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당시 이상희(육사 26기) 합참의장은 41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는 이임사의 끝 대목에서 아내의 노고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현역 최고 수뇌이자 전형적인 무골(武骨)인 그였지만 군문을 나서는 자리에서 못다 이룬 정책이나 과업에 대한 아쉬움과 섭섭함이 짙게 묻어났다.
그로부터 1년여 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장관 내정 발표 뒤 기자회견에서 “군과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감사드린다. 군 통수권자의 통수지침을 구현하고 정예 선진 강군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이 장관을 낙점한 것은 그의 군 통솔력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때문으로 보인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인 만큼 조각(組閣)을 둘러싼 하마평이 무성했고 국방장관직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 술, 새 부대론’이 강조되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군 수뇌를 지냈고 이명박 대통령 측과 특별한 연이 없는 이 장관은 당초 유력한 후보군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출신과 코드를 떠나 능력과 실용주의를 내건 이명박 정부의 인선이 진행될수록 그의 능력이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업무에선 완벽주의자로 자타가 공인할 만큼 치밀하고 빈틈이 없다. 야전지휘관 시절부터 부하에게 ‘첫째, 둘째, 셋째…’로 순서를 매겨가며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로 정평이 나 있다. 또 부하들에 대한 업무 요구수준이 높아 보좌하기 까다롭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05년 육군 3군사령관에서 합참의장으로 진급한 직후 주요 참모진과의 첫 대면에서 “나와 일하는 동안에는 골프 칠 생각을 접어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가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시스템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고강도의 합참 개혁을 추진해 합참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됐다는 게 군내 대체적인 평가다.
그가 현역 시절 보여준 우직한 소신도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다운 군인, 군대다운 군대’를 강조한 그는 의장 재임 때인 2006년 4월 군 부대를 노린 총기 탈취사건이 잇따르자 경계작전지침을 바꿔 후방지역의 경계병들도 실탄을 휴대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후 군내 총기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실탄 지급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지만 그의 지침에 따라 합참은 “군인이 최소한의 자위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놓고 미국의 제안대로 2009년안을 수용하려고 하자 한국군의 준비가 끝나는 2012년 이전에는 불가하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는 한국의 뜻대로 2012년으로 결정됐다.
강원 출신으로 지역 안배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군문을 나선 뒤 정치 활동에 일절 간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전역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동북아정책 연구센터의 비상근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11월 귀국했다. 그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안보 전문가로서 북핵 문제 등에 대한 활발한 강연과 연구활동을 통해 미 국방부 고위당국자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과 깊은 교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이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금이 간 한미동맹의 복원과 철저한 대북대비 태세 구축, 국방개혁을 통한 선진 정예강군 육성이라는 중책들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새 정부가 전시작전권 전환 일정의 재검토를 추진할 경우 이 장관이 이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뒷받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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