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통합된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장은 교육계와 과학계를 두루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 그의 낙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노벨상 후보급 연구자 육성을 위한 과학기술부의 ‘창의적 연구진흥사업단’ 초대 협회장을 지냈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하던 ‘세계 수준의 선도대학 육성사업’을 주도하면서 양 부처와 모두 교류해왔다.
한국공학교육학회를 직접 설립하고 공학교육인증제 도입을 주도했으며 서울대 공대 학장 시절 수월성 교육을 도입하는 등 혁신과 경쟁을 위한 추진력도 갖췄다는 평가다.
김 장관은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를 거쳐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조각 과정에서 시중에 회자된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맥과는 거리가 멀다. 이명박 대통령과도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그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점잖고 합리적’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188㎝의 장신에도 불구하고 남달리 조용하고 말씨가 온화해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도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일을 추진하든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모으고,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도 끝까지 듣지만 한번 결정을 내리면 과감히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2005년부터 2년간 서울대 공대 학장을 지내면서 교수 사회의 안일함을 비판하고 서울대 최초로 공대 학장 외부 영입을 추진한 것은 신선한 파장을 불러왔다. 하지만 초중등 업무에는 사실상 문외한이라는 점 때문에 교육계 일각에서는 공교육 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시각도 있다. 서울대 공대 학장 이외에는 별다른 조직 관리 경력이 없다는 점도 취약점으로 꼽힌다.
학창 시절 조정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하고 테니스가 수준급일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서른의 젊은 나이에 서울대 전임교수가 돼 1980년대 학내 사복경찰들이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해 수시로 불심검문에 걸리는 해프닝이 잦았다는 일화는 지인들 사이에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