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우리 고전에 기록된 서사를 현대 감성으로 각색한 짧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역사와 소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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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은 여덟 살 때부터 고향인 김해 고을은 물론이려니와 진주 관아의 가기(歌妓)로 제법 이름을 떨쳐 큰 굴곡 없이 여태 잘 살아왔습니다. 유명세를 타고 여기저기 불려가 가무를 할 땐 아호인 상란이로 불렸지만 본디 이년의 성은 마이고 이름은 수진입니다. 이곳 김해 관아 아전이었다가 재작년에 세상을 뜬 마동팔이가 제 아비이옵고, 장터에서 제일 큰 국밥집 하던 나주댁 효실이가 제 어미입니다.
여기까지 들으시면 이년이 꽤 가난하여 가기가 된 줄로만 아실 수도 있겠으나, 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전임 사또께 알아보시면 사연이 저절로 밝혀지겠지만, 이년의 아비 마동팔이는 재물 불리는 데엔 타고난 재주꾼이었습니다. 집도 여러 채였고 야금야금 사들인 전답도 꽤 됐습니다. 어디 그뿐이었겠습니까. 어미인 효실이 역시 돈 버는 데엔 억척스럽기 그지없어 그 재산만으로도 장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습니다.
이렇게나 돈은 많았지만 제 부모에겐 자식 복 하나가 없었지 뭐겠습니까. 이년이 유일한 자식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아들이라도 하나 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양에 올려 보내 미관말직일망정 하급 무관만큼은 시키고야 말았을 겁니다. 말이야 바른말로 요즘 돈이면 안 되는 게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 원을 못 이루게 된 이년 부모는 애정을 외동딸인 제게 온통 쏟아부었습니다.
분방했던 어린 시절
남들은 양반가 규수가 부럽다지만 전 전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반가 처녀들이란 대문 밖만 살짝 벗어나도 예의 운운하며 흉보는 자들이 줄을 잇고, 냇가에서 마음껏 멱도 감을 수 없는 데다, 언감생심 사내 녀석들과 어울려 돌팔매질도 맘껏 할 수 없는 딱한 처지 아닙니까. 다리에 힘이 없어 뜀박질은 생각도 못 하고 종당엔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짝이 돼 어디론가 떠나게 되지 않습니까. 도대체 그게 뭐가 부러운 일일까요.이년은 주변 눈치나 살펴야 할 양반 신세도 아니었을뿐더러 힘없는 종년들처럼 주인에게 매인 몸도 아니었는지라 하고픈 것 다 하고 먹고픈 것 다 먹으며 제멋대로 자랐습니다. 돈이 넘쳐나던 제 부모는 어차피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할 재물 제게 원 없이 써댔는데, 덕분에 김해에서 마수진이라 하면 걸어 다니는 금붙이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뭐, 여기서 시집만 잘만 가면 더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지 않았겠습니까.
장차 온 재산을 사위에게 물려주리라 벼르고만 있던 부모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겠지만, 전 애초에 한 사내에게 인생을 걸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습니다. 동네 또래 사내애들과 머리가 깨질 정도로 싸워보기도 했고, 그 녀석들과 발가벗고 함께 자맥질도 해본 이년이 아니겠습니까. 사내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여덟 살이 될 무렵 혼인하지 않고 부처님처럼 자유자재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비구니가 되겠다는 제 말에 아비는 마치 실성한 것처럼 화를 내다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성품이 치밀하고 대범했던 어미만이 이년을 방 안에 밀어 넣으며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수진아. 네년이 아직 남녀의 즐거움을 몰라서 그런다. 조금 더 커서 진짜 여자가 되면 정말 후회할 거야! 열두 살까지만 참아라.”
전 빙글빙글 웃으며 그 정도라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랑 신혼부부 침실을 엿보았고, 동네 산파에게 물어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도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다방면에 조숙했던 이년은 아기를 잉태해 뒤뚱대며 걷는 자신을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릴 지경으로 싫었습니다. 남녀의 즐거움이 아무리 크다 한들 징검다리를 한발로 뛰어 건너고, 동네에서 제일 큰 당나무를 누구보다 빨리 타고 오르며, 찬란한 석양빛을 등에 받으며 언덕길을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는 기쁨에 비할 바였겠습니까.
