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위를 위한 발효유, 블루오션을 열다

한국야쿠르트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6-21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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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를 위한 발효유, 블루오션을 열다
    “유산균 음료인가? 약인가?”

    2000년 7월 31일 한국야쿠르트가 신제품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한 일간지 기사의 첫 문장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란 위염, 위궤양, 위선암, 위림프종 등을 유발하는 세균이다. 술잔을 돌려 마시거나 찌개 등을 함께 나눠 먹는 습관 때문에 한국인의 70%가 헬리코박터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2000년 이름도 생소한 이 세균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유산균 음료를 출시했다.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은 출시 2주 만에 하루 30만 개씩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고 10여 년 동안 하루 70만 개씩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윌이 유산균 업계의 전설적인 메가 히트 브랜드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시대적 배경과 맞아떨어진 출시

    브랜드 윌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시장 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부터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육류 소비가 많아졌고 변비라는 질병이 일반화됐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왜 세균을 돈 주고 사 먹느냐”며 유산균 음료를 믿지 않던 사람들도 1990년대 들어 유산균 음료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산균 음료 기능은 장 건강과 변비 예방 위주였다. 1995년 고급 발효유시장의 문이 열렸지만, 그 역시 장 건강 위주였다.



    2000년 출시된 윌은 ‘발효유는 장에 좋다’는 상식을 깨고, 처음으로 장이 아닌 위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에 뛰어들기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

    윌과 같이 개척정신을 발휘한 아이템이 시장에서 성공했을 때, 그 성과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과일, 채소 등 몸에 좋은 식품으로 화장품을 만든 화장품 브랜드 스킨푸드나, 진짜 바나나우유는 본래 노란 게 아니라 하얗다는 개념을 도입해 ‘하얀 바나나우유’ 시장을 연 매일유업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등도 마찬가지다.

    한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1982년 처음 발견되었지만 이후 국내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1976년 세워진 중앙연구소는 30여 년간 유산균과 기능성 음료 연구에 힘써 ‘한국야쿠르트 성장의 원동력’이라고도 불린다. 그 연구소에서 아기 돼지의 설사를 막는 사료를 개발하던 중 우연히 헬리코박터균의 운동을 저해하는 항체를 발견했다.

    마침 1990년대 국내에서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높아진 것도 윌 출시와 맞아떨어진 호재였다. 1994년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부조직인 국제 암 연구기관(JARC)에서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하는 ‘확실한 발암인자’라고 선언했고 몇몇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나라는 맵고 짜게 먹는 식습관 때문에 이 균의 서식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1998년 우리나라 성인의 사망원인 중 위암이 가장 비중이 큰 것으로 발표됐는데 위암의 주요 발병 원인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라는 사실이 덩달아 보도됐다.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에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유산균에 대한 관심 및 수요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야쿠르트 이정열 마케팅 팀장은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시대가 받아들이지 않아 성공 못하는 브랜드도 많다. 그런데 윌의 성공에는 시대적 배경과 기술적 밑바탕이 딱 맞아떨어졌다. 브랜드로서 아주 운이 좋았다”라고 평했다.

    ‘게부랄티’ 떠오르게 하는 네모 용기

    윌은 물론 기능을 중시하는 기능성 음료지만, 기본적으로 맛 역시 중요하다.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윌’이 음료로서 어떤 맛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한국야쿠르트는 당시 서울 광화문 등지 고깃집에서 누룽지맛 사탕이 유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윌의 주요 타깃인 40~50대가 달달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는 힌트를 얻은 것. 또한 위염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끝에 속이 쓰릴 때 시큼한 맛이 넘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속을 다스릴 때 자주 쓰는 매실, 배의 맛을 넣어 상큼하면서도 누룽지맛과 유사하게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을 만들었다.

    윌은 어른 손가락 하나 높이의 사각 용기에 담겨 있다. 국내 유산균 음료 중 처음으로 사각형 용기를 택한 것. 여기에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팀장의 얘기다.

    “출시 전에는 삼각형, 사각형, 요구르트병 등 다양한 용기 후보 샘플이 있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게브랄티’를 자주 봤거든요. 샘플 중 갈색 사각형 병은 게브랄티와 매우 비슷한 거예요. 1970년대를 살았던 한국 사람들은 게브랄티를 다 보약으로 알고 있어요. 어려서 게브랄티를 본 사람들이 윌이 출시된 2000년대에는 40대 이상중장년층이 우리 제품의 주요 타깃이 된 거죠. 그 세대가 이 네모난 용기에 든 음료를 한번쯤 먹어보고 싶어 할 거라 확신했어요.”

    당시 생산 라인에서는 처음 네모난 용기를 시도하는 것이라 불만이 많았지만 결국 사각형의 용기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줘 많은 인기를 얻었다.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이라는 브랜드 작명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 브랜드명은 일단 ‘위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윌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영문으로 ‘will’은 의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유언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민 끝에 ‘위를 위한 발효유 윌’이라는 브랜드명을 정했지만 당시 식품 판매 허가를 내주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위를 위한 발효유 윌이라고 하면 위장약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윌’이라는 의미에서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이라는 브랜드명을 확정했다.

    위를 위한 발효유, 블루오션을 열다

    1982년 세계 최초로 헬리코박터균 항체를 발견한 배리 마셜 박사.

    하지만 발음도 어려운 ‘헬리코박터균’을 제품명에 넣고 나니 소비자가 쉽게 인지하지 못할까봐 우려가 많았다. 실제 브랜드 이름만 듣고 이 제품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들어 있다고 오해하는 고객이 많았다. 언론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제품을 끊겠다며 화내는 고객들도 있었다. 이에 한국야쿠르트는 본사 직원들을 전국 판매점에 파견해 야쿠르트 아줌마들에게 헬리코박터균이란 무엇인지부터 교육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려운 이름과 생소한 개념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해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이 팀장의 이야기다.

