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 메릴린치 등 투자은행 자문역, 세계은행(IBRD) 금융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 딜로이트 컨설팅 회장….
IBRD 재직 시절, IBRD가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쓰는 자체 골프장이 있었는데 전광우 위원장은 아시아인으로는 드물게 골프장 운영위원회 멤버로 선임되기도 했다. 뛰어난 사교성으로 IBRD 이너서클의 일원이 된 셈이다.
그는 폭넓은 국제금융 경험을 바탕으로 외환위기 직후에는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특보로 선임돼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했다.
서울대 동문인 서울대 경제학부 정운찬 교수는 2004년 발간된 전광우 위원장의 ‘왕도는 없고 정도만 있다’는 책 추천평을 이렇게 적었다.
“재무 관리와 국제금융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경험을 두루 쌓았다. 외환위기 발생 이후 국가의 부름으로 귀국해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특보,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역임하며 IMF 극복을 위한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융전문가다. 또한 우리금융그룹의 전략 총괄 부회장으로 특유의 전략적 치밀함과 리더십으로 그룹 경영시스템을 신속하게 정착시켰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함으로써 우리금융그룹이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오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는 국제적 감각이 뛰어난 금융경제인이자 원칙을 중시하되 균형감각을 가지고 조직융화도 고려하는 내유외강형 최고경영자(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와대의 임명 발표가 난 3월5일 저녁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자택으로 찾아가 만난 전 위원장은 경력대로 ‘글로벌 감각을 갖춘 젠틀맨’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적을 두지 않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주위의 평가 그대로였다.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전 위원장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소신을 솔직히 밝혔다.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분 소유 제한) 문제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완화해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금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공식 제기한 사람은 제가 처음일 겁니다.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으로 있던 2001년 ‘우리은행 등의 민영화를 위해 금산분리를 신축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우리금융에 가서 민영화를 하려고 보니 금산분리의 경직적인 시스템 때문에 ‘도대체 민영화가 되겠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적자금 활용도 극대화해야 했는데 그것도 잘 안됐어요. 금산분리는 하루아침에 규제를 푸는 게 아니라 부작용을 줄이고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면서 점진적으로 완화해나갈 작정입니다.”
외환은행 매각 문제에 대해서는 “법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법적인 결론이 나기까지는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유보하겠다는 기존 금융감독 당국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를 하면서 싱가포르의 테마섹 회장 등 외국 금융인들을 만나면 (외환은행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반(反)외자정서를 지적하기도 합디다. 내 원칙은 이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오픈’은 하지만 시장 규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적용할 건 해야 한다는 겁니다. 증권관계 룰이나 세금의 룰을 깨는 법칙은 사실 선진국이 더 강해요.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외국에 전달할 생각입니다.”
재임 기간 중 금융 규제를 완화해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열면 자국 선수들은 우승을 못하고 남의 나라 잔치가 되죠(1980년대 중반 영국이 대대적인 금융 규제 완화에 나선 뒤 영국 은행이 외국 금융기관에 인수되는 현상이 벌어지자 이런 용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난 반대로 생각하고 싶어요. 다른 나라 선수들이 우승하면 어떻습니까. 관광객들이 생기는 등 효과가 크지 않나요. 한국에서 외국 금융회사들이 돈을 버는 동안 동북아 지역의 중요한 금융 허브로 키워나가면 됩니다.”
그는 공직자들의 재산 논란과 관련해서는 홀가분한 듯 “집 외에는 땅 한 평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교회도 소망교회가 아니라 정동교회에 다닌단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특별히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고.
전 위원장은 대표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할 당시부터 아침 7시면 출근하는 습관을 20년째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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