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6·25전쟁 유엔군 장병 잠든 유엔기념공원 가보셨나요?
6·25 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이 안장돼 있는 주묘역. [조영철 기자]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 한국전 유엔군 전몰용사를 영구히 추모하며. 이해인 수녀
6·25전쟁 때 공산군과 목숨 걸고 싸운 유엔군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했을까.
한반도에 남과 북이 각각의 정부를 수립한 지 올해로 꼭 7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반면 북한은 최빈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3년 넘게 한반도를 휩쓴 6·25전쟁은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다. 비슷한 조건에서 국가 재건에 나선 남과 북이 70년 만에 선진국과 최빈국으로 운명이 갈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계 유일 ‘유엔’ 기념묘지
유엔기념공원 입구. [조영철 기자]
유엔기념공원 앞 로터리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 [조영철 기자]
유엔기념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삼각형 모양의 추모관을 먼저 만나게 된다. 한국이 낳은 유명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것으로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전쟁의 참상, 사랑과 평화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 6·25전쟁과 유엔군, 유엔기념공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12분 분량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시작되자, 국제연합(UN)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유엔기를 앞세워 참전을 결의했다.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호주와 캐나다·뉴질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영연방 국가가 참전했고, 유럽에서 프랑스와 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그리스·튀르키예, 아시아에서 태국·필리핀, 남미의 콜롬비아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등 16개국에서 전투병을 지원했다. 덴마크와 인도,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스웨덴과 독일 등 6개국에서는 의료 지원을 했다. 22개국에서 유엔기를 앞세워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국제평화’라는 유엔 설립 기본 정신에 입각한 최초의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들은 공산군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함께 싸웠다.
11개국 2319명 유엔군 안장
1950년 10월 중공군 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되고, 유엔군 사상자가 속출하자 유엔군사령부는 1951년 4월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유엔군 묘지를 조성하고, 개성과 인천, 대전과 대구 등에 가매장돼 있던 전사자 유해를 옮겨왔다. 남구 대연동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은 6·25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 가매장돼 있던 유엔군 유해를 이송하기 가장 유리한 장소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최구식 부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6·25전쟁 당시에는 부산 수영구에 활주로가 있었다”며 “부산역과 부산항도 가까워 항공기와 기차, 배로 전국에서 유엔군 유해를 옮겨오기 가장 유리한 위치였기에 이곳에 유엔묘지가 들어서게 됐다”고 설명했다.6·25전쟁이 끝난 뒤 한국 정부는 유엔군 묘지가 설치된 13만4000㎡의 토지를 유엔에 기증했다. 유엔은 한국 정부와 체결한 협정에 따라 한동안 직접 묘지를 관리했다. 1974년 묘지를 관리하던 유엔 산하 기구가 철수한 이후로는 유엔묘지에 안장된 유엔군 소속 11개국 대표들로 구성된 국제관리위원회가 중심이 돼 관리해 오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현재 11개국 2319명의 유엔군이 안장돼 있다. 국가별로는 영국군이 890명으로 가장 많고, 튀르키예 462명, 캐나다 381명, 호주 281명, 네덜란드 122명, 프랑스 47명, 미국 40명, 뉴질랜드 32명, 남아프리카공화국 11명, 노르웨이 1명 순이다. 국적과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무명용사 15명도 안장돼 있다. 6·25전쟁 당시 카투사로 복무하다 전사한 37명의 한국인도 이곳에 안장돼 있다.
6·25전쟁 당시 전사한 유엔군은 4만898명에 달한다. 전사자 가운데 90% 가까이를 차지하는 미군은 대부분 전쟁이 끝난 뒤 본국으로 이송됐다. 최구식 문화해설사는 “나라마다 장례 풍습이 다른데, 속인주의를 택한 미국은 미군이 세계 어디에서 전사하든 본국으로 유해를 옮기려 하고, 속지주의를 택한 영국은 세계 어디든 싸우다 전사한 곳에 안장하는 풍습이 있다”고 설명했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4만89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조영철 기자]
유엔기념공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공원 정문에서 왼쪽 상단은 유엔기와 참전국 22개국의 국기, 그리고 태극기가 게양돼 있는 상징구역이다. 유엔기념공원을 공식 방문하는 국내외 인사 누구든 이곳에서 먼저 전몰장병에게 예를 갖춘다.
상징구역 아래에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전몰장병이 잠들어 있다. 호주와 캐나다·프랑스·네덜란드·튀르키예·영국·미국 등 7개국 묘역이 구분돼 조성돼 있고, 국가별 묘역에는 전사자의 묘 외에도 각국에서 제작한 기념비가 서 있다.
상징구역, 주묘역, 참전용사묘역
기념공원 하단에는 참전용사묘역이 조성돼 있다. 6·25전쟁에서 생환한 유엔군 가운데 사후에 전우들 곁에 머물기를 희망하는 참전용사를 위해 2015년 조성한 것이다.주묘역과 참전용사묘역 사이에는 생과 사를 가르는 ‘도은트 수로’가 가로질러 흐른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이 도은트 수로 왼쪽 주묘역에, 살아남은 이들은 오른쪽 참전용사묘역에 위치해 있다. 도은트는 6·25전쟁 때 17세 최연소로 사망한 유엔군 병사다.
주묘역과 참전용사묘역을 구분하는 도은트 수로. 6·25전쟁에서 생사가 갈린 것을 상징한다. 전사자는 왼쪽 주묘역에, 생환한 용사는 오른쪽 참전용사묘역에 안장돼 있다. [조영철 기자]
유엔군 위령탑 아래쪽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길. [조영철 기자]
유엔군 위령탑 내부 제2기념관에는 유가족이 보내온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사진이 진열돼 있다. [조영철 기자]
“그들이 자랑스럽다”
영국인 커플 해리와 멜리사가 8월 1일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일본 후쿠오카를 거쳐 부산에 왔다는 그들은 영국군 전몰장병 묘지와 유엔군 위령탑을 둘러봤다.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영국인 커플 해리와 멜리사. [조영철 기자]
주묘역 너머에 한국 정부가 건립한 유엔군 위령탑이 서 있다. [조영철 기자]
파란색 티셔츠와 흰색 모자를 맞춰 입은 부경대 UN서포터즈 대학생들도 참배했다. 김현서 UN서포터즈 부단장은 “부경대 UN서포터즈는 부경대학교 소속 단체로 매달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헌화하고 참배 편지 낭독, 묵념 등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부경대 UN서포터즈 대학생들이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을 참배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지금 우리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에서 사는 것은 세계 각국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한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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