가기(歌妓) 마상란
여느 사내아이들보다 영특한 데다 힘까지 더 셌던 이년은 부모에겐 아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만저만 애지중지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한데 그토록 기대를 품고 가없는 정을 내려준 부모와 아예 연을 끊어버릴 수는 또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해서 생각해낸 것이 가기의 길이었습니다. 곧바로 대처인 진주로 간 저는 예원에 들어 노래와 춤을 익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들을 추월해 감영 잔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성량에 놀라지 않을 이가 없었습니다.이년을 눈여겨보신 진주목사께서 관찰사 몰래 따로 부르시더니 이렇게 이르시더이다.
“아비가 김해 아전이라 들었다. 내 너를 다른 관기처럼 함부로 부리지 않을 테니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으련?”
이년이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퍼뜩 정신이 들며 슬슬 부아가 솟구쳤습니다. 해서 볼멘소리로 이렇게 지껄이고 말았지 뭡니까.
“이 계집의 노래를 취하시려거든 분부만 하십시오. 언제든지 따르렵니다. 하지만 제 몸과 마음은 오직 제 것이오니 취하실 수 없으리다.”
목사께선 잠시 노려보시더니 이년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시곤 이리 대답하셨습니다.
“쥐방울만 한 년이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제법 성깔도 부릴 줄 알고 마음에 든다.”
그 후 진주목사 어른의 후원을 받게 된 이년은 순풍에 돛 단 듯 어린 가기로서 마음껏 재주를 펼치며 살았습니다. 아호로 상란을 쓰게 된 것도 그 무렵입니다. 부자인 부모와 권세를 쥔 목사님께서 등 뒤에 떡 버티고 있었으니 누가 감히 절 우습게 볼 수 있었겠습니까. 수많은 한량이 제 주변만 맴돌다 기가 꺾여 말 한마디 붙여보질 못했습니다.
열다섯 살 때인가 어느 고을 현감 한 분께서 술에 취해 제게 집적댄 적이 있습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던 전 벌떡 일어나 잔치 자리를 벗어나려 했는데, 아니 그 양반께서 이렇게 말을 하시더이다.
“고년 버르장머리 참 없구나! 돈을 더 주랴, 아니면 소실로 들여주랴? 이제 한창 여물었으니 너도 예사 계집처럼 굴거라!”
앉았던 자리에 도로 앉은 이년이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사또께서 잘 여문 계집 매운맛을 정녕 보고 싶으신 겁니까? 그러시려면 이미 이년이 모시는 목사 어른과 겨뤄보셔야 할 텐데, 과연 뭐로 겨루시렵니까? 그리고 돈이라면 제가 훨씬 많을 듯하온데, 차라리 다른 걸로 이년을 눌러보시는 게 나을 듯하옵니다.”
남녀가 교유하는 법
결국 저는 그 현감 어른과 술 마시기 내기를 했고 이겼습니다. 뭐 크게 오해는 마십시오. 종당엔 그분과 더할 나위 없는 망년지우가 되고야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 뒤 이 상란이의 성가가 여러 배로 치솟았던 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에서는 일종의 덤이란 게 아니겠습니까.여기까지 말씀 올리자니, 혹시 이년이 여태 남녀의 즐거움과 담을 쌓고 진짜 비구니처럼 살아왔나 오해하실 듯도 하여 저어됩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기 상란이로 산 세월 내내 이년에게 사내와의 인연이 끊어진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남녀로서 교유하는 데에는 똑 부러진 원칙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나이와 신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요즘 들어 노비들조차 신분을 풀어달라며 나라님께 청을 올리는 판국 아니겠습니까. 비록 기녀라지만 이년은 엄연히 상민이고 스스로 이 길을 택한, 저 나름대로 줏대 있는 년입니다. 신분으로도 결코 이년을 찍어 누를 수 없을진대 하물며 나이이겠습니까.
