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현준의 G-zone’은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 영역을 중심으로 경제 이슈를 살펴봅니다.
6월 1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말입니다. 원 장관을 이토록, ‘정말 화나게’ 만든 것은 바로 ‘벌떼 입찰’입니다. 벌떼 입찰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를 낙찰받기 위해 건설사가 다수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습이 마치 벌떼가 달려드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벌떼 입찰이라고 칭합니다.
6월 1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벌떼 입찰에 대해 “불공정도 이런 불공정이 없다”고 썼다. [페이스북]
그렇다면 왜 건설사들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땅을 분양받으려 하는 걸까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공택지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됩니다. 분양받기만 한다면 기업으로선 큰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는 기회죠. 어느 정도냐고요. ‘억’ 소리를 넘어 ‘조’ 소리가 납니다. 앞선 페이스북 글에서 원 장관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호반건설이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를 대거 낙찰 받은 뒤 두 아들 회사에 양도해 아들들을 회사 사장으로 만들었습니다. 2013~2015년 벌어진 이 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서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했지만 두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는 분양이익만 1조3000억 원 이상을 벌었습니다.”
불과 2년 동안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는데, 부조리가 적발된 후 뱉어낸 돈은 얻은 이익의 5% 남짓에 불과합니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하지 않고는 배기기 힘든 수준이죠. 그러니 건설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듭니다.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면서까지 계열사를 하나라도 더 늘리려고 하고요. 공공택지는 추첨으로 공급되기에 참여자가 하나라도 더 늘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복권을 두 장 사면 당첨확률이 두 배 올라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당연히 폐해가 발생합니다. 애초 추첨제를 시행하는 이유가 공정한 경쟁을 위함인데, 취지가 무색해지죠. 택지가 불균형하게 공급되고요. 사실 추첨제 시행은 대기업의 택지 독식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큽니다. 경쟁 방식으로는 중견기업이 대기업을 이기기 어려우니 추첨을 통해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해주려 한 것이죠. 그런데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 대기업은 공정위의 규제가 엄격해 계열사를 늘리기 어렵습니다. 결국 5조 원 미만의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벌떼 입찰 방식을 통해 ‘역차별’ 효과를 누린 셈이죠. 지난해 8월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호반‧대방‧중흥‧우미‧제일 등 5개 건설사가 공공택지의 40%를 낙찰 받았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서 나온 결과라고 보긴 어렵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계열사를 운영하는 데엔 유지비용이 들죠. 아무리 페이퍼 컴퍼니라고 해도 마찬가지고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다트)을 보면 이들의 공시엔 다소 특이한 점이 눈에 띕니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자금 대여’라는 항목이 매우 많다는 거죠. 여기서 특수관계인이란 계열사를 의미합니다.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돈을 꿔줍니다. 이자율은 대부분 법정 이자율 4.6%에 맞추고요. 즉 벌떼 입찰을 위해 우후죽순으로 만든 계열사가 운영 자금이 달리니 모기업에 돈을 꾸는 현상임이 유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건설사의 빈번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자금대여’가 벌떼 입찰로 늘린 계열사로 인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사진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대방건설의 공시. [금융감독원]
이에 대해 지배구조 전문가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잦은 대출 제공은 불합리한 관행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한다”며 “실질적 내부거래라고 볼 수 있는데, 현행 규정상 법정 이자율(4.6%)보다 저리로 대출해주지만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어긴다 해도 규정 위반으로 발생한 차익에 따른 세금을 납부하면 끝”이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이러한 의혹에 대해 해당 건설사들은 일관적으로 “계열사들은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며 실제로 전문성‧인력을 갖췄다”고 소명합니다만 글쎄요.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국토교통부 현장조사에서 13곳의 페이퍼 컴퍼니가 적발됐고, 이들이 낙찰 받은 필지가 17곳에 이른다고 하니 의구심을 떨치기엔 다소 부족해 보이네요.
일련의 부조리에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소비자입니다. 기업의 비용은 고스란히 가격에 반영되니까요. 정부 당국이 벌떼 입찰을 개선하겠다며 의지를 다지는 이유입니다. 6월 국토교통부는 벌떼 입찰 조사 대상을 10년 전인 2013년까지 넓힘과 동시에 위법이 드러난 업체엔 3년간 공공택지 청약 참여를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LH는 지난해 10월 ‘1사 1필지 제도(공공택지 입찰에서 모기업과 계열사를 통틀어 단 1개 회사만 응찰할 수 있는 제도)’를 본격 도입해 벌떼 입찰 방지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벌떼 입찰로 사세를 불린 건설사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입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벌떼 입찰이 현재 의혹의 중심이 되고 있는 건설사들의 사세를 불려준 ‘효자’임과 동시에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견 건설사들은 벌떼 입찰을 이용해 급성장하고, 오히려 자신이 대기업이 되기에 이르렀죠. 중흥그룹은 2015년, 호반그룹은 2017년, 대방그룹은 2020년 자산 5조 원을 넘겨 대기업이 됐습니다. 각자 연도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 건설업이 그룹 기반 사업이라는 것, 공공 택지 분양 수혜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박주근 대표는 “사세가 급격히 커진 중견건설업체들은 벌떼 입찰을 통해 성장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부조리가 대기업이 된 후 공정위의 본격적 감시를 받기 시작하면서 하나둘씩 밝혀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사자성어가 퍽 잘 어울리는 상황 같습니다. 아무쪼록 더는 부조리로 우는 무주택자가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을 전합니다.
“벌떼 입찰은 마치 ‘스테로이드’와 같다. 정상적 방법으로는 이루기 어려울 만큼 급속도로, 드라마틱한 ‘벌크업’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각종 부작용으로 결국 몸이 망가진다. 벌떼 입찰로 흥했다면, 이제 그로 인해 망가지는 순간도 올 것이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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