    “교육을 나갔는데, 당시 한 나이 지긋하신 ‘야쿠르트 여사님’께서 ‘그렇게 설명하면 너무 어려워. 그냥 헬리콥터균이라고 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프로펠러를 쉴 새 없이 돌리는 헬리콥터처럼 나선형 세균이 몸속을 파고 들어가면 위암에 걸린다는 게 실제 이 균의 개념이거든요. 그 이후로 ‘윌을 먹으면 헬리콥터균이 위에 안 좋은 세균을 침투시키는 걸 막아요’라고 윌의 기능을 쉬운 말로 설명했고, 이게 퍼져나가면서 이제는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이 헬리코박터균의 개념을 알게 됐습니다.”

    광고 모델 마셜 박사 노벨상 수상 등 호재 겹쳐

    새로운 개념의 유산균 음료가 퍼져나가면서 에피소드도 많다. 일례로 경인지역에서 “윌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난 적도 있다. 이 팀장은 “딸만 셋을 둔 한 고객이 임신 중이었는데 야쿠르트 아줌마가 윌을 권하면서 ‘이걸 먹으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그분이 아들을 낳았고 이 사례에 ‘윌을 먹으면 몸이 알칼리화돼서 아들 낳는다’는 제법 그럴듯한 이론까지 덧붙어 소문이 퍼졌다. 결국 회사 차원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이를 통해 윌의 인기가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윌의 성공 배경에는 이런저런 운 좋은 사건이 많았다”라며 웃었다.

    ‘윌’의 성공에는 한국야쿠르트 특유의 탄탄한 방문판매 조직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거미줄처럼 형성된 1만3500여 명의 야쿠르트아줌마 군단이 직접 고객을 만나면서 제품의 효능을 알리는 것은 그 어떤 판촉활동보다 위력이 컸다. 한국야쿠르트 특유의 ‘여사님 유통망’은 특히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한국야쿠르트는 상대적으로 고가인 윌의 판매가 저조해질까 우려했다. 실제 경제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신문, 우유, 학습지 등의 소비를 줄인다. 하지만 한국야쿠르트는 견본 제품을 늘려 단골 고객들에게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한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단골 고객들에게 “경제가 힘들어도 몸이 건강해야지”하며 자비를 털어 한 달간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투자 덕분에 이후 윌의 매출은 오히려 전년보다 늘어났다.

    윌의 성공에는 35년 가까이 축적된 한국야쿠르트의 마케팅 능력도 한몫했다. 윌은 식품으로는 드물게 출시 이전부터 제품 개발에 대한 광고와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기존 제품들에 비해 2배 이상의 광고비를 투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면서 윌을 출시 할 때 윌 홍보를 이끌었던 김혁수 당시 홍보실 광고팀장과 현경택 당시 홍보담당 이사는 이후 각각 한국야쿠르트 부사장과 파스퇴르유업 사장으로 승진했다. 창립 40주년 동안 단 4명의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할 정도로 보수적인 조직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승진 인사를 단행한 데는 윌의 성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헬리코박터균 배양에 성공한 호주의 배리 마셜 박사를 앞세운 광고는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이 광고는 대표적인 마케팅 법칙 중 하나인 ‘보증 효과의 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쉽게 말해 전문가의 권위를 파는 것인데,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사람이나 전문가를 내세워 이미 소비자에게 검증된 사실을 제품으로 전이시켜 신뢰도를 높이는 것.

    한국야쿠르트는 마셜 박사를 광고 모델로 섭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쏟았다. 홍보, 마케팅 담당 임원이 여러 차례 호주를 드나들며 모델이 돼달라고 설득한 것은 기본. 그에게 “온 가족 다 데리고 한국 여행을 오라”고 제안해 풀코스 관광을 시켜줬고 그만을 위한 연구 포럼을 여는 등 백방으로 지원했다.

    위를 위한 발효유, 블루오션을 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항체를 개발해 윌의 탄생을 이끈 한국야쿠르트 중앙연구소.

    2003년 광고 계약 체결 당시 마셜 박사는 광고모델로서 SA(스페셜에이)급, 즉 여자 연예인 중 톱 클래스 모델 수준으로 계약금을 받았다. 이를 통해 제품의 공신력을 높였을뿐더러 2005년 마셜 박사가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윌의 판매도 더욱 늘어났다.

    이와 동시에 한국야쿠르트는 기능성 음료로서 지속적으로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나영 서울대병원 교수팀이 진행한 임상실험에서 위염환자에게 항생제와 함께 윌을 투여하자 단순히 항생제를 투여한 경우에 비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억제가 8.8% 정도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이밖에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등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원재료는 바꾸면서 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을 백방으로 형성했다.

    영원한 브랜드는 없다. 특히 식료품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는 익숙한 것을 주로 찾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 10년 가까이 승승장구하던 윌에도 위기는 있었다. 2008년 윌의 소비 성장세가 주춤했다. 윌 판매량이 전년 대비 하루 평균 5만 개 감소한 것.

    윌은 제2의 도약을 모색해야 했다. 소비자 전수 조사를 통해 당시 윌 소비자 80%가 남성이고, 여성은 윌의 칼로리가 높고 맛이 텁텁하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야쿠르트는 여성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배와 매실 대신 기능성 과일인 석류와 복분자를 함유한 색다른 맛의 ‘윌 석류·분자’를 출시했다. 이를 통해 2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발효유를 대표하는 메가 브랜드가 되기 위해, 윌은 기존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변화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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