둘째는 운우의 정을 피하지는 않되 그것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녀가 마음이 통하면 몸도 통하게 마련인 법, 봄바람 같은 사내의 나긋나긋한 속삭임에 저절로 옷고름을 푸는 게 여느 계집들의 상정이겠지만, 이년에겐 그런 여린 구석이란 애초 없었거니와, 하고많은 삶의 즐거움 가운데 하필 왜 그런 몸의 노역에만 발버둥 쳐야 된단 말입니까. 여자에게 인정받으려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몸부림쳐대는 사내들 꼴을 보고 있자면 이년은 그저 가소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사내들의 성정을 속속들이 알고 자라난 이년의 경험으로 보건대, 남자는 결단코 제 힘만으로는 여자를 만족시킬 수 없나이다. 계집이 진심을 담아 허락하고 협조할 때에야 합궁의 기쁨이 일어나는 법인데, 우매한 사내들은 그것이 마치 제 능력 때문인 양 한껏 도취해 있더라 그 말입니다. 그런 미련한 사내들과 잠자리에서 노고를 치르느니 차라리 그들과 바둑을 두거나 담배를 피우는 게 즐거울 따름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교유한다는 건 서로 마음이 맞는 일이고, 마음이 맞으면 몸은 절로 따르게 돼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말동무였다가 술동무가 되고, 마침내 나란히 침상에 누워 하늘의 별을 같이 따기로 맹세하는 게 사내들의 벗 사귐 아니겠습니까. 남자끼리는 능사로 하는 그 일을 어찌 여자와는 못 하란 법이 있겠습니까. 도원에서 두 손을 움켜쥐고 사내들이 하는 청운의 맹세와 다정하게 마주 보는 남녀가 길이 우화등선하자는 맹세가 어찌 서로 다른 것이겠습니까. 이년은 두 맹세 다 인생을 함께하자는 도원결의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여깁니다.
김해 향교의 어린 도령
살아온 내력에 대한 장광설은 여기서 이만 그치고, 한양에 알려질 정도로 이년이 근자에 빚은 물의에 대해 소상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 비록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는 하나 본디 그런 일을 꾀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우선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된 김해 향교의 어린 도령에 대해 설명 드려야 하겠습니다.쉰이 넘은 이 늙은 기녀를 사모해 혼인까지 하자며 졸라댄 도령의 이름은 손칠목입니다. 밀양 얼음골 반가에서 태어난 도령은 먼 친척이 있던 김해로 잠시 옮겨와 향교에서 글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밀양 인근에 돌림병이 돌아 도령을 아끼던 부모가 급히 피신시켰다고 합니다.
진주에서 보낸 화려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고향에 돌아와 있던 이년은 홀로 된 노모와 오순도순 즐겁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소꿉친구들 대부분은 늙어 백발이 성성했지만 서로 만나 옛일을 추억하며 얘기꽃이라도 피우다 보면 수십 년 세월이 무색해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살이에 전혀 겁이 없고 놀랍도록 담대했던 제 안의 소녀가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연륜의 덮개로 잘 감추고 조신하게 지냈다고 자신합니다.
손도령은 그저 호기심이 무척 많은 사내아이였습니다. 남녀의 일에 조숙해서 이년에게 음심을 품었다는 비방은 따라서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건 이년이 도령을 먼저 유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낭설만큼이나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잡스러운 말에 현혹되지 마시라고 앞서 이년 삶의 내력을 길게 늘어놓았던 것이오니 부디 헤아려주사이다.
도령은 활기차게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궁금한 걸 곧잘 물었는데, 어느 날엔가 절 찾아와 가기의 삶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신이 난 저는 진주에서 누린 삶과 그곳에서 익힌 예능에 대해 친절하게 얘기해 줬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도령은 자기도 노래를 배워보고 싶다며 보챘습니다. 하긴 요즘은 세상이 크게 바뀌어 멀쩡한 양반가 자제들도 더러 소리꾼이 되곤 하지 않습니까. 시험 삼아 시조창 한 수를 읊조리게 해봤는데, 이게 참 제법이었던 겁니다. 그 뒤로 이년과 도령은 노래로써 사제의 연을 맺었다면 맺은 셈이었습니다.
