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1월28일(현지시각) 오후 스위스 다보스 콩그레스홀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전체회의에 참석해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다보스 사람(Dabos Man)’이라는 말이 있다. 다보스포럼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시사하는 이 말은 결국 매년 이 포럼에는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만 모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돈과 힘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다보스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유자본주의(free capitalism)에 대한 신념이다.
사실 다보스포럼은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각의 흐름 위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포럼이 탈규제와 민영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네트워크의 장’이라는 다보스포럼의 출발을 되짚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 테이블을 가능케 하고 성공으로 이끈 것은 제창자 클라우스 슈밥 교수의 뛰어난 전략 구상이었다. 그는 우선 세계적인 금융자본가들을 다보스에 끌어들였다. 그러자 이들을 만나 투자를 받기 원하는 산업자본가들이 따라 나왔고, 이들이 모이자 미디어가 관심을 갖게 됐고, 주목받기 원하는 정치가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인맥 구축과 아이디어 교환의 장이라는 특징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 1만8000유로라는 등록비를 내면서 해마다 한자리에 모이는 이유고, 지난 40년간 다보스포럼이 성장을 거듭해온 배경이다.
그러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러한 기본 틀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시장과 기업, 이윤을 우선시하고 빈곤 퇴치나 복지는 그 다음 이슈로 생각했던 담론 구조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한 모습의 자본주의가 과연 옳은가,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국가의 감독과 규제가 배제된 시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가시화되면서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논의도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디자인하고, 다시 구축하자(Re-think, Re-design, Re-build)’로 모아졌다.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하자를 다시 검토하고 재설계해 문제점을 최소화해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 이른바 ‘3R’의 정신이다. 이를 위한 여섯 가지 하부 주제, 즉 새로운 가치를 가진 프레임워크 설정, 지속 가능한 사회 유지, 사회복지체계의 강화, 글로벌 리스크와 시스템 실패의 관리, 인간안보 향상, 이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집행할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방안 등은 모두 다보스포럼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 인도의 확연한 부상
물론 전반적인 분위기는 2009년 포럼의 암울함과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전대미문의 금융위기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지난해의 모습이었다면,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열린 올해의 포럼은 차분하게 문제의 근본을 들여다보겠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지난해 대거 불참했던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바클레이스은행 등 세계적인 투자금융회사의 거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차이가 있었다.
특히 지난해 포럼의 위기라는 말까지 낳았던 아랍-이스라엘 분쟁 같은 민감한 국제정치 이슈들은 대부분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과도한 정치적 쟁점이 포럼의 본래 목적인 경제문제에 대한 초점을 흐릴 수 있다는 주최 측의 염려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1년 전 포럼을 휩쓸었던 미국 책임론도 상당부분 사그라졌고, 대신 중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중국 역시 리커창 부총리와 주민 인민은행 부총재 등 차세대 주자들이 대거 참석해 이러한 관심에 부응하는 모습이었다. 가디언지(誌)의 한 기자가 이를 두고 “중국 관련 세션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지만 미국이나 유럽 관련 토론에는 빈자리가 많았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중국과 함께 인도의 부상도 눈에 띄었다. 인도는 총리를 제외하고는 경제 관련 내각 구성원 전원이 참석한 듯했다. 브라질 역시 각광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이 올해 처음 제정한 최우수정치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무는 미국과 유럽의 시대, 떠오르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의 시대라는 이른바 ‘세력전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