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지인이 8000만~1억 원 선에서 수입차를 구입하고 싶은데 어떤 차가 좋겠느냐고 필자에게 물어온 일이 있다. 차의 쓰임새나 운전자의 나이, 성향 등에 따라 권하는 차종은 달라지겠지만 추천하고 싶은 자동차 브랜드만큼은 극히 한정적이다. 특히 프리미엄급 수입차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세계 고급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양대 산맥이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최근에 아우디나 렉서스 등이 바짝 뒤를 쫓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두 거두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 고급차 시장에서도 두 업체는 서로 치고받으며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벤츠와 BMW는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이자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차를 만들면서 추구하는 철학이 서로 다르다.
벤츠는 최고의 품격과 안전, 내구성을 목표로 차를 만든다. 벤츠의 엔지니어들은 100만㎞를 달려도 끄떡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첨단 전자장비나 최신 기술도 검증에 검증을 거친 뒤 도입해 경쟁사보다 늦을 때가 있다. 때론 이것이 독이 돼 시대에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엔 실수를 줄여 소비자로 하여금 벤츠를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이에 반해 BMW는 스포티한 고성능 세단의 ‘달리는 즐거움’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자로 잰 듯 정확한 핸들링으로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차를 움직이고, 같은 크기의 엔진이라도 최대한 출력을 뽑아내 주행성능을 높인다. 첨단 기술 도입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적이며 혁신적이다. 너무 앞질러 가려다 간혹 시행착오도 겪지만 결국엔 목표에 도달해 소비자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는다.
두 브랜드는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만큼 선호하는 소비층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평균적으로 벤츠는 품격을 중시하고 안전을 원하는 40대 이상의 성공한 사람들이 선택한다면, BMW는 상대적으로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드라이빙을 즐기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젊은 층에서 선호한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들어 벤츠가 역동적인 드라이브와 혁신적인 기술 및 디자인 접목을 고민하고, 반대로 BMW는 좀 더 고급스럽고 품격 높은 차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든다’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양사가 운명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정면승부를 벌일 날이 또 한 번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과거를 살펴봐도 양사의 치열한 경쟁은 운명적인 부분이 있다. 벤츠와 BMW의 화려한 자동차 역사는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동시에 시작된다.
육지와 바다, 하늘에서 최고를 열망하는 메르세데스-벤츠
1883년 10월 카를 벤츠(Carl Benz)는 남독일의 작은 도시 만하임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 ‘벤츠·시에(Benz · Cie)’를 설립하고 1893년 앞바퀴 방향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빅토리아’를 처음 세상에 내놓는다. 휘발유 엔진을 장착한 이 차는 1900년까지 매년 600대씩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카를 벤츠보다 열 살 위였던 경쟁 상대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1886년 ‘말 없는 마차’라는 이름의 모터 장착 틀을 개발하고 4년 뒤 DMG(Diamler Motoren Gesellschaft)를 설립해 연간 96대의 자동차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1902년 DMG는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메르세데스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스페인어로 ‘우아함’을 뜻하는 메르세데스를 차 이름으로 쓴 것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00년 DMG의 오스트리아 판매대리인이자 레이싱 드라이버였던 에밀 옐리네크(Emil Jellinek)는 본사에 ‘나는 애벌레가 아니라 나비를 원한다’며 보다 빠르고 진보된 차동차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고민하던 DMG는 천재 디자이너 빌헬름 마이바흐(Wihelm Maybach)에게 새로운 자동차 개발을 맡겼고, 그는 저중심 압축 프레임, 강력한 엔진, 벌집 모양의 라디에이터를 갖춘 최초의 현대식 차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