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권 10개월 정지, 총선 개입 차단설
“총선 與 압승해도 결국 尹과 차별화”
홍준표계, 안 만드나 못 만드나?
전략이되 약점 ‘우군 없는 정치’
마이웨이로 ‘2030+TK 연합군’ 구축?
[+영상] '도꼬다이' 정치인생 홍준표
독특해도 너무나 독특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정치 스타일 얘기다. 대중이 그리는 정치인 평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의 단어로만 정의하기에는 스펙트럼 또한 넓다.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는 곳마다 ‘홍준표’라는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특유의 직설 화법과 능청스러운 유머로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스타 정치인 중 하나다.
‘정치인 홍준표’를 수식하는 표현은 한둘이 아니다. 모래시계 검사, 저격수, 흙수저, 돈키호테, 독고다이, 독불장군, 홍럼프(홍준표+트럼프), 홍카콜라, 막말 정치인, 여성비하 마초 등. 대중의 애정이 듬뿍 담긴 애칭부터 비호감 뉘앙스가 짙은 수식어까지 다양하다. 좋게 본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당당함과 솔직함이다. 나쁘게 본다면 배려와 관용이 부족한 독선이다.
홍 시장의 꿈은 대권이다. 그는 2027년 21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2007년을 시작으로 2017년, 2022년에 이어 4번째 대선 도전이다. 홍 시장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해봤다. 정치 경력은 누구보다 화려하다. 장관을 못 해본 아쉬움은 기회가 없었다기보다 본인의 선택이었다. 남은 건 대통령이다. 차기 주자의 최대 숙제는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홍 시장은 친윤(親尹)이 아니다. 그렇다고 반윤(反尹)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묘한 줄타기를 이어왔다. ‘홍준표는 홍준표’라는 마이웨이다. 친윤·반윤이라는 이항대립 구도에서 벗어난 제3의 길이다. 홍 시장의 도전은 해피엔딩으로 끝날까.
2021년 9월 8일 ‘신동아’와 인터뷰 중에 생각에 잠긴 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지호영 기자]
‘긁어 부스럼’ 洪 좌충우돌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 엄혹한 1년을 보냈다. 전후좌우가 모두 적이었다. 대선 라이벌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 휴지기 없이 제1야당 대표로 복귀해 윤 대통령을 압박했다. 국민의힘 내부 사정도 비슷했다.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는 대선 이후 반윤(反尹) 정치인의 상징이 됐다. 경선 라이벌이던 홍 시장의 스탠스도 다소 애매했다. 때로는 친윤, 때로는 반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렇다고 ‘홍준표다움’을 버리지도 않았다. 30년에 이르는 정치 인생 내내 일관된 기조인 이른바 ‘독고다이’ 스타일이었다.홍 시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때로는 비판을, 때로는 지원사격에 나섰다. 윤 대통령을 정조준한 직접 비판을 자제하면서도 주요 현안이나 이슈 대응과 관련해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나 김기현 대표 체제를 향한 쓴소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광역단체장이 중앙정치와 거리를 둔 것과는 정반대였다.
최근에는 위기를 맞았다. ‘수해 골프’ 논란이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홍 시장의 부적절한 언행과 관련해 ‘당원권 정지 10개월’의 중징계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는 경남지사 시절이던 2015년 7월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으로 당원권 징계 정지를 받은 이후 8년 만이다. 다만 중앙당 윤리위가 소속 시도지사에게 징계를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해석은 분분하다. 여권 일각에서는 용산 대통령실이 그리는 차기 구도에서 홍 시장이 아웃된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과 마찬가지로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또 내년 4월 총선 TK(대구·경북) 공천 과정에서 홍 시장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실제 홍 시장은 “절대 우세 지역은 50% 물갈이 공천을 해온 것이 관례”라면서 TK 물갈이론을 강조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팬덤을 갖춘 스타 정치인인 홍 시장의 징계에 대통령실 의중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대권주자로서 상당한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도 “실권을 쥐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는 점에서 당내 핵심 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효과가 상실되는 정치적 타격”이라고 진단했다.
