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한국경제 위협하는 보호주의 두 얼굴

겉으론 공정·자유무역, 실제론 자국 이익 챙기기

  • 홍석빈│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hsblys@dreamwiz.com│

    입력2009-04-09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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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공정무역의 옷을 입고 자유무역을 부르짖지만 그 이면을 보면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다. 일본 EU 중국도 마찬가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마다 자국 보호에 나섰다. 우리 경제와 기업의 활로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위기와 보호주의가 기회와 자유주의의 길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금융발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조짐이 완연한 가운데 위기의 전개 양상은 국가 간 교역부문에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세계 수입수요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무역에서 성장세가 꺾이자 각국은 자국 몫의 파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결과 국제 통상거래에서 두드러진 현상이 최근 들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보호무역조치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전직하하면서 씨티그룹, AIG 등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파산위기에 몰렸다. 11월 들어서는 금융부문의 신용경색 위기가 실물부문으로 전이돼 미국 자동차 ‘Big3(포드·GM·크라이슬러)’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위기가 본격화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기존 통상정책의 기조를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상징적인 조치를 하나 취했다.

    공공부문에서 정부조달 물품에 대해 자국산 물품의 의무 사용을 강제하는 소위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이 그것이다. 이 조치는 지난 수십년간 자유무역의 혜택을 받아오던 세계 경제에 대공황 당시 무역전쟁의 기억을 상기시켜주었다. 당시 자국 산업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취한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들은 이른바 인근 궁핍화(Beggar-my-neighbor) 효과를 유발, 국가 간 무역전쟁을 유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국을 맞는다.

    꼭 이런 어두운 기억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자유무역을 통한 자국 경제의 성장과 그 혜택을 입어왔던 각국은 세계 교역의 보호주의화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컸다. 이에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권역별 20개 대표 국가의 정상회담(G-20)이 11월15일 워싱턴에서 열렸다. 여기서 각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의 조속한 합의 도출에 힘쓰고, 향후 12개월 동안 어떠한 무역장벽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임을 공식 천명했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와 인도가 각각 수입 자동차 및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 인상조치를 취하고, 이에 대응해 다른 나라들이 연이은 무역규제 조치들을 쏟아내면서 G-20의 굳은 맹세는 말뿐인 합의에 그치고 말았다. 당초 자유무역의 수호천사 역할을 자임하려던 유럽연합(EU) 또한 프랑스의 자동차산업 지원을 필두로 연이은 보호무역 조치들을 발동함으로써 보호무역주의의 서막을 올리는 데 가세했다. 이처럼 실물 부문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전염되고 있는 초기 각국의 정책공조는 실패한 상황이다.



    되풀이되는 과오

    기실 국제 통상 환경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과도 같은 곳이다. 국익 차원의 명분이라면 말 바꾸기가 뭐 대수냐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사인(私人)도 아니고 지명도와 책임 있는 대표 국가들 정상 간의 합의조차 이토록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세계 경제위기의 심각성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과거 세계대전 발발 원인을 파시즘, 나치즘 등 이데올로기적 대결에서 찾는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야 그랬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더 깊은 원인은 정치군사적인 면보다도 경제사회적인 면에 있었다.

    19세기 말 세계는 급격한 생산력 팽창의 시대로 진입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가 상징하는 대량생산체제로의 이행이 본격화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생산·소비되는 상품의 양이 늘어났으니 경제적 후생 관점에서 볼 때는 인류가 이전보다 후생 수준 향상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국가도 개인도,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 빈자가 되는 어두운 상황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국가 간 빈부격차 심화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나라마다 처한 경제사회적 편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리카도(D. Ricardo)의 비교우위론에 기초한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각국은 생산의 비교우위가 있는 부문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교역을 통해 거래함으로써 경제적 후생수준 향상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당시 세계 여러 나라 간에는 경제 발전 즉, 산업화의 단계가 상이했다. 이는 균형 잡히고 잘 안분된 비교우위 산업부문들이 각국에 골고루 퍼져 있지 못했었음을 의미한다.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부문들이 당시 선진국들에만 상대적으로 몰려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후발국들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외국 상품수입으로부터 자국 경쟁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적 규제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물량 자체를 제한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자국 기업에 다양한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자국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열을 올렸다. 소위 보호무역주의의 불길이 타오른 것이다.

