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前 대법관이 만든 무죄 판례
추석은 지나야 1심 가닥 집힐 듯
[+영상] "이재명-김만배는 운명공동체"
“사전 질의서든, 대본이든, 추가 질문 관련 공지든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8월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홍정민 의원의 증언 일부다. 홍 의원은 2021년 12월 22일 언론 인터뷰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아느냐는 질문에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답변한 그 현장 상황이다. 당시 이 대표 발언 직후 국민의힘 측은 김 전 처장과 이 대표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검찰은 이 대표의 인터뷰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 지난해 9월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홍 의원의 증언은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알았는지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인터뷰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증언일 뿐 김 전 처장에 관한 내용은 없으나 재판에서 이 증언은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에 관한 질문을 사전에 고지 받지 못하고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 재판 향방을 가를 수도 있다. 인터뷰 전 이 대표가 관련 질문을 고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될 수도 있는 것. 검찰이 이 대표와 김 전 처장의 관계를 입증해도 재판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판례로 이재명 변호
이 대표 측은 2020년 7월 경기도지사 후보 TV토론회 관련 허위사실 공표죄 판례를 바탕으로 변론에 임하는 것으로 보인다.이 대표는 2018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이 대표는 이 재판 최종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까지만 해도 이 대표는 유죄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대표가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해 벌금 300만 원 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TV토론회는 준비된 연설과 달리 시간제한과 즉흥성 등으로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권순일 당시 대법관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주도적으로 무죄 취지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은 대장동 특혜 개발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8월 25일 재판에서 이 대표 측 변호인단은 김 전 처장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것이라는 언질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SBS 측 관계자는 이날 재판에서 “이 대표가 방송국에 도착한 후 작가가 전달한 대본에는 김 전 처장 사망에 대해 묻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대표 변호인단은 “실제로 앵커가 한 질문은 김 전 처장을 (이 대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인데 이것도 대본에 있었나”라고 물었다. SBS 관계자가 “없었다”고 답하자 변호인단은 “해당 앵커는 대부분 만들어서 질문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대본에 김 전 처장에 관한 내용이 있었고 앵커는 이를 이 대표에게 물었다”며 “이후 이 대표가 지휘하던 부하 직원 중 한 명일 뿐 관련 상황에 대해 정확히 모르겠다는 식으로 답변하자 앵커가 김 전 처장과의 관계를 물은 것 아니냐”고 맞섰다. 이에 SBS 관계자는 “앵커에게 정확히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인터뷰 흐름상 통상적으로) 그랬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측 증언도 엇갈려
SBS 측 증인 신문이 끝나며 재판은 잠시 휴정했다. 오후 재판부터 이 대표가 출석했다. 이 대표는 홍 의원 증언 때 입을 열었다. 홍 의원은 대선 때 이 대표의 대변인 중 한 명이었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선 이유도 홍 의원이 2021년 12월 22일 언론 인터뷰 당시 대변인 자격으로 이 대표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이 대표의 인터뷰 답변 준비를 직접 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홍 의원은 “대변인 쪽이 준비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전 처장 관련 질문이 있었다면 (대변인인 내가) 알았을 텐데, 들은 바가 없다”고 증언했다.
홍 의원이 지난해 1~2월경 작성한 사실확인서를 두고도 공방이 이어졌다. 사실확인서는 SBS 인터뷰 당시 김 전 처장에 관한 질문이 있을 것이라는 언질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홍 의원은 재판에서 “당대표(당시 송영길 대표)실 요청으로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정확히 누가 사실확인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는지 알려 달라”고 물었다. 홍 의원은 “보좌진이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며 “자세한 내용은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검찰은 “대변인단 구성, 인터뷰 당시의 상황 등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 전 처장 관련 질문에 대해서만 기억이 명확하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추궁은 이후에도 30분가량 이어졌다. 재판부가 재판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다며 이를 제지하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가 직접 나섰다. 이 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홍 의원에게 질의했다. 질의 내용은 12월 22일 당시 기억을 하나하나 상기시키는 듯 보였다. 이 대표는 “그 날(인터뷰 당일) 저와 현장에서 만났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후 이 대표는 “인터뷰 관련 대본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준 것을 본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다. 홍 의원은 “그런 기억이 따로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다음 증인은 대선 때 이 대표 수행실장을 맡았던 한준호 의원이었다. 한 의원은 홍 의원과 비슷한 증언을 이어갔다. 김 전 처장에 관한 질문이 적힌 대본이나 사전 질의서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두 의원의 답변은 비슷했지만 한 부분에서 달랐다. SBS 측 관계자와 홍 의원은 인터뷰 전에 이 대표가 SBS측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한 의원은 “원칙 상 그랬을(간담회를 가졌을) 리가 없다”며 “정해진 일정 외에 추가 일정은 참석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고 증언했다. 검찰 측은 “간담회를 두고도 두 증인의 증언이 다르다”며 “증인이 모르는 사이 질문지나 대본이 (이 대표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며 검찰의 문제 제기를 일축했다.
2021년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경기도지사)가 한준호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한 의원은 대통령선거 때 이 대표 수행실장을 맡았다. [뉴스1]
“이재명” 연호한 지지자들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됐다. 중간에 점심시간과 증인을 기다리느라 두 차례 휴정했다. 이는 그만큼 증인이 많아서였다. 이날 출석한 증인은 총 6명. 이 중 4명(SBS 관계자, KBS 관계자, 홍 의원, 한 의원)이 방송 인터뷰에 관한 증언을 했다. 재판부는 이날로 김문기 전 처장 관련 발언에 대한 심리를 마치겠다고 밝혔다.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은 크게 두 혐의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발언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2021년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이 대표가 백현동 용도변경 논란에 대해 허위로 해명했다는 의혹이다.
이 대표는 국정감사에서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백현동 해당 부지) 용도변경을 해준 것”이라고 답변했다. 2014년 성남시와 국토부가 주고받은 공문서에 따르면 국토부는 “백현동 용도변경은 성남시가 적의(適宜) 판단하라”고 답했다. 검찰은 이 문건 등을 근거로 이 대표의 국정감사 발언을 허위로 봤다.
백현동 관련 발언에 대한 심리는 9월 8일과 22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8월 25일 재판부는 “심리가 계속 길어지고 있다”며 “늦어도 9월 8일과 22일 (백현동) 관련 심의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그 뒤에는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연휴가 끝나야 1심 재판 선고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재판이 끝나자 몇몇의 방청인들이 이 대표를 따라 나갔다. 이 대표의 지지자들로 보였다. 이 대표에게 “힘내세요”라는 말을 건넨 후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법원 직원의 제지로 이들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1층 출입문 앞에도 지지자들이 모여 이 대표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보수 유튜버로 보이는 사람들도 이 대표의 이름을 연호했다. 다만 이 대표의 이름 중 두 번째 글자인 ‘재’를 ‘죄’로 바꿔서 불렀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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