‘과하지욕(袴下之辱·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이라며 반발했던 홍 시장도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홍 시장은 “더 이상 이 문제로 갑론을박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징계를 수용하면서도 “나는 아직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고 뼈 있는 말을 내놓았다. 앞서 “주말에 테니스 치면 되고 골프 치면 안 된다는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나”라며 반발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바로 사과하는 게 홍준표 스타일”이라면서 3년이라는 시간이 향후 복수를 의미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치인이니까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홍 시장은 이후 “나를 잡범 취급하면서 제물로 삼아 수해 대비 부실과 각종 스캔들이 묻혔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문제는 홍 시장의 취약한 당내 기반이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점이다. 수해 골프 논란 당시 홍 시장에 대한 정치적 우군(友軍)은 사실상 없었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를 자처해 온 홍 시장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차기 대선을 고려한다면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홍 시장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도 민심에서는 앞섰지만 당심에서 열세인 탓에 패배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광역단체장은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데 홍 시장의 스타일은 자기 목소리가 강한 독자적 인물”이라면서 “차기 대선을 위해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6년 4월 11일 열린 제15대 총선 당시 서울 송파갑에서 승리를 거머쥔 홍준표 당선인. [동아DB]
30년 정치 인생 “장관 빼고 다 해봤다”
홍 시장은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30년에 이르는 정치 경력은 화려하다. 5선(15·16·17·18·21대) 중진으로 한나라당 원내대표·당대표를 지냈다. 이후 재선 경남지사를 거쳐 국정농단 탄핵사태 이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와 당대표를 지냈다. 20대 대선 이후에는 대구시장을 맡았다. 보수의 심장부인 TK라는 지역 기반을 겨냥한 전략적 행보다.홍 시장의 정치 인생은 “장관 빼고는 모두 다 해봤다”로 요약된다. 초선 의원 시절에는 모래시계 검사로 전국적 유명세를 치렀다.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미국 워싱턴에서 연구원으로 보내면서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호형호제의 인연을 맺었다. 3선 중진일 때는 포스트 MB를 꿈꾸며 서울시장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또 2007년 여름 ‘이명박 vs 박근혜’ 용호상박의 대결이 펼쳐진 17대 대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MB정부 시절에는 실세의 자리를 굳히며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당대표까지 역임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의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로 공석이 된 경남지사를 자리를 꿰찬 이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재선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진영 대선후보가 무주공산이 된 이후 사실상 ‘혈혈단신’으로 2017년 19대 대선에 나섰지만 패배했다. 선거자금 100% 보전 기준선인 득표율 15%도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지만 24%의 득표율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다. 이후 21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로 복귀한 이후 2022년 대선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패했다.
정치 인생 내내 위기가 되풀이됐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이는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입문한 정치 동기들과 뚜렷이 비교된다. 15대 총선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정치를 이끌어나갈 여야의 혜성들이 대거 등장한 기념비적 선거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도한 신한국당에서는 홍 시장을 비롯해 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천정배·추미애 전 법무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홍 시장의 경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계에서 은퇴했거나 권토중래를 노리는 올드보이와는 다른 이력을 쌓아왔다. 현역에서 맹활약 중인 정치인은 홍 시장이 유일하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크게 승리하면 ‘부드러운 친윤 모드’, 반대로 참패하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라면서 “설사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압승한다 해도 임기 후반으로 간다면 홍준표 시장의 스타일상 차별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홍 시장의 목소리는 유난히 크고 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시장은 기존 보수정치권에서 드문 독특한 캐릭터다. 검사 시절에도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은 것처럼 정치 입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MB계로 분류됐지만 본인은 부인했다. 특정 계파 소속보다는 상대적 자율성을 중시했다.
정치 입문도 흥미롭다. 모래시계 검사로 인기를 누리면서 15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영입 경쟁이 치열했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물론 제1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에 이어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의 영입 제안까지 받았다. 3각 러브콜이었다. 홍 시장은 통추의 영입 제의를 거의 수용했지만 막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전화 한 통에 신한국당으로 유턴했다. 역설적이지만 YS의 전화가 없었다면 홍 시장은 노 전 대통령과 정치를 함께 하는 모습도 그려볼 수 있었다.