    한국경제 위협하는 보호주의 두 얼굴
    세계 교역에서 보호주의는 시장 중심의 자율경쟁 구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우리 몸의 혈관이 막히듯 상품과 서비스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제약하게 되었다. 이에 선·후진국 할 것 없이 외국 기업의 활동과 상품 및 서비스 이동에 차별적인 제한이 경쟁적으로 가해졌고, 결국 이는 보호무역주의적 규제의 악순환 현상을 유발, 세계가 무역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미국 대공황기 수출 크게 줄어

    1930년 6월 미국의 스무트-할리(Smoot-Hawley Tariff Act)법으로 상징되는 외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역사상 최고 수준의 관세율(40%) 부과 조치는 이러한 무역전쟁의 대표 사례다. 후버 대통령이 서명한 이 고관세법에 따라 약 3200여 개 품목의 관세율이 기존보다 4배 이상 올랐다. 수입이 줄어들었다지만 수출은 더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의 수출은 1929년 55억달러에서 본격적 대공황기인 1933년에는 21억달러로 크게 줄어든다. 나머지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고 당시 후발 개도국이던 독일과 일본의 경제난이 가중되었다.

    전세계 수입수요가 줄어들자 수출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공장이 하나 둘 멈추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실업자가 늘어나 미국의 실업률은 1929년 6.7%이던 것이 1933년에는 26.1%에 이르게 된다. 이후 몇 년간 회복 조짐을 보이던 세계 경제는 1930년대 후반 들어 각국이 자국 산업과 일자리 보전 등을 위해 다시 무역장벽을 높이기 시작함에 따라 결국 세계경기의 동반 침체라는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등 후발 개도국들은 이러한 세계 경기 침체의 파고를 1930년대 후반에 맞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국가 간 빈부격차 심화와 성장의 한계를 참지 못한 나머지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극우 이데올로기의 갑옷을 입고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종착역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학습한 인류이기에 지금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낼 것으로 기대하나 경제위기의 진행 양상은 과거의 교훈에도 반복되는 상황이다.

    2월 무역흑자는 수입감소 탓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세계 교역 규모가 올해 4~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올 1월 들어 교역 규모가 전년 대비 2.1~2.8% 감소할 것으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이렇게 되면 1975년에 있었던 1.9% 감소 이래 최대 폭의 교역 위축을 맞이하는 셈이다. WTO가 추정한 2008년 세계 교역 규모(상품 및 서비스)가 약 19조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올해 4000억~5000억달러의 교역 감소가 예상된다는 의미다.

    더욱이 WTO가 매년 발표하는 국제무역통계에 따르면 2007년 세계무역성장률은 2006년의 8.5%에서 6%로 떨어졌다. 경기 침체 본격화에 따른 전세계 수입수요의 급격한 감소를 반영할 경우 지난해 무역성장률은 2%, 그리고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문제는 현재의 세계경기 하강 속도가 이러한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데 있다. 결국 전세계 수입수요가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우리 수출산업 시장도 그만큼 더 축소될 우려가 커졌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수출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우리나라 교역의존도는 76%로 중국 64%, 일본 31%, 미국 22%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수출이 내수보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교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지금과 같은 급격한 통상환경 변화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올 1월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가 2월 들어 다시 33억달러 흑자로 돌아서긴 했지만, 수출보다 큰 폭의 수입 감소와 조업일수 증가 등에 따른 숫자놀음 비슷한 상황이어서 아직 반전을 기대하기엔 이르다.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증가율이 지속 하락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와 경기부양을 위해 연일 자국산 제품 우선 의무 구매 등 보호주의적 무역규제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 산업인 자동차시장만 보더라도 중동을 제외하고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남미 등 대부분의 시장에서 수출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을 보자. 미국시장은 지난 1월 수출입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18%나 감소했다. 소비심리 또한 악화돼 컨퍼런스 보드(CB·미국의 대표적 경제조사기관)가 발표한 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37.7로, 1967년 지수 산정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4/4분기까지 약 6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가계의 자산 손실은 지금도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가계의 소비를 둔화시켜 향후 수입수요를 더 감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유럽연합 주요 회원국들과 일본의 수입수요도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등 신흥경제권 국가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우선 중국은 2008년 우리 전체 수출에서 21.7%를 차지하는 최대의 수출대상국이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수입이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여 우리 경제에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