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데도 총리로 발탁된 가장 큰 이유는 외교와 경제 분야에 이처럼 굵직한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원외교’형 총리에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강원도·연세대 출신으로 학연·지연 문제에서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한 총리는 특히 국내에 몇 안 되는 ‘글로벌 인사’로 꼽힌다.
그는 1968년 영국 요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30대 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서 베네수엘라 정부 초청 재정자문관, 세계은행 재정자문관, 요르단 재정자문관 등을 역임했다.
미국 하버드대와 일본 도쿄대에서 교환교수 및 객원교수를 지냈고,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특별위원장을 맡으며 경제의 세계화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2004년에는 영국 명예기사 작위를 받고 2007년 5월부터 유엔기후변화 특사로 활동하며 글로벌 감각을 뽐냈다.
정권이 다섯 번 바뀌는 와중에도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타고난 융화력과 조정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역대 정부에서 상공부 무역위원장(전두환 정부), 국회의원·상공부 장관(노태우 정부), 주미대사와 대통령비서실장, 경제부총리(김영삼 정부), 외교통상부 장관(김대중 정부), 유엔기후변화특사(노무현 정부) 등을 지냈다.
그러나 ‘처세술의 대가’ ‘무소신’이라는 평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3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인사 수십 명의 서훈을 취소했다. 당시에도 한 총리 후보자는 ‘가만히’ 있었다. 자신에게 각종 공직을 거친 경륜의 대가라는 평가와 함께 ‘처세술의 대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는 점도 곰곰이 돌아봐야 할 것 같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재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받은 보훈 천수장이 이번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되자 훈장을 바로 반납했다. ‘그렇게 부끄러웠으면 진작 내놓지 국무총리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이제 와서 반납하느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국회의원 당적도 정권 따라 바뀌었다. 민주정의당(13대), 신한국당(15대), 민주국민당(16대)을 거쳤다.
취미는 등산. 상공부 장관 시절 서울대에 차를 두고 관악산을 넘어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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