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금도 서울시에선 ‘가장 오래된 서울시 공무원’으로 통한다. 32년간의 서울시 공무원 생활 중 토목, 건설과 관련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의 별명은 ‘불도저’, 서울시 토목계의 ‘파파 스머프’로 토목 CEO 이미지를 가진 MB와 너무 닮았다. 잘 차려진 한정식보다 허름한 밥집의 김치찌개와 설렁탕을 더 좋아하는 식성까지 같다. 종교도 기독교, 취미도 테니스로 MB와 같다. 그의 휴대전화 연결음은 ‘낮이나 밤이나 일하자’는 내용의 로고송이다. 성실, 착실, 진실의 ‘삼실(三實)’이 좌우명일 정도로 그는 일에 파묻혀 살아왔다.
그런 그가 2002년 서울시장이 된 워커홀릭 MB의 눈에 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 산하 건설관련 본부장과 국장을 두루 역임한 그는 정책보좌관을 거쳐 청계천복원 추진본부장을 맡으면서 진가를 톡톡히 발휘한다. 별명은 불도저이지만 일의 진행을 절대 강요하지 않는 성품. 대부분의 현장 토목인이 우렁찬 목소리에 큰 덩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덩치도 목소리도 모두 작다. 말하기보다는 듣는 스타일이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한다. 토목직 출신인 그의 밑에 MB의 전략가들이 응집하는 이유다. 큰 목소리로 반대파를 밀어붙였다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현재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 지금의 복원된 청계천은 협상과 중재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장인 MB 대신 악역을 맡은 이가 바로 장 전 팀장이었다.
그는 2006년 6월 행정부시장을 그만두면서 ‘한반도대운하’의 총책이자 설계자로 변신했다. 제17대 대선과정에서 그는 MB의 사조직 중 하나인 ‘한반도운하연구회’의 회장으로 운하의 밑그림을 그리고 운하 반대론자의 논리에 대응했다. 그가 운하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모두 MB 때문이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끝나갈 즈음이었어요. 시장님이 저를 부르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한반도대운하에 대해 설명을 하고 관련 검토를 해보라고 해요. 들을수록 옳은 이야기고 해서 청계천 복원사업 완공 이후에는 운하와 관련한 공부만 했지요. 그러고선 시장님이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히고 퇴임할 때 저도 같이 나갔습니다. 이후엔 관련 교수와 자문단의 의견을 수렴해 대선 공약을 만들었습니다.”
2007년 12월 대선이 끝난 후 그는 곧 대통령직인수위에 들어가 한반도대운하 TF팀장을 맡았지만 제대로 입 한번 열지 못했다. 워낙 반대론이 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운하에 대한 함구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사석에서 “나는 역대 가장 불행한 인수위원”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한반도대운하 TF팀은 당초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탈바꿈해 이명박 정권 출범과 동시에 운하사업에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었지만 한나라당의 운하에 대한 총선 전 무대응 방침에 따라 오히려 일시 해체의 아픔을 맛보게 됐다. 어쨌든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야인이 된 셈이다.
이와 관련 장 팀장은 지나친 ‘예스 맨’이란 비판도 받는다. 억울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닥쳐도 단 한 번도 상사에게 ‘안 됩니다’ ‘틀렸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게 주변인의 평이다. 그는 시키는 일은 어떤 것도 완벽하게 수행하지만 그 스스로 무엇인가 일을 만들어낼 인물은 못 된다는 이야기다.
장 전 팀장이 신설 국토해양부 장관 자리를 놓친 이유도 이런 그의 성격과 무관치 않다. 그는 막판까지 복수의 후보자로 하마평에 올랐으나 결국 낙마했다. 고향이 경기도 고양인 그는 지역 안배 차원이나 재산형성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운하에 대한 국민 여론이 총선결과에 부담이 되자 정권은 당분간 그를 멀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각종 운하 관련 설명회도 모두 취소하고 총선 전까진 은둔의 기간을 보냈다. 대선 과정에서 ‘운하 반대론’을 언론에 흘리며 장 전 팀장을 괴롭히던 건설교통부의 관리들도 그의 장관행을 막았다. 건교부 국장급 이상 인원 중 5명이 서울대 농공학과 후배인 사실이 결정적 부담이 됐다. 그들은 과 후배에다 기술고시 후배들이기도 하다.
운하의 이론가 류우익 교수와 곽승준 교수가 대통령실장과 국정기획수석으로 각각 화려하게 이명박 정권에 연착륙한 것에 견주면 그는 현장 실무 전문가로서 죽을 고생을 다하고도 결국 여론의 역풍을 맞은 후 운하와 운명을 같이하게 됐다. 총선 후 운하계획이 다시 시작된다면 그는 정권의 일원으로 돌아올 터이지만 그게 아니면 영원히 ‘이명박의 사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 운하는 포기할 수 없다”는 MB의 성향으로 미뤄, 작전상 후퇴를 선택한 운하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는 순간, 장 전 팀장은 화려하게 부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가 없는 운하는 진정한 ‘MB 운하’라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MB는 사석에서 “장석효 없는 운하는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가 운하와 관련해 유일무이한 엔지니어 출신 측근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MB 측근들이 이구동성으로 그가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장관급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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