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에서 수정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매입에 관해서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다만 당초 납세자 보호 미흡을 이유로 법안을 부결시켰던 미 하원의 체면을 고려해 예금기관 파산 시 예금보호 상한액을 기존의 10만달러에서 25만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또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서너 가지 세금혜택 연장 및 확대조치 등을 추가했다. 아울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은행 등 금융기관의 보유자산에 대한 시가 회계기준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이런 추가조치는 사실상 부실 금융기관 구제와는 별 상관이 없다. 하원 달래기를 위한 일종의 ‘정치 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7000억달러 종합구제금융법안의 효과에 대해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매입한다고 해서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다. 7000억달러로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공적자금 투입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난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7000억달러 종합구제금융대책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종합구제금융대책이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자본잠식
종합구제금융대책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파산 위험에 처한 미국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부실 구조를 대차대조표로 간단히 모델화해보기로 하자(표 1).

미국의 글로벌 금융기관은 지난해 8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 이후 계속된 투자손실 계상으로 자기자본이 부족한 상태에 빠져 있다. 여기에 증자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반영해 자기자본을 10으로 나타냈다. 글로벌 금융기관은 장부상 가격으로는 대차가 일치고 있지만 시장가격 면에서는 부실자산이 60이나 된다. 부실자산의 실제 시장가격 여하에 따라 심각한 자본잠식 내지는 채무초과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확정된 종합구제금융법안은 바로 글로벌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60을 매입해 재무상태를 건전하게 함으로써 금융시장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금융기관은 과다한 부실자산을 떠안고 있어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 등의 금융신용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확산된다. 종합구제금융법안은 한마디로 이런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미국 재무부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금융위기가 금방 해소될 수 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 후 미국 글로벌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자(표2). 눈치 빠른 사람은 이를 보자마자 금방 문제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가령 미 재무부가 자산관리공사(RTC)를 설립해 글로벌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60을 역경매(reverse auctions) 방식으로 40에 매입한다고 해보자. 그 경우 부실자산 60은 미 재무부 소유로 바뀐다. 반면 글로벌 금융기관은 부실자산 60을 매각하고 40의 현금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기관은 20의 부실자산 매각 손실이 발생한다. 즉 자산매각 손실 또는 투자 손실을 계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기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증자 등 자본을 확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과연 이들 글로벌 금융기관에 거액의 자본을 선뜻 내놓을 투자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또 해외 투자자가 미국 글로벌 금융기관에 출자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소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할 사람이 없다.
문제는 매각 손실과 자본 부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종합구제금융법안이 실패로 끝날 이유는 또 있다. 표2에서 글로벌 금융기관은 부실자산 매각대금 40과 기존의 건전자산 40을 합해 총 80의 유동성 자산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차입금은 여전히 90으로 변함이 없다. 즉 자산을 초과하는 채무가 10이나 된다. 어떤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해도 미국 정부가 부실자산을 최소한 50 이상의 가격으로 매입해주지 않는 한 글로벌 금융기관은 채무 초과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