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분양 굴욕 반년 만에 분위기 반전
의왕·광명 84㎡가 10억? 건설사 ‘배짱 분양’
건설업계 “가격 낮출 이유 없다”
열기는 한순간, 소비자 떠나면 침체 올 수도
부동산시장 침체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에 분양가는 연일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Gettyimage]
급속한 부동산시장 침체가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아파트 가격 하락이 갈수록 가속화된 것.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3.3㎡당 평균 일반분양가는 3829만 원이었다. 이른바 국민평형(전용면적 84㎡)으로 따지면 12억3600만~13억2000만 원 선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비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인근 단지 시세와 비교하면 저렴하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집값 하락세가 가파르다 보니 부정적 인식이 우세해졌다. 13억 원에 덜컥 계약했다가 인근 집값이 더 크게 떨어질 경우 결국 손해 보는 장사가 되리라는 논리였다.
이런 인식으로 분양은 결국 흥행하지 못했다. 1순위 당해지역(서울시 2년 이상 거주자) 청약 3695가구 모집에 1만3647명이 신청하면서 평균 경쟁률이 3.69대 1에 그쳤다. 소형 면적(29∼49㎡)의 경우 미계약이 발생하며 무순위 청약까지 진행했다.
이후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하면서 결국 완판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굴욕적 결과다. 시장에서는 그간 청약 시장의 불변 법칙으로 통했던 ‘서울 불패’가 막을 내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올림픽파크 포레온이 이 정도 성적이면 이제 국내 주택시장은 긴 침체기에 접어들 거라는 전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해 말 메머드급 재건축으로 각광받았던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은 고분양가 논란에 흥행에 실패했다. 사진은 3월 8일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뉴스1]
집값 떨어져도 분양가는 오른다
반년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국 기준 여전히 부동산시장이 가라앉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수도권 부동산시장 흐름은 올해 초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특히 청약 시장의 변화가 눈에 띈다.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의 1~2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49.5대 1을 기록했다. 1분기에도 57대 1로 높은 경쟁률을 보인 바 있다. 지난해 서울의 평균 경쟁률은 10.9대 1에 불과했다. 4월 영등포구 ‘영등포 자이디그니티(이하 영등포자이)’가 평균 198.76대 1을 기록하며 올해 기준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가 7월엔 동대문구 ‘청량리 롯데캐슬하이루체’가 바로 242.3대 1을 보이며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단지들은 단순히 높은 경쟁률 때문에 주목받은 게 아니다. 분양가가 비싸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수요자가 몰렸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예컨대 영등포자이 경우 국민평형 분양가가 11억 원대로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그것과 약 1억 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분양가가 높았다.
물론 영등포자이는 역세권에다가 학부모에게 인기가 높은 목동 학원가 인근에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입지를 갖췄다고 평가받았다. 반면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강남권에 위치한 데다가 1만 가구가 넘는 매머드 단지다. 영등포자이는 707가구 규모에 그친다. 차이를 고려하면 영등포자이의 분양가가 과하다는 말이 나왔음에도 신청자가 대거 몰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청량리 롯데캐슬하이루체도 마찬가지다. 이 단지의 3.3㎡당 분양가는 3300만 원으로 59㎡가 8억 원을 넘는다. 청량리 일대가 뉴타운 개발 등으로 천지개벽하고 있다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분양가가 높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 역시 올해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며 고분양가 논란을 무색하게 했다.
끝이 아니다. 서울 광진구 구의역 롯데캐슬이스트폴 국민평형 분양 가격은 최고 14억9000만 원에 책정됐다. 3.3㎡당 분양가는 4000만 원 수준으로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현상은 경기도에서도 나타났다. 5월 경기 의왕시 인덕원 퍼스비엘은 국민평형인 84㎡ 분양가를 최고 10억7900만 원에 내놓으면서 주목받았다. 경기 광명시 광명자이더샵포레나 역시 84㎡ 분양가를 최고 10억4000만 원에 책정했다. 일각에서는 고분양가를 넘어 ‘배짱 분양’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7월 분양한 서울 광진구 구의역 롯데캐슬이스트폴은 국민평형(전용면적 84㎡) 분양 가격으론 최고 14억9000만 원이 매겨졌다. 3.3㎡당 분양가가 4000만 원 수준으로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를 뛰어넘는다. 사진은 7월 21일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구의역 롯데캐슬 이스트폴’ 견본주택 현장. [뉴스1]
분양가 상승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물가 인상이다. 건설 원자잿값과 노무비, 토지비 등 상승으로 시공비가 증가해 분양가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건설사 주장이다. 주요 원자재 가격 인상 속도가 가파른 것은 사실이다. 철근의 경우 2021년 초만 해도 t당 70만 원대였지만 이제는 100만 원 안팎으로 치솟았다. 시멘트는 2021년 초 7만5000원에서 올해 7월 기준 12만 원대까지 올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비 지수 역시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주거용 건물 공사비 지수는 2021년 5월 130.1에서 올해 5월 150.3으로 올랐다.