추문이 된 연정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제 갓 열일곱 살 어린 도령이 이 늙은 퇴기를 연모한다고는 미처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비록 눈치챘다 한들 이년 성품상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으리란 걸 사또께서도 이미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문제는 도령이 저에 대한 정애를 안으로 간직하지 못하고 가족이며 친척들, 심지어 향교에서 학문을 지도하던 제주(祭主)에게까지 떠들고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이년 짐작으로는, 그렇게 소문을 퍼뜨려 저와의 혼인을 어느 누구도 주워 담을 수 없는 기정사실로 만들려 했던 것 같습니다. 갖고 싶은 게 생긴 어린아이들이 곧잘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기가 막히고 화도 났지만 그 어린 마음이 한편으로 애틋하기도 하여 전 향교로 찾아가 제주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제주가 이렇게 말하더이다.
“내 나이 서른이 넘도록 이런 해괴한 일은 처음이오. 뻣뻣한 살가죽에 쭈글쭈글한 주름살만 가득한 늙은 기녀가 무슨 재주로 어린 것을 홀렸단 말이오? 앞으로 칠목이 앞엔 얼씬도 말고 자중하시오.”
이 마수진이 어떤 사람인지는 어려서부터 한 마을 어른들께 들어 잘 알았을 것이면서도, 감히 면전에서 대놓고 모욕하는 제주를 향해 이년은 표독하게 쏘아붙였습니다.
“한때 진주를 호령했던 가기인 내가 어린 도령을 탐했다고 진정 믿는 것인가? 어서 도령을 이리 데려와 보오! 불길처럼 삽시간에 번져나간 그 추문이 사실이라면 내 이 자리에서 그 불에 타 확 자결하고 말 테니!”
씩씩대던 제주가 향교 구석방에 갇혀 있던 칠목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회초리를 몹시 맞았는지 두 종아리가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머잖아 늙은 기녀와 혼인하겠다는 아들의 서신을 받고 깜짝 놀란 부모들까지 김해에 나타난다면 일이 정말 심하게 꼬이겠다 싶어, 전 노발대발하며 도령을 야단쳤습니다. 그러자 도령이 서럽게 울며 말했습니다.
“저는 기름지고 보드라운 연약한 피부보다는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거칠고 단단한 피부가 훨씬 좋습니다. 겉만 발그레하고 포동포동한 입술보다는 수많은 사연이 그곳을 통해 오갔을, 말랐지만 미묘한 잔물결 진 그런 입술에 더 끌립니다. 절 어리다고 소홀히 여기지만은 말아주세요. 세상 사람들은 그릇이건 글이건 죄다 옛것을 좋아한다면서도, 어찌 사람에게만은 그리도 거꾸로 차별을 두는 건가요? 오래도록 빚은 술이 맛이 깊고 삭힌 젓갈에 풍미가 깃들 듯 사람 또한 그러한 법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따끔한 궤변이란 말입니까. 이년이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더는 도령을 나무랄 수만은 없겠다 여길 정도는 됐으며, 제주 또한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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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특별한 관심
사또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 도령은 부모 손에 이끌려 밀양으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일이 잠잠해질 것만 같았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한양에서 기찰포교 한 명이 찾아오더이다. 그는 도령과의 관계를 이리저리 샅샅이 캐묻더니, 그 내용을 다시 고을 원에게 자세히 글로 써서 바치라고 엄포를 놓고 갔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게 모두 그 기찰포교 때문입니다.포교 말에 따르자면, 이년이 적어 바칠 글을 사또께서 엄중히 살펴보시고는 정중한 공문으로 새로 적어 임금님께 올린다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이 미천한 년의 일이 나라님의 관심사까지 됐는지는 여태 잘 모르고 있습니다만, 칠목 도령이 한양에 과거 보러 가서 저와의 사연을 담은 엉뚱한 답안지를 냈다는 풍문은 살짝 들은 바 있습니다. 그 글이 명문이어서인지, 또는 그 글에 담긴 내용이 하도 진기해서인지는 역시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한양 조야에 널리 회자된 건 분명한 듯합니다.
