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박근혜 정부 4배 추경 편성
에너지 수입 증가로 경상수지 적자폭 확대
기업하기 좋은 환경 3요소 :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법인세 인하
수도권 공장 설립 제한은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조영철 기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 비서실장으로 환란 극복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국무총리실장(현 국무조정실장)으로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데 기여한 바 있는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에게 총체적 경제위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해법을 들었다.
확장 재정, 경상수지에 부정적 영향
권 부회장은 재정건전성 악화와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 정책 실패가 지금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이라고 진단했다.“문재인 정부는 5년간 10번의 추경으로 154조 원을 편성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3.9배 많은 액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해야 했던 이명박 정부 때도 2회에 걸쳐 33조 원 추경 편성에 그쳤다. 재정 건전성을 신경 쓰지 않고 이전 정부(문재인 정부)가 선심성, 선거용으로 무분별하게 재정을 풀어 나눠준 것이 지금 재정수지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장래 수십 년이 걸린 문제를 5년 단임 대통령이 ‘탈원전’ 한다면서 정상적 절차도 밟지 않고 원전을 축소하는 바람에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게 된 점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국제유가가 크게 올라 에너지 수입 비용이 급등했다. 그로 인해 경상수지 악화가 이어졌다. 에너지 확보를 위해 다원화 정책을 펴야 할 상황에 (문재인 정부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원전 생태계를 무너뜨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권 부회장 얘기처럼 현재 고조되는 경제위기 원인의 상당 부분이 전임 정부의 실정에서 비롯됐을 수 있으나 코앞에 닥친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책무는 이제 막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져야 한다.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어떤 처방과 해법이 필요할까.
권 부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말처럼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3요소로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법인세 인하를 꼽았다.
올해 한국 경제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재정수지도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복지지출 확대와 사회보장성 급여 강화, 코로나19 대응 명목으로 역대급 추경을 편성한 앞선 정부의 무리한 확장 재정으로 재정건전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여기에 원재료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무역수지도 크게 악화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올 하반기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부채, 외환위기 때보다 4배 넘게 급증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환경이 더 나쁜가.“양상은 다르지만 지금의 경제 상황이 더 심각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대외채무 급등 등 대외건전성이 취약한 상태에서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 등 외부 충격이 가세하면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해 가용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면서 일어났다. 그에 비해 현재는 외환보유액이나 대외채무 구조, 글로벌 정책 공조 등을 고려했을 때 당장은 외환위기 가능성이 작다. 물론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악화하고 있어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외환위기 때는 가계와 정부 부채가 양호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가계와 정부 부채가 크게 늘었고 특히 정부 부채는 외환위기 당시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재정적자 폭을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현금 살포식 무분별한 재정 확대를 지양하고,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 집행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재정 운용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특정 분야의 재정지출 확대 법안을 발의할 때 재원 조달 방안까지 함께 제시하도록 의무화한 ‘페이고’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독일도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토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도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해 재정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 적자도 방치해선 안 될 문제다.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서는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야 한다. 우리 기업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같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값싸고 품질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앞선 정부에서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시간에 제한을 가했다.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각종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한 탓에 그 많은 규제를 준수하느라 기업들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그 결과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부진해지고 해외 기업 제품 수입은 증가하면서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온 우리 경제는 올 상반기 무역적자가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무역수지 적자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 고공 행진이 지속되면 무역수지 적자폭이 개선되기는커녕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권 부회장은 경상수지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돈 들이지 않고 성장률 높일 최고의 정책
3월 21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혜 인수위 대변인,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윤 대통령 당선인, 손경식 경총 회장, 최진식 중경련 회장, 구자열 무협 회장,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장 시급하게 제거할 규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부터 없애야 한다. 한국 기업은 자산 규모가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커지면 적용받는 차별 규제가 5개에서 127개로 증가한다.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은 엄청난 규제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은 경쟁자들에 비해 규모가 오히려 작다. 일례로 삼성전자 경쟁사는 애플인데, 삼성전자 시총이 339조 원 정도로 애플 2995조 원의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자동차 시총도 경쟁사 도요타의 8분의 1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경쟁자와 경쟁해야 하는데 우리 기업만 더 많은 규제를 하는 것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만 약화시킬 뿐이다”
권 부회장은 △공장 설립을 제한하는 수도권 규제 △상법 3% 의결권 제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지주회사 규제 등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꼽았다.
윤석열 정부가 ‘규제 개혁’ 일환으로 추진하는 ‘주 최장 52시간 근무 유연화’ 문제가 혼선을 빚었다. 어떻게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나.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시장 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공약한 사안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정과제로 일관되게 추진 의지를 피력했다. 산업구조가 디지털화하고, 근로 형태가 다양해진 만큼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적용할 수 있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산업 현장 의견을 고려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근로시간 문제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한다. 근로시간 유연화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노조 편향적 노동환경을 개선해 선진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임금을 인상할 때가 아니라 임금인상을 자제해 일자리를 지키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할 시점이다.”
권 부회장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전체 근로자 2800만 명 중 10%인 280만 명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연봉 1억 원 이상 귀족 노조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종사자, 농촌 근로자와 실업자 등 저소득 취약계층은 임금인상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며 “임금이 높아지면 근로자 간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가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으로 이어져 시장 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 경제력 집중도가 높을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현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에 비해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100대 기업 기준 매출과 자산 등 경제력 집중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2011년 58.1%였던 매출 집중도가 2020년 45.6%로 하락했고, 자산 집중도도 같은 기간 59.1%에서 50.6%로 떨어졌다. 경제력 집중 억제를 근거로 한 대기업 규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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