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김인종 대통령경호처장

대통령후보 국방정책 자문 맡다 경호책임자 된 예비역 대장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8-04-12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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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종 대통령경호처장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은 성격이 호방하다. 군 지휘관 시절 의리와 정에 바탕을 둔 리더십으로 신망이 높았다. 늘 끈기와 근성, 인내라는 세 가지 군인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장병의 사기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덕장(德將)의 면모를 지녔다는 게 뭇사람의 평이다.

    부하들에게 베푸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 그는 아끼는 부하들과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곤 했다. 20년 전인 연대장 시절 운전병, 당번병을 지낸 옛 부하들이 요즘도 찾아와 안부 인사를 한다. 그는 군 시절에 대해 “상관과 부하의 관계를 떠나 동지애와 전우애로 하나가 되는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회고했다.

    100m를 13초에 주파할 정도로 기초체력이 뛰어난 편이다. 사관학교 생도 시절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 늘 1등이었다. 고교 때는 유도와 축구를 했다. 군에서 익힌 테니스는 지금도 즐기는 운동. 군 지휘관들은 대체로 복식을 즐긴다. 하지만 그는 단식을 선호했다. 체력단련 효과가 크다는 게 이유다. 한 번에 적게는 4~5게임, 많게는 7게임까지 뛴다.

    월남전에서 그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적이 쏜 총탄이 수통에 맞았던 것. “죽을 각오로 일하면 해내지 못할 게 없다”라는 좌우명을 갖게 된 계기다. 이후의 삶을 그는 ‘제2의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김 처장은 2001년 육군 2군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한 후 초야에 묻혀 지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9월. 국방 분야에 취약했던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



    김 처장은 대선 당시 서초포럼을 이끌면서 수시로 이 후보와 만나 국방정책을 조언했다. 군 예비역 장성들의 국방정책 연구모임인 서초포럼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및 본선 과정에 100여 건의 정책보고서를 만들어 MB 캠프에 전달했다. 선거 막판엔 군 인맥과 친지, 지인 등을 통해 득표활동까지 벌였다. 대선 기간 김 처장의 공식 직함은 한나라당 안보자문위원장이었다. 서포포럼은 대선 직후 해산됐다.

    애초 국방부 장관 후보로 유력했던 그가 경호처장에 임명되자 ‘밀린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이 당선자의 신뢰가 두텁기 때문에 경호 책임을 맡게 된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이 들린다. 수도방위사령관 재직 경험이 있어 청와대 경호시스템에 해박하다는 것도 인사 배경으로 거론된다. 김 처장은 임명 직후 술과 담배를 끊었다.

    金仁鍾

    생년월일 : 1945년 4월16일

    출생지 : 제주

    학력 : 대정고(제주), 육군사관학교 24기,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경력 : 국방부 정책기획관, 수도방위사령관, 국방부 정책보좌관, 육군 2군사령관, 서초포럼 위원장, 한나라당 안보자문위원장

    상훈 : 대통령표창, 보국훈장삼일장, 인헌무공훈장, 보국훈장천수장

    종교 : 천주교

    취미 : 바둑,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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