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에 이명재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구-경북(TK) 출신 법조인들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검찰 내 TK인맥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평검사 때 법무부 검찰국에서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30년 검사 생활 중 절반 가까운 14년을 법무부에서 근무했다. 특히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검찰 1과장을 이례적으로 3년 동안 해 검사들의 이력과 신상을 꿰뚫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사 인사의 달인’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사법시험 11회인데도 사시 9회와 함께 고검장에 승진했으며, 법무부 교정국장 시절 당초 사시 8회 출신이 맡을 것으로 예상됐던 법무부 차관 자리까지 꿰찼다.
법무부 차관 재직 때 인권법 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추진했다. 또한 반부패기본법 제정, 자금세탁방지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금융정보분석원(FIU)을 설립하는 등 부패방지제도의 근간을 마련했다.
2001년 검찰총장 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고교와 대학 1년 선배이자 사법시험 동기인 이명재 변호사가 외부 발탁 케이스로 검찰총장이 되면서 검찰을 떠났다.
당시 서울고검장 퇴임식에서 그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퇴임사를 읽으면서 “내가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시구를 인용해 잔잔한 화제가 됐다.
그는 당시 “강자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한 일은 없었던가 부끄럽게 여긴다”라는 참회록에 가까운 퇴임사를 남기기도 했다.
2002년 퇴임 후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중국 베트남 등 해외시장 진출을 도모했다.
그는 평소 검찰 지휘권이 제대로 확립되는 것이 검찰 조직의 근간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신이 강한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검찰 내부에서는 그가 ‘외풍’을 막아줄 적임자라는 기대가 많다. 특히 이종찬 대통령민정수석(사법시험 12회)보다 사시 기수가 1기수 높아 이 같은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큰 편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집 근처인 서울 양천구의 목동성당에 다닌다. 가톨릭 봉사단체인 레지오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재소자 방문교화, 나환자 마을 돕기운동 등 각종 봉사활동도 앞장서 하고 있다. 주변사람들에게도 “봉사하는 삶을 살아라”고 늘 강조한다고 한다.
변호사 시절 법 질서 확립과 관련해 정기적인 언론기고를 했을 정도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보신탕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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