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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쉽게 물러설 사람은 아니지 않나”

[윤태곤의 총선읽기] 당대표 바뀌면 민주당 바닥 치고 올라간다

  •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3-08-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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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사이익’ 없는 여야 지지율 동반 하락

    • 민주당 변하면 국민의힘이 십자포화 타깃

    • 제3지대·이준석·유승민·舊친박 각개약진

    • 정부견제론(48%)이 정부지원론(36%) 압도

    • 尹 옹위하다 견제론→심판론 바뀔 수도

    8월 3일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왼쪽)이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방문해 사과한 후 면담하고 있다. [뉴시스]

    8월 3일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왼쪽)이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방문해 사과한 후 면담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이 8개월도 남지 않았다. 아직 판세를 가늠키는 어렵다. 여야 어느 한쪽으로도 민심이 쏠리지 않는 상황이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여당-야당 지지율이 모두 좋지 않은 부정적 균형이 지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권과 야권의 지지율은 반비례 관계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내려간다. 뒤집어 말하면 한쪽이 내려가야 다른 한쪽이 올라간다. 한쪽이 점수를 쌓아가는 잘하기 경쟁이 아니라 상대의 자책점으로 점수 차를 만드는 ‘못하기 경쟁’, 즉 ‘반사이익의 정치’를 혁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오래다.

    최근엔 이 반사이익의 구조조차 흔들린다. 한쪽이 뭘 잘못해도 다른 한쪽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못한다. 국정 운영에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함께 하락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대통령-여당-야당 지지율이 한꺼번에 하락하는 이례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반사이익 없는 적대적 공생관계

    최근 여권에 악재가 겹쳤다.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수해 자체가 악재인데 그 와중에 온갖 이상한 말이 다 나왔다. 대통령실과 충청북도에서는 “현장에 갔어도 바뀔 것은 없었다”는 식의 발언이 나왔고, 대구시장은 “주말에 골프 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했다가 당의 중징계를 면치 못했다. 여당 대표는 공무원들을 질타하면서 “이러니 대통령이 화가 나시지”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부의 설화(舌禍)는 매우 심각하다. 말로 빚어진 사고가 셀 수 없이 많다. 비판을 받아도 안 바뀐다. 앞으로도 안 바뀔 것 같다. 게다가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논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의 방송 장악 논란 등도 상당한 악재다. 이런 탓에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야당 지지율도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했다. 자동응답(ARS)이냐 전화 면접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후자의 경우 야당 지지율이 대체로 오차범위 내에서 여당보다 낮게 나왔다.

    뒤집어 봐도 마찬가지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 등 도대체 끊이지 않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친이재명(親明)과 비이재명(非明) 간 극한 대립, 김남국 의원 코인 파문, 윤관석 의원 구속 등 ‘돈 봉투 수사’ 본격화, 이래경에서 김은경으로 이어지는 혁신위원장의 연이은 잔혹사 등 야당의 악재가 줄줄이 터졌지만 여당 지지율도 요지부동이었다.



    8월 한국에서 치러진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사례가 대표적이다.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면서 극심한 혼란상을 보였지만 여야 어느 한쪽에 정치적 타격이 쏠리진 않았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대회를 유치하고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전 정부, 이 행사를 숙원 사업 해결용과 지역 홍보용으로만 이용해 놓고 무능의 극치를 보인 전라북도, 1년 넘는 시간을 허비해놓고 대회 개최 직전까지도 “잘될 거다”라고 큰소리만 친 현 정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야가 부실한 행사 운영에 대한 책임을 두고 이전투구를 벌였지만 세 명의 현직 장관과 야당 중진 의원,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아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과거 국제행사의 경우 정치세력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윈-윈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월드컵은 김영삼 정부가 유치에 성공하고 김대중 정부가 성공적으로 치러 국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노무현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처음엔 유치에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아 유치에 성공했고, 문재인 정부 때 치러졌다. 유치에 성공한 정부와 개최라는 과실을 누린 정부 모두에 성과로 남았다.

    지하철 신규 개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건설 추진에서부터 노선 확정과 착공, 준공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주요 분기점마다 각각 다른 단체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치적으로 삼게 마련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는 추진, 유치 성공, 사업 진행 모두가 흑역사로 남았다. 윈-윈은커녕 어느 쪽도 반사이익을 거두지 못한 게 현재의 정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양쪽 모두 고질적 약점을 지닌 데다 단발적 악재가 끊이지 않으니 여야가 누릴 수 있는 반사이익조차 상호 간에 상쇄되는 것이다.

    제3지대 신당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

    8월 1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8월 1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적대적 공생관계에 대한 염증으로 기존 정당에서 민심이 떠날 때 정치권 혁신의 계기가 마련되는 경우도 있다. 기존 정치권을 불신임한 민심을 장외 세력, 신진 세력이 받아 안을 경우 파괴력이 큰 정치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 노동당이 보수당과 자유당의 양당 구도를 깨고 등장했고, 21세기 들어선 프랑스 신생 정당 앙마르슈가 고착화된 정치 판도를 일거에 뒤집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역시 간판이 공화당이었을 뿐 기존의 모든 정치세력을 싸잡아 공격하면서 집권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민정당과 관제 야당 민한당에서 모두 이반한 민심이 1985년 2·12 총선 신민당 돌풍을 일으켜 민주화로 이어진 바 있다.