규제 완화 + 수요 증가=가격 상승
최근 분양가 고공 행진 현상을 단순히 원가 인상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몇 달 만에 같은 평형이 수억 원 오를 만큼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선이 적잖다. 이는 건설업계와 시멘트업계의 갈등 과정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7월 말 ‘시멘트 가격 불안정이 공사 재료에 미치는 파급 효과’ 보고서를 내놨다. 100억 원 규모 건설 공사 기준으로 시멘트 가격이 7~10% 뛸 경우 주거용 건물 공사비는 4800만~6800만 원이 추가된다는 내용이 담겼다.반면 시멘트 업계는 시멘트 값이 아파트 분양가를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시멘트 가격은 2010년대에 9년 가까이 가격을 동결했지만 같은 기간 분양가는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며 건설업계를 비판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등으로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점과 분양가상한제가 풀리면서 사업 주체가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게 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대대적 부동산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놨다. 서울 강남 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고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에서도 해제한 게 대표 사례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잦아들고 국내는 정부의 입김 등으로 시중 대출금리가 낮아지면서 부동산 수요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이는 올림픽파크포레온에 대한 시장 평가를 봐도 알 수 있다. 7월 84㎡ 입주권이 19억 원 이상에 팔리면서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분양가가 13억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반년 만에 6억 원 이상 오른 셈이다.
집값이 떨어질 경우 높은 분양가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는 순식간에 사그라진 모습이다. 수요자는 이제 집값이 더 오를 거라고 전망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7월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7월 주택가격전망지수가 102를 기록하며 전월(100)보다 2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5월(111)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는 부동산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나타낸다. 기준치 100보다 높으면 1년 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반대 경우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이 지수는 지난해 5월 111을 기록한 이래 약 1년간 100 이하를 기록하다가 올해 6월에 100대를 회복했다.
건설사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근거로 ‘현재 분양가가 가장 싸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분양가를 높여도 수요자가 따라붙는 흐름을 만들려는 심산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들도 “수요가 늘어나니 가격을 올려 잡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분양가상한제가 풀려 가능해진 일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규제가 사라진 데다가 수요도 늘어난 상황이라 가격을 낮춰 잡을 이유가 없다”며 “시장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만 되면 초기 미분양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을 높인 뒤 사업을 진행하면서 차근차근 팔아가는 게 일반적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럴 때 무리해 집 사면 고생”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왕왕 나오고 있다. 주택시장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회복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국 부동산시장이 전반적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엔 여전히 적잖은 미분양 주택이 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 고가 분양 주택을 사들였다가 자칫 시장이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면 소비자만 손해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분양가상한제가 없어진 만큼 조합이나 건설사는 틈만 나면 분양가를 올리고 싶을 것”이라며 “청약 시장 분위기가 과열될수록 분양가는 점점 더 올라 고분양가 단계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아직 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았고, 2020~2021년 버블 역시 다 꺼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2008년에서 2011년 사이 집값 조정기에 고분양가 단지에 무리해서 들어간 구매자가 많은 고생을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너도나도 분양가를 올리다가 조합과 건설사가 되레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인기 분양 단지 경우 입지 등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그렇지 못한 단지라면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 가격을 낮게 잡으면 가치가 낮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가격을 시장 평균에 맞춰 높이면 미분양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기도에서 다소 과하게 분양가를 책정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다가 한순간에 열기가 식을 가능성도 있다”며 “소비자들이 분양가가 너무 높아졌다고 인식하게 되면 다시 미분양이 쌓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가 다시 살아나면서 시장이 침체 흐름으로 뒤바뀔 수 있다. 건설사들도 당장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시장을 길게 보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