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물컵을 보고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이를 ‘프레이밍 효과’라고 한다.
심리학에서 프레이밍 효과를 설명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병에 걸려 수술을 앞둔 환자가 의사에게 생존가능성을 질문했다. 의사가 “지금까지 이 수술을 받은 환자 100명 중 70명이 수술 후 10년은 더 살았습니다”라고 얘기하면 환자는 아마도 비교적 안도하면서 기꺼이 수술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100명 중에서 30명이 10년 이내에 죽었습니다”라고 얘기하면 불안에 떨며 수술을 망설일 가능성이 높다. 철저히 따져보면 100명 중 70명이 산다는 것은 30명이 죽는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환자의 반응이 정반대로 바뀐다.
사실 이 프레이밍 효과는 심리학 분야에서 알려진 지 매우 오래됐다. 그리고 경제학이나 심리학 서적에서 기업들이 프레이밍 효과를 마케팅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한다. 앞서 소개한 의사와 환자의 사례는 수많은 심리학책뿐만 아니라 최근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라고 불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제학 책들과 뇌과학(neuroscience) 책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프레이밍 효과가 있다는 사실만 설명할 뿐 실제로 프레이밍 효과가 마케팅 분야에 의도적으로 사용된 사례를 소개하지는 않는다. 필자도 그런 사례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일단 짧은 시간 내 마무리 지어야 하는 TV 광고에서 이런 내용을 구구절절 전하기는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또 TV 광고는 청각효과보다 시각효과가 크기 때문에 미묘한 표현의 차이로는 시청자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화법이나 협상론 등의 분야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대화의 기술로 프레이밍 효과가 소개되곤 한다.
그런데 기업 활동 가운데 프레이밍 효과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영역은 놀랍게도 회계 분야다. 숫자를 다루는 영역인 회계 분야에서 설득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이밍 효과가 널리 사용된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지도 모른다. 프레이밍 효과가 자주 사용되는 영역은 기업이 여러 뉴스를 외부에 전달하는 ‘공시(公示)’다.
공시에서 프레이밍 효과가 활용되는 이유를 살펴보자. 프레이밍 효과 중에 숫자 그 자체와 퍼센트로 표현한 숫자가 가져오는 효과의 차이점에 대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100명 중 70명은 수술 후 10년을 더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70%의 사람들이 수술 후 10년을 더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큰 차이를 가져온다. 숫자 그 자체를 들은 사람들이 퍼센트로 표현한 숫자를 들은 사람보다 더 강한 인상을 갖는다. 즉 긍정적 뉴스라면 뉴스를 들은 사람이 더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고 반대로 부정적 뉴스라면 더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심리학자 폴 슬로빅(Paul Slovic)은 이런 현상에 대해 “만약 당신이 열 명 중 한 명만 게임에서 이기거나 질 거라고 얘기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바로 그 한 사람이 누구일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 이기거나 진 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그 한 사람과 동일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게임을 한 사람 중 10%의 사람이 승자가 될 것이다”라고 얘기하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게임에서 승리할 확률이 낮다고 느끼게 된다.
보다 구체적인 예는 기미히코 야마기시(Kimihiko Yamagishi)의 연구에서 나타난다. 그는 사망자 1만 명 가운데 1286명이 암으로 죽는다는 자료를 사람들에게 보여준 후 암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인지 적게 했다. 이때 사람들은 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24%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퍼센트로 같은 내용을 설명했을 때(즉 1만 명 중 12.86%의 사람들이 암으로 죽는다고 설명했을 때) 사람들은 확률이 13%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암의 위험성을 상당히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다. 24%와 13%의 차이는 매우 크다. 보통 사람의 인지과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공시에 활용되는 프레이밍 효과
기업들은 뉴스를 공시할 때 이와 같은 심리학적 지식을 적극 이용한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공시를 하면서 공시 정보의 양과 빈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미래 이익에 대한 예측치 공시를 보자.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반 미국의 기업들은 연간 약 3000개 이상의 이익 예측치를 공시했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공시들이 있을 것이므로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이익 예측치 공시는 대략 (1)‘우리 회사의 올해 주당순이익은 2달러 정도로 예상된다’는 형식의 구체적 수치(point)를 주는 공시와 (2)‘1.7에서 2.3달러 사이로 예상된다’는 형식의 범위(range)를 주는 공시 (3)‘최소(최대) 2달러 정도일 것이다’는 최솟값이나 최댓값을 주는 공시 (4)‘이익이 상당히 증가할 것이다’ 또는 ‘형편이 어려우니 이익이 감소할 것이다’는 식으로 구체적 수치 없이 방향(qualitative statement)만 알려주는 공시 등 4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4가지 형식 중 (1)의 구체적 공시가 약 20% 정도며 (2)가 약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통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기업들은 회사에 유리한 뉴스를 공시할 때 (1)의 형태를 적극 활용한다. 반대로 회사에 불리한 뉴스를 공시할 때는 (1)보다는 (2)나 (3), (4)의 형태를 많이 쓴다. 즉 부정적인 뉴스를 자발적으로 공시하기는 하지만 뉴스를 정확하게 공시하지 않고 애매하게 포장해서 공시 시점에 부정적 효과가 주식가격에 반영되는 정도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공시 내용에 포함된 부정적인 뉴스가 이익에 미치는 정도가 클수록 공시의 형태가 덜 구체적이다. 또 이익 예측치를 공시할 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든지 ‘이익은 비록 적지만 다른 지표들은 좋다’는 식으로 이익이 적은 이유를 희석할 수 있는 다른 정보를 함께 공시한다. 주의가 분산되도록 해서 이익 예측치 공시가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유리한 뉴스를 공시할 때보다 불리한 뉴스를 공시할 때 정보량이 늘어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시되는 정보량이 증가할 때 공시의 신뢰성도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