 6일 현재 교보문고 국내도서 주간 베스트 1위, 예스24 국내도서 1위, 알라딘 종합주간 1위를 달리고 있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초판 3만 부를 찍었으나 2만 부는 30일 출고되자마자 사전 예약 판매 물량으로 소진됐고, 나머지는 서점에 배포된 지 이틀 만에 매진돼 2쇄 6만 부를 증쇄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서점 주문이 쇄도해 다시 3쇄 3만 부 추가 제작에 들어간 상태. 서점에서는 10일 이후 책이 입고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발송한다는 예약 판매 안내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31일 구속돼 2021년 12월 31일 0시를 기해 사면됐다. 12월 24일 사면 발표 직후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 심심한 사의(謝意)를 표합니다.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며 신병 치료에 전념해 빠른 시일 내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사면 발표 후 책 판매부수가 급증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1년 6개월간 책 작업을 진행하면서 판매부수보다 ‘역사의 기록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2월 16일부터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예약판매를 시작했지만 ‘정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책이 맞느냐’고 의문을 갖는 분이 많아서 초기엔 판매가 저조했다. 심지어 박근혜 이름을 팔아서 만든 가짜 책이라는 유언비어도 돌았다”며 “사면 소식이 나오자 ‘이 책이 도저히 거짓일 수 없다’는 반응과 함께 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편지 읽으며 수감 생활 견뎌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는 박 전 대통령이 4년 9개월 수감 기간 동안 받은 편지 8만여 통 가운데 129통을 추리고 각 편지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답신을 엮은 것이다. 1장 ‘2017년-하늘이 무너지던 해’, 2장 ‘2018년-끝없는 기다림’, 3장 ‘2019년-희망을 보았다’, 4장 ‘2020년-그리고, 아직’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박 대통령은 서문에서 “많은 실망을 드렸음에도,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는 편지를 보내주시는 국민 여러분이 있어 지금까지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분이 어떤 이야기를 보내주실지 기다려지고 설레기도 했습니다”라며 “간혹, 답장을 간절히 원하시는 분도 계셨고, 깊은 울림을 주신 편지 글에는 답장도 드리고 싶었지만, 이곳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음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라고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자 엮은이로 서간집 제작에 참여한 유 변호사는 “대통령께서 ‘가끔 답장을 보내드리고 싶은 편지가 있다’고 하셔서 ‘지금까지 받으신 편지 중에서 일부를 모아 책으로 내는 것은 어떠시냐’고 말씀드렸다”고 출간 경위를 설명하며 막상 책으로 발간하려 하자 수만 통의 편지를 추려내는 데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50통씩, 많을 때에는 200통도 넘었다. 말이 8만 통이지 편지를 담은 상자들로 이 방(변호사 사무실)에 가득 찰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그 편지들을 다 읽고 메모한 뒤 직접 답장을 쓰셨다. 그 편지들을 읽으며 긴 수감 생활을 견디신 거다. 그중 600~700통을 추리고 추려서 여러 사람이 읽고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책에 실을 것을 선별했다. 과격한 내용이나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들은 삭제하거나 다듬었다.”

    “진실은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

    책 제목은 경북 구미시에 거주하는 박모 씨가 2019년 5월 6일자로 보낸 편지에서 가져왔다. ‘국민들은 알고 또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동전 한 닢도 부정하게 꿀꺽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중략) 그리움은 아무에게서나 생기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기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고 엉킨 실타래도 한 올 한 올 풀려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재직 중에 추진했던 여러 정책들을 마무리를 짓지 못한 아쉬운 점도 있고, 한편 조금 부족했던 점도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심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이권을 챙겨주는 그런 추한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는 말씀이 오래 여운을 주었습니다.”

    ‘빨간 날(탄핵 정국만 아니었다면 대통령 선거일) 표시가 된 달력’이라는 제목의 2017년 12월 20일자 편지에는 “탄핵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동은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 생명이 길지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어둠은 여명이 밝아오면 자리를 내주면서 사라질 것이고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같은 날짜 다른 편지에는 “제가 수많은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일주일에 4번씩 감행하는 살인적인 재판 일정을 참아낸 것은 사법부가 진실의 편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기대와는 달리 말이 되지 않는 이유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보고 정해진 결론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재판부가 진행하는 재판에 참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고 구차하다고 생각해 변호인들에게 저의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진실은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책에는 박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도 수록됐다. 그중 하나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밤 따기를 하다가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딸을 위해 아버지가 긴 장대로 끌어주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새 구두의 바닥을 가리키는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함께 웃는 모습의 사진도 있다. 출판사 측이 밝힌 대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그리움’을 말없이 표현해주고 있다.

    표지 사진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미소를 짓는 박 전 대통령의 머리 위에 살포시 눈이 내린 모습으로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 서울 중랑구 유세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정치 활동 재개 여부 촉각

    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과 옥중 서간집 출간에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반성 없이 탄핵의 부당함만 주장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사면을 반대하는 청원이 진행되기도 했다. 한편 차기 대통령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이번 대선에 미칠 파장을 염두에 두고 여야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월 4일 박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유영하 변호사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책이 사면일에 맞춰 출간됐다.

    “사면 시기를 귀띔 받고 책을 출간한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원래 지난여름에 출간하려던 것이 여러 이유로 지연돼 결과적으로 출간 타이밍이 적증했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데 퇴원 후 거처는 정해졌나.

    “몇 군데 알아보고 있다. 대통령께서 평생 사셔야 할 집 아닌가. 사실 돈 문제도 있다. 대통령께서 돈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사저는 지난해 2월 검찰이 압류해 공매에 넘겼다. 유 변호사는 검찰이 사저를 압류할 수는 있지만 공매까지 해버린 것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옥중서신집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병실에 TV가 있으니까. 뉴스를 보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따로 묻기도 하고 내가 따로 전달하기도 한다.”

    -책에 실린 박 전 대통령의 답장 내용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럴 필요 없다. 답한 부분만 보고 그런 말들이 나오는데 (지지자가 보낸) 편지 전체를 보면 다 이해가 된다. ‘진실이 밝혀져 억울한 누명을 벗으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쓰니 ‘진실은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답한 것뿐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낼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궁금해 하는 것은 두 가지 아닌가. 이번 대선에서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이냐. 대통령과 수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나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전달할 뿐이다. 사면 때처럼 퇴원할 무렵 한 말씀하시지 않겠나. 정치 메시지가 담길지는 모르겠다.”

    대선을 두 달 남기고 돌아온 ‘선거의 여왕’. 그 시기가 공교롭다. 정치권이 긴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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