포교가 한 말에 겁이 더럭 난 이년은 급히 향교 제주를 찾아가 도대체 나라님께서 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실지 물어봤더랬습니다. 머리만 벅벅 긁적이는 제주에게 뾰족한 생각이 떠오를 리 만무해 보였지만 한참을 기다렸더니 이런 답이 돌아오더이다.
“젊은 사내와 나이 든 아낙이 혼인하는 게 강상의 죄가 될 리 없긴 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할 경우인데, 아마도 나라에서 그 기준을 정하려는 게 아닐까 짐작되긴 하오.”
전 한참을 깔깔 웃었습니다. 강상의 죄가 될 나이 차이란 과연 몇 살이겠습니까. 이년과 칠목 도령이 비록 서로 맺어질 순 없었지만, 만에 하나 이년이 도령을 받아들였다면, 그럼 그건 강상을 저버린 대죄가 되는 것입니까. 이년 신분이 양인임은 누누이 밝힌 바 있사오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체 나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뭐란 말입니까. 사람이 늙는 것이 돌림병도 아니요,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겪어야 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일진대, 그게 사람과 사람을 따로 가를 큰일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게다가 나이 먹은 사내가 꽃다운 소녀를 소실로 들이는 건 다반사인데, 거기서 남녀가 뒤바뀌었다고 그리 소란을 피울 일이 된단 말입니까. 이년은 도통 납득이 되질 않는군요.
붉은 햇살
사또님을 비롯한 한양의 양반 나리들, 심지어 지존이신 나라님마저 온통 궁금해하시는 건 결국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때 반반했다지만 벌써 지천명을 넘긴 늙은 기녀에게 도대체 육체적으로 무슨 끌리는 게 있어서 앞날이 창창한 어린 도령이 저리 미쳐 날뛰었을까, 그것 하나 아니겠습니까.이년 스스로가 돌아보아도 축 늘어진 볼살이며,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며, 근육이 쪼그라든 정강이며 어디 하나 봐줄 곳이 없더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것들도 한때는 아름다웠던 몸이 남긴 자랑스러운 흔적 아니겠습니까. 볼 줄 모르는 사내 눈엔 그저 쭈그러든 살덩이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살들이 해낸 일들을 기억하는 자에겐 너무나 귀한 삶의 잔해가 아니겠습니까. 천년 고찰을 지키며 부서져가는 돌탑이 어디 매끈하기만 해서 보물로 대접받는 것이겠습니까.
도령의 고백을 처음 받던 날 저녁, 대체 어떤 순간에 이 아이가 날 여자로 좋아하게 됐을까 이년은 묻고 또 물었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바뀔 때엔 반드시 계기가 있게 마련이고, 계기란 건 물방울 모이듯 천천히 쌓이기보다는 다리에 쥐가 나듯 퍼뜩 밀려드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칠목 도령과 늦은 오후 산책을 했더랬습니다. 소리를 가르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강변에 노을이 지고 산비탈부터 그늘이 짙어지기 시작하자 전 서둘러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산자락을 멀리 돌아 석교를 건너기보다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징검다리 쪽으로 내려섰습니다. 갑자기 이년 안에 움츠려 있던 어린 소녀가 용틀임을 하더니 불쑥 튀어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평소 같았으면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을 텐데, 그곳엔 어린 도령 외엔 보는 눈도 없었고, 또 어쩐지 자신을 시험해 보고도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뿐히 한 발로 첫걸음을 디딘 뒤부터 어떻게 징검다리 끝까지 이르게 됐는지 이년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무튼 어찌 된 영문인지 전 징검다리를 한 발로 단숨에 건넜고, 내친김에 당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까지 내달렸습니다. 당나무 위로 타고 오르자 마을의 초가집 곳곳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감청색으로 밀려드는 어둠 사이로 마지막 남은 붉은 햇살이 절규하듯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어린 소녀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는 겁니다. 당나무 아래까지 뒤따라온 도령이 헐떡이며 올려다본 게 그게 아니었다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 작품은 이옥의 ‘마상란전’을 모티프로 창작됐다.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