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이 대통령이 정 의원에게 “함께 일해보자”고 먼저 제안했고, 이에 감동한 정 의원은 ‘MB 인맥’의 선봉장을 자처하게 된다. 퇴원 직후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의 부부동반 만찬 제의에 또한번 놀랐다.
대선은 참모들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인사들은 “이광재, 안희정에게 졌다”고 자인한 바 있다. 정두언 의원은 지난해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안희정 씨, 이광재 의원과 비슷한 구실을 했다.
정 의원은 2002년부터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아 청계천 복원 사업 등을 함께 추진한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복심 중의 복심’으로 불렸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일할 때 그는 ‘시청과 여의도’의 눈높이를 조율하고 채널을 맞추는 역할을 했다.
‘이명박 선대위’에서 전략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아 대선을 치른 그는 선거 전략은 물론 홍보, 네거티브 대응, 이미지 메이킹 등 전방위에서 이 대통령을 보좌했다.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과 독대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대선의 1등공신인 그는 부모의 고향이 광주다. 이 대통령은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더욱 아낀다고 한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숙부의 집에 들어가 지냈다. 무허가촌을 돌던 어머니가 노점상을 시작하면서 가족이 서울 서대문구에 모여 살게 됐다. 초등학교 때 부모가 당구장을 운영한 덕분에 그의 당시 당구실력은 200점에 달했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고 ‘중심’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권력구도 재편 과정에서 핵심 브레인 노릇을 한 그는 ‘비주류’였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우리는 출신 성분이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 의원은 이번 조각과 청와대 인선 과정에서 다소 소외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로그룹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인 것. 정 의원과 박형준 의원이 추천한 인사들은 청와대 인선에서 낙마하거나 한직으로 밀렸다고 한다.
정 의원은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정무장관실, 문화체육부, 국무총리행정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등에서 일했다. 국무총리실에서 일하면서 목격한 역대 총리들의 일화를 촌철살인의 글로 정리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2001)라는 저서가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