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자로 돈 잔치” 질타에도 끄떡없는 好실적
가계 대출 줄이고, 기업 대출 늘리고…
“커지는 시장 불확실성·사회적 요구는 리스크”
모순적 정부 당국 방침에 시장 왜곡 우려도
[Gettyimage, 각 사]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NH농협·우리 등 5대 금융지주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총 10조8900억 원가량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미 사상 최대 기록을 썼던 지난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약 10조2000억 원)보다 7%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KB금융이 2조9967억 원으로 선두 자리를 차지했고, 신한금융이 2조6262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하나금융은 처음으로 반기 순익 2조 원을 넘어서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NH농협금융은 당기순익 1조7058억 원을 기록해 우리금융(1조5386억 원)을 따돌리고 4위 자리를 차지했다.
압도적 이자 수익, 조 단위 대손충당금에도 흑자
호실적을 이끈 원동력은 이자 수익이다. 최근 세계적 금리인상 기조가 잦아들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고금리 수준이 유지된 영향이다. 5대 금융그룹에 속한 은행들이 올해 상반기에 거둔 이자 이익은 20조4000억 원을 넘어섰다.KB국민은행의 이자 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4조4402억 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4조8103억 원으로 8.3% 증가했다. 신한은행(4조1190억 원)은 5.9% 늘었고, 하나은행(3조9732억 원)과 NH농협은행(3조8318억 원)은 각각 12.7%, 17.4%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우리은행(3조7573억 원) 역시 7.9% 늘었다.
은행들은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주춤했던 가계 대출 대신 기업 대출을 늘려 이자 이익을 챙겼다. 그중에서도 리스크가 낮은 대기업 대출 증가세가 또렷했다. 하나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32% 늘며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농협은행(15.1%)과 신한은행(10.8%), KB국민은행(14.2%), 우리은행(11.5%)도 모두 반년 만에 1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가계 대출은 전년 말에 비해 일제히 1~2%씩 줄었다.
주목할 점은 올해 금융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나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연체율 상승 등을 우려해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쌓았는데도 호실적을 냈다는 것이다. 충당금은 회계상 비용으로 분류돼 적립이 늘수록 이익이 줄게 된다.
그룹별로 보면 KB금융지주가 1조3195억 원으로 가장 많은 충당금을 쌓았다. 지난해보다 무려 177% 더 증가한 규모다. 그럼에도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신한과 우리의 경우 대손충당금이 늘면서 지난해에 비해선 당기순이익이 다소 줄었다. 신한금융지주는 1조95억 원, 우리금융지주는 8180억 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이는 전년보다 각각 67.7%, 64.6% 늘어난 규모다. 이 영향으로 두 그룹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1%, 2.7% 줄었다.
양날의 검 된 역대급 실적
대형 금융지주들은 이처럼 비용이 크게 늘어난 와중에도 역대 최대 순익을 기록하는 역대급 실적을 내놨지만 되레 긴장하는 모양새다. 이유가 있다. 우선 올해 하반기 이후 연체율 상승으로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 대비해 충당금을 추가로 쌓다 보면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점쳐진다.최근 1년간 5대 은행의 연체율은 눈에 띄게 악화했다. 올해 6월 말 기준 평균 연체율은 0.28%로 1년 전(0.17%)보다 0.09%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올해 9월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된다는 점에서 자영업자 대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코로나19 대출 잔액은 37조6158억 원에 달한다.
금융 당국은 은행들을 더 압박하고 있다. 7월 은행연합회가 대손충당금 관련 개정 지침을 시중은행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례적 위기 상황까지 고려해 충당금을 더 쌓으라는 취지다. 이런 와중에 또 한 번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는 점은 부담이다. 정부·정치권에서 압박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올해 들어 금융 당국이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 ‘상생금융’이 대표 사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월부터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을 연달아 방문한 바 있다. 은행들은 이에 맞춰 대출금리 인하 등 8000억 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 평균은 0.9%대로 하락했다. 4개월 연속 감소세다. 금융 당국의 압박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은행들의 사회 공헌 부담도 커졌다. 5대 은행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사회 공헌 지원 금액은 총 5315억3000만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4% 늘어난 규모다. 이런 분위기에 증권가에서도 은행 업종을 분석하면서 정치권과 당국의 움직임을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로 언급하는 상황이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올해 은행 업종을 전망하면서 “전반적으로 높아진 시장 불확실성과 은행에 대해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다소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쪽에선 돈 쌓으라, 한쪽에선 쓰라…”
상생금융은 은행에 이어 카드사·보험사·저축은행 등 전 금융권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각 금융그룹이 은행 외 카드·보험사 등 계열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7월 17일 이복현 원장은 신한카드 상생금융 행사에 참석해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금융을 통한 취약 차주 지원은 연체 예방 등을 통한 건전성 제고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금융권의 지속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이미 발표된 상생금융 방안을 최대한 조기에 집행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다. 또 “그간 주로 은행권을 중심으로 상생금융 노력이 있었는데, 최근 카드·캐피털·보험사 등도 적극 동참해 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금융권 내부에서도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연달아 내는 만큼 사회 공헌이나 취약계층 지원에 앞장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자칫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 한쪽에선 위험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으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시장 원리에 역행해 이익을 줄이라고 한다”며 “당장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앞으로 혹여 금융위기급 충격이 온다면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