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은 지난해 7월 이 구로구민회관으로 이전했다. 공공기관, 공기업이 지자체 부속건물에 본사를 두는 일은 흔치 않아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2층 집무실에서 이대영(李垈穎· 47) 원장을 만났다. 연극인 출신인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내다 지난해 7월 교육진흥원 2대 원장에 취임했다. 뉴라이트 계열인 ‘자유주의연대’ 창립(2004년 11월) 멤버로서 이명박 대통령,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뉴라이트 이력으로 미뤄 짐작건대, ‘친MB계가 공기업 경영일선에 포진해 전(前)정권의 구태를 일소하고 MB의 선진화 국정이념을 구현한다’는 반복되는 패턴의 연장선으로 비쳤다. “취임 후 추진해온 개혁과제와 성과는 무엇인가”라는 예측가능하고 평이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盧정권이 일 잘해주었다
그러나 이 원장의 첫마디는 이런 예상과는 달랐다. “내가 이 자리에 강력히 오고 싶어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이 말은 2005년 진흥원을 설립해 3년간 이끌어온 전임 김주호 초대 원장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전임 원장이 지난해 2월18일 임기가 만료되어 3월1일 새 원장이 취임해야 했죠. 현 정부에서 내게 권유했지만 ‘수강신청 받아놓은 상태라 어렵다’고 고사했습니다. 사실 전임 원장이 열심히, 잘해 주었잖아요. 경복궁 컨테이너 박스에서 시작한 진흥원을 이렇게….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됐지만 그분이 한 번 더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유인촌 장관과는 같은 연극인으로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곁에서 봐와서 아는데, 문화예술 진흥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입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중앙대의 박범훈 총장께서 현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물망에 오를 때였어요. 내가 박 총장께 직언을 드렸습니다. ‘중앙대 총장이 장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장 임기까지 대학을 위해 일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요. 그렇게 말씀드려놓고 유 장관 산하기관의 자리로 옮기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한 번 더 요청이 왔어요. ‘학기 수업 끝나는 7월부터 맡아달라’고요.”
▼ 어떻게 대답했나요?
“참 거절하기 어려웠어요. ‘나를 검증해보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하대요. 내가 봐도 지금껏 모아둔 게 창피할 정도니까…. 생각 끝에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경기 양평 중미산 천문대에 올라갔어요.”
▼ 거긴 국내 최대 반사망원경이 있는 곳이죠.
“5월이면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로 세상이 들끓을 때였죠. 내가 ‘MB정권에서 일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학생들이 난리가 났어요. ‘거기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함께 별을 보며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그들도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명박 정권 ‘공기업 선진화’의 대표적 특성은 ‘다운사이징(downsizing·조직축소)’이다. 또한 경영실적에 대한 ‘계량적 평가’가 선진화의 잣대가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정원 OO% 감축’‘수익 OO% 증가’ 등 종사자들의 업무활동은 모두 수치화된다. 여러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행태를 개선하기 위해선 이러한 엄정함도 필요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획일화된 개혁’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공기업 영역에서 ‘양적 평가’와 ‘강한 개혁드라이브’가 요구되는지 몰라도 특수 영역에서는 이와는 다른 ‘질적 평가’도 필요하다. 이런 영역의 공기업이 의외로 수치화할 수 없는 큰 기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청와대와 장관 등 정책결정권자는 데이터가 아닌 ‘직관’으로 ‘숨은 잠재가치’를 알아내야 하고 이를 현실로 구현해낼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개혁은 ‘수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주관’의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개혁은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매력적인 일이다.
이와 관련해 이대영 원장은 “교육진흥원은 인간 정신을 다루는 문화예술 영역의 기관으로서 감성적인 개혁, 계승하는 개혁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청사진은 자사의 역량을 분출시켜 나라를 ‘일류 브랜드 국가’로 이끌겠다는, ‘세상을 바꾸는 개혁’을 지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