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도쿄특파원, 정치부장, 정치 담당 논설위원 등을 지내며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그이지만 정작 이 대통령과 별 인연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경선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해 초 이 대통령 측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1위인 점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상황이 어려워지면 돕겠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의 말처럼 이 대변인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논란이 확산되는 등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주춤거릴 때 합류했고, 특유의 판단력과 동물적인 정치 감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탰다. 정치권에서 흔치 않게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을 번갈아 장기간 취재한 이 대변인은 평소 지인들에게 “두 ‘정치 9단’의 장점을 골고루 관찰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말해왔다.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직전의 일이다. 당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논란을 수사해온 검찰이 ‘도곡동 땅이 제3자의 소유일 수 있다’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놓고 일부 참모들은 “도곡동 땅이 MB(이 대통령) 소유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자고 주장했지만 이 대변인 등은 ‘검찰의 경선 개입론’을 주장하며 강경 대처를 제안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검찰의 편파 수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재오 의원 등은 그날 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로 몰려가 밤샘 농성을 하며 상황을 반전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삽시간에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부상하자 수년 동안 이 대통령을 보좌해온 주변 인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뿌리째 뽑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 대변인은 대선 과정에서 한동안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다. 일부 인사들은 마타도어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그의 또 다른 장점인 친화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했다. 타고 다니던 고급 승용차도 승합차로 바꾸며 자세를 낮췄다. 이 대변인에 대한 주변의 질시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를 위해 천명한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표현을 빗대 ‘프레스 프렌들리’라는 용어를 만든 이 대변인은 기존의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역할 중 일부를 흡수한 청와대 대변인 재임 중 노무현 정부에서 왜곡된 언론정책만은 꼭 바로잡겠다는 희망을 종종 밝힌 바 있다. “디지털 시대이니, 방송 통신 융합이니 해도 신문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제대로 된 오피니언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게 그의 확고한 소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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