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진술로 퍼즐 맞추는 檢
李도 쌍방울·北 연결고리는 인정
평화·민족 노선 꿰차려 했건만…
국제사회 이슈로 번지면 치명타
2018년 7월 10일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도]
검찰이 작성한 김 전 회장 공소장에 나온 사태의 큰 덩어리는 이렇다. 2018년 10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김 전 회장에게 스마트팜 사업 지원금 대납을 요청하면서 “(이를) 기회 삼아 대북사업을 진행하라”고 권했다. 2019년 7월에는 필리핀에서 북한 측 인사들과 김 전 회장이 남북 경제협력을 논하기 위해 만났다. 이 자리에서 북한 측 인사들은 “경기도가 이전부터 계속해 이재명 지사의 방북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3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제안 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이 문제를 이 전 부지사 등 경기도 관계자들과 상의했다. 같은 해 11월 27일부터 12월 18일에 걸쳐 쌍방울 임직원 수십 명을 동원해 300만 달러를 밀반출해 북측에 건넸다.
제3자 뇌물죄냐 직접 뇌물죄냐
실제로 김 전 회장과 이 대표는 만난 적이 없다. ‘김성태-이재명’의 연결고리가 쌍방울 사외이사 출신인 이 전 부지사다. 김 전 회장의 진술만으로는 이 대표가 대북 송금에 대해 알았는지를 입증하기 어렵다. 김 전 회장의 진술이 사실이라 해도 이 대표가 몰랐다면 처벌 대상에서는 비켜난다. 이 대표가 “검찰의 신작 소설”이라거나 “쌍방울 측의 대북 로비 사건”이라고 지칭하며 자신감을 내보였던 이유다.이 전 부지사는 구속 수감 뒤에도 쌍방울의 대북 송금과 이 대표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는 자필 입장문(2월 6일)까지 내고 “대북 송금이 필요한 경기도의 어떠한 대북 활동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김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입장을 바꿔 쌍방울의 대북 송금에 대해 ‘이재명 지사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이에 친명계(친이재명계) 핵심인 정성호 의원은 8월 7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술자리에서 통화 한 번 하고서 그걸 갖고 ‘보고했다,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얘기”라며 “검찰력을 동원해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을 바꾸려 시도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이 대표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다. 김 전 회장이 이 대표의 방북을 위한 돈을 북한에 대납했다면 제3자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형법 제130조에 규정된 제3자 뇌물죄는 당사자가 직접 금전적 이득을 취하지 않아도 처벌될 수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검찰 처지에서는 부정한 청탁의 내용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경기도가 쌍방울에 이권 제공을 약속했다면 최종 승인 대상자는 당시 도지사이던 이 대표가 된다.
직접 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아예 닫혀 있지는 않다. 이 전 부지사가 진술을 바꾸기 전에도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방북 비용 대납의 경우, 방북이 추진 및 성사됐다고 가정할 당시 도지사가 부담해야 할 돈을 직접 내준 셈이 될 수 있어 뇌물을 수수했다고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제3자를 통할 필요 없이 당사자에게 직접 귀속되는 이익이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신동아’ 3월호 ‘북한-쌍방울-이재명, 수상한 드라마 전말’)
이 전 부지사 진술을 확보한 검찰(수원지검)은 8월 23일 이 대표에게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소환은 8월 30일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검찰은 백현동 특혜 의혹과 병합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李의 대권 프로젝트와 ‘평화론’
북한과의 협력 사업은 이 대표의 ‘대권 프로젝트’와 무관치 않았다. 애당초 ‘평화부지사’라는 직함 자체가 또렷한 목적의식을 담고 있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 취임 직후 남경필 경기지사 당시 여·야 간 연합정치(연정)를 위해 마련한 연정부지사를 없애고 평화부지사를 신설했다. 전국의 광역자치단체를 통틀어 처음이다. 이 자리에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의 메신저로 북한을 방문한 이화영 전 의원이 기용됐다. 평화부지사 산하 평화협력국의 사무도 확대해 무게를 실었다. 당시 사정을 아는 민주당의 비명계(비이재명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민주당 내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대북·화해 노력에 대한 합의는 매우 두터웠다. 비단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아니어도, 민주당 지지 세력 전체에 형성된 두터운 합의였다. 이재명 경기지사 처지에서도, 물론 다른 광역단체장들도 유사한 입장을 갖긴 했는데 이 분위기에 숟가락을 얹어야 할 상황이었다. 대권을 노리는 처지에서는 (외교·안보와 관련한) 일종의 ‘내셔널 어젠다’가 필요했다. 남북관계에서도 주도권을 갖고 임한다는 시그널을 (지지층에) 주면서 어필해야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이는 북한에 유화적이고 일본에는 강경한 지지층의 정서와 무관치 않다. 말하자면 평화·민족 지향의 대외 노선이다. 이화영 전 부지사의 취임사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 등 평화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는 대목이 들어간 배경이다.
정작 문재인 정부 기간 북한발(發) 핵·미사일 위기는 해결되지 않았다. 외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분위기가 차츰 고조되는 분위기다. 대북송금 의혹이 아니더라도 이 대표에게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평화부지사 신설부터 정치적 패착이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선 비명계 인사는 “문재인 정부가 탈냉전 무드를 탄 마지막 정부라고 봐야 한다. 이제는 신(新)냉전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했다.
대북 송금 의혹은 비단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의회는 2019년 ‘오토 웜비어법’(일명 대북제재강화법)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북한 정권에 자금을 제공하는 제3국의 개인, 단체, 기관에 제재를 가하도록 했다. 명단에 오르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셈이 된다. 지금으로서는 북한에 돈을 보낸 김 전 회장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이 대표를 위해 김 전 회장이 돈을 보냈다고 판단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 대표가 블랙리스트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어도 관련자로 규정되는 효과를 낳는다. 유력 대권주자이자 제1야당 당수(黨首)를 둘러싼 국내 재판이 국제사회로까지 번질 수 있는 이유다.
신동아 9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