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폰을 독점 출시한 KT는 12월 한때 번호이동 가입자 점유율 57%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통신시장점유율이 SK텔레콤 50.6%, KT 31.3%, LGT가 18.1%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SK텔레콤 역시 2월 중순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모토로이를 출시하며 반격을 시작했지만, 시장 반응은 아직 미미하다. 출시 전 예약 판매기간 열흘 사이에 가입을 신청한 사람은 2만명 선. 지난 연말 KT는 아이폰 예약 판매 이틀 만에 2만7000명을 모았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이 차이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SK텔레콤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첨단 무선통신 사업에서 KT에 이은 2위 사업자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올 연말 가입자 수 5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될 만큼 빠르게 성장 중인 현실에서 SK텔레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클 수밖에 없다.
와이파이, 어찌 하오리까
일단 총력 대응 체제를 갖춘 SK텔레콤은 모토로이를 시작으로 올해에만 15종의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놓는다. 전성철 SK텔레콤 홍보2팀장은 “KT에 주도권을 잠시 빼앗겼을 뿐 되찾아올 여력은 충분하다. 충성도 높은 가입자들이 SK텔레콤의 스마트폰을 기다려온 만큼 머지않아 본래의 위상을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마케팅 역량도 집중하고 있다. 정상가 89만원의 모토로이를 일선 판매점에서는 1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막대한 보조금 덕분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둘러싼 통신 환경이 SK텔레콤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의 요체는 사용자들이 인터넷 접속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것. 김민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미래융합전략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되면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데이터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트래픽 증가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2007년 세계 최초로 아이폰을 출시한 미국 통신사 A·T의 경우 이후 무선트래픽이 50배나 증가해 골머리를 앓았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초고속 인터넷망에서 파생되는 와이파이(wi-fi ·wireless fidelity)를 활용하는 것이다. 유선망 말단에 무선접속장치(AP)를 설치하면 일정 반경 안에서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근거리통신망(LAN)이 생긴다. 와이파이다. 기존의 휴대전화 사용자들은 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네이트(SK텔레콤) 쇼(KT) 오즈(LGT) 등의 서비스에 접속해야만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와이파이에 접속해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OS를 갖췄다. 정리하면 와이파이 인프라, 곧 유선통신망 인프라가 튼튼한 통신 사업자가 스마트폰이 가져올 데이터 트래픽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에서 이 분야에 가장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업체는 KT다. 전국의 산간벽지 격오지(隔奧地)까지, KT의 초고속 인터넷이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게다가 KT는 1990년대부터 이 망을 활용해 스타벅스 등 전국 1만3000개의 다중이용시설에 AP를 설치하고 ‘쿡앤쇼 존’이라는 공중 와이파이 구역을 만들어왔다. KT에 가입한 스마트폰 이용자는 이 공간에서 무료로 데이터 통신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그동안 무선데이터 통신 기술 개발에 집중해온 SK텔레콤은 유선 인프라를 활용한 와이파이 시설을 현재 단 한 개도 갖고 있지 않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SK텔레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건 와이파이가 무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입자들이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면 이동통신사의 무선 인터넷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쪽을 무시해온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