    최근 사례는 올해 5월 태국 총선이다. 왕실과 군부로 표상되는 보수파와 그 반대편에 있는 재벌 출신 탁신 전 총리 계열의 부패한 포퓰리즘 세력에 염증을 느낀 태국 국민들이 창당 3년차인 전진당을 원내 1당으로 끌어올렸다. 1981년생 피타 림짜른랏 대표가 이끈 전진당은 수도 방콕에서 지역구 의석 33개 중 32개를 싹쓸이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현재 한국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3지대 신당 창당에 대한 여론조차 부정적이다. 한국갤럽이 8월 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당이 기존 정당과 경쟁할 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 대답을 내놓은 비율은 15%에 불과했고, 70%는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신당의 현실적 전망이 어두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신당 창당을 ‘좋게 본다’는 응답자가 28%에 불과하고, ‘좋지 않게 본다’는 답변이 55%에 달한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기존 정치권, 거대 양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정치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원내 제3당이자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따지면 전통이 상당한 정의당의 지지율과 존재감 역시 제3지대 세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보니 당의 진로를 놓고 세 갈래, 네 갈래로 의견이 쪼개져 있다.

    거대 양당은 물론 제3세력에서도 유권자들이 마음을 돌리고 있기에 무당층만 날로 증가하고 있다. 앞서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무당층 비율이 32%로 나타났다. 국민의힘(32%), 민주당(31%) 지지율과 거의 같다. 특히 18∼29세와 30대에서 무당층 비율이 각각 54%와 42%를 차지했다. 40대 이상 연령층은 대체로 정당 일체감이 강하기에 미우나 고우나 지지 정당이 있게 마련이지만 30대 이하에선 다른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여냐 야나 믿을 구석은 상대방이다. 좋은 경쟁이 펼쳐질 경우 상대방으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그 위기감이 변화를 강제한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다. 상대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변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위에서는 “다른 시나리오는 없다”며 권력 누수를 막고 있다.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은 8월 초 “지금은 검찰이나 정권의 총체적 또는 총력적 공세에 대응해 당이 일치 단합하며 대응하고 또 민생 현안에 대해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산 대통령실이나 여당 주류도 비슷하다. 이른바 윈-윈 시나리오도 나온다. 민주당 주류 쪽에선 “지금보다 의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에 너무 많이 당선됐다. 수도권의 우위를 유지하고 140석 이상을 얻으면서 의원들의 구성이 지금과 (주류와 가깝게) 달라진다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여권에서도 “어찌 됐건 지금보다는 의석이 늘어날 것이다. 과반 가까이 해서 1당을 유지한다면 그리 나쁜 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양당이 사이좋게 140석 안팎을 얻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부견제론 > 정부지원론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류,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친명계 모두 구심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발밑이 약한 쪽은 야당 대표다. 다르게 말하면 대통령 그립이 센 국민의힘보다는 계속 흔들리는 대표를 둔 민주당의 변화 가능성이 높다. 김은경 혁신위가 잡음만 생산해낸 것도 오히려 변화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 이 대표 체제에 대해 ‘8월 위기설’ ‘10월 사퇴설’ 등 각종 ‘설’이 난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월 사퇴설은 이 대표가 스스로 결단하는 형식으로 물러나고 주류 진영이 ‘믿을 만한 사람’을 다음 당대표(비대위원장)로 내세운다는 시나리오다. ‘8월 위기설’은 검찰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묶어 다시 한번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나온 것이다.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힌 이 대표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이재명 체제는 막을 내릴 공산이 크다. 누가 차기 당권을 쥐느냐를 두고 한동안 주류와 비주류 간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고, 지지율은 지금보다 더 떨어지겠지만 바로 그때가 바닥일 수 있다. 당대표 사법 리스크가 사라지고 간판이 바뀌면 민주당은 바닥을 치고 올라올 수 있다.

    검찰 덕분(?)에 혹은 이재명 대표의 결단으로 인해 민주당이 변화한다면 현재와 같은 고착화된 구조는 깨지고 반사이익의 구조가 부활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여권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한국갤럽 8월 초 여론조사에는 여권에 매우 불리한 지표가 있다. 내년 총선 전망에서 ‘정부견제론’(48%)이 ‘정부지원론’(36%)을 압도한 것. 민주당이 변화할 경우 이 격차는 정당 지지율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다. 비대위가 됐건 조기 선대위가 됐건 간판을 바꾸고 국정 기조에도 변화를 주는 것이 정상적 대응책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당이 뒷받침해야 한다” “이럴수록 지지층 결집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 아니라 자기 정치에 골몰하는 인사들은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 “우리의 방향성은 옳은데 언론환경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지표가 좋지 않다” 식으로 대응한다면 견제론은 심판론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의 변화는 여당의 변화를 강력하게 추동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변해도 여당이 지금과 같은 구조와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민주당의 압박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 등이 자신 있게 딴살림을 차리고 나가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이고, 영남 지역에서는 공천 탈락자들이나 옛 친박계 인사들이 부담 없이 무소속 출마를 선택할 것이다.

    제3세력도 여당을 정조준해 국민의힘은 십자포화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필자가 접촉한 여당 핵심 인사들도 이런 시나리오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 선제적 변화가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야기엔 공감했지만 먼저 변화할 가능성은 다들 낮게 봤다. 민주당이 먼저 변하면 따라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엔 “그때 가서 볼 일”이라면서 “이재명 대표가 그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은 아니지 않으냐”라면서 야당 수장에 대해 애써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동아 9월호 표지.

    신동아 9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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