왜 홍준표계는 없을까
정치인으로서의 스토리텔링 또한 나쁘지 않다. 대표적 흙수저 정치인으로 자수성가형이다. 초등학교 시절 잦은 전학에 도시락을 못 쌀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의대 진학을 희망했지만 학비 문제로 육사로 방향을 틀었다가 검사를 꿈꾸며 고려대 법대로 진학했다. 홍 시장은 이와 관련해 “가난을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지친 몸과 아픈 시간으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홍 시장은 또 대표적 보수 논객이다. 맞수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유 전 이사장이 진보 진영 패널로 나선다고 하면 보수 진영에서는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를 개의치 않고 맞상대로 나선 이가 홍 시장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홍 시장과 유 전 장관은 아직도 여야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꼽힌다. 실제 홍 시장은 2019년 MBC ‘백분토론’ 20주년 특집, 2023년 3월 ‘백분토론’ 1000회 특집에 출연해 유 전 장관과 맞대결을 펼친 바 있다.
차기를 꿈꾸는 유력 정치인의 경우 분명한 지역 기반에 수십여 명의 계파 의원을 거느린다. 홍 의원은 비주류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여야 정치권 안팎에서는 ‘계파를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홍 시장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無)계파는 홍 시장의 최대 약점이다. 인간적 매력이 없다거나 후배 정치인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19대 대선 패배 이후 자유한국당 대표를 맡았을 때 친홍계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홍 시장은 이와 관련해 “국회의원 5선, 경남지사 재선, 대구시장 등 선출직 8선에 당대표 두 번까지 합치면 10선 선출직을 지낸 것은 정치적 기반을 계파에 두지 않고 국민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친이·친박·친노·친문도 모두 다 권력에 빌붙은 하루살이였다. 나는 국민적 기반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지 계파를 믿고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다.
무계파는 취약한 당내 기반을 드러낸다. 과거 복당 논란이 상징적이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컷오프 이후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 출마해 당선된 홍 시장이 복당하는 데는 1년여가 걸렸다. 수해 골프 논란 당시 홍 시장의 태도를 옹호한 세력이 없다는 점도 비슷한 이유다. 최진 원장은 “홍 시장은 계파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독고다이 스타일”이라면서 “홍 시장의 지론은 당심이 아닌 민심이다. 민심이 앞서면 당심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 시장이 던지는 메시지 또한 당보다는 외부를 향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는 매우 전략적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막말 정치인’이라는 프레임도 약점이다. 물론 본인은 서민의 언어라면서 반발했다. 홍 시장은 과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가장 전달하기 쉬운 서민의 평균적인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막말로 매도한다”며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한 이순신 장군도 막말한 거냐”며 반박한 바 있다.
분수령은 尹 대통령과 관계 설정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4월 1일 대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홍준표 대구시장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특히 1997년 대선의 경우 레임덕 대통령일지라도 차기 권력에 대한 비토권을 행사할 힘이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역대 대선 국면 때마다 여야의 유력 차기주자들이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공을 들인 이유다. 홍 시장은 과연 윤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에 성공할까. 윤 대통령의 그립은 강력하다. 용산 대통령실의 당 장악력은 과거 ‘3김 정치 시절 저리 가라’ 수준이다. 홍 시장은 표면적으로는 친윤도, 반윤도 아닌 길을 걸어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아직 이어지는 것이다.
홍 시장은 ‘홍준표다움’이라는 마이웨이를 바탕으로 차기 대권의 길을 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을 향한 포석은 영리하게 구축했다. 세대적으로 20·30대의 지지를 본인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또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경남지사에 이어 대구시장을 선택했다. 지역 기반을 수도권, PK(부산·경남)에 이어 TK로 확장했다. 여야의 진흙탕 공방이 벌어지는 중앙 정치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지역 민심을 다지기 위한 전략이다. 필요하면 페이스북 정치를 통해 중앙 정치에서 존재감 확보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홍 시장의 차기 행보와 관련해 다양한 전망을 쏟아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홍 시장 특유의 소신 정치는 지지층을 강하게 결속시킨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거친 이미지 탓에 상대편의 반감이 심하고 중도층이나 무당층으로 외연을 확대하기가 어렵다”며 “본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이른바 ‘뉴(new) 홍준표 플랜’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차기 주자들은 정권 중·후반기까지는 조용히 있다가 정권 말기 레임덕이 오면 대통령을 딛고 일어서는 경우가 사실상의 코스”라면서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홍 시장은 본격 차별화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 원장은 “차기 대선에서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팬덤을 갖춘 정치인이 외려 불리할 수 있다”며 “시대정신을 파악해 홍 시장이 중도를 선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