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백성 보며 가슴 아파한 데서 혁신 출발
1세대 기업인 역시 이웃과 나라 걱정에 창업
창업주 정신 사라진 지금,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야
세계중소기업학회 미션은 ‘기업가 정신 확산’
[+영상] GS 허만정, LG 구인회 낳은 기업가 정신 首都 '승산마을'
7월 개최된 ‘K-기업가 정신 진주 국제포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중추 구실을 한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조영철 기자]
마침 6월 14일 세계중소기업학회(ICSB·International Council for Small Business) 68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를 서울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만났다. 61대 회장을 지낸 적이 있는 그는 이번에 두 번째 임기를 맞게 됐다.
K-기업가 정신 본질은 ‘사람 중심’
우선 ICSB란 단체를 소개해 달라.“1955년 미국에서 설립돼 중소기업과 기업가 정신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학회다. 국제적으로 85개국 이상의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ICSB의 미션은 ‘기업가 정신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Advancing Entrepreneurship Wordwide)’이다.
중소기업과 기업가 정신을 다루는 톱 저널(SSCI·Impact Factor Score 6.88)인 JSBM(Journal of Small Business Management)도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연구자와 교육자 6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학술 분야뿐 아니라 휴머니티 기반의 혁신인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 확산 활동에 열심이다. 2016년 6월에는 유엔에 ‘중소기업을 위한 기업가 정신 및 중소기업의 날’ 제정을 제안하고, 이듬해 4월 6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유엔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노동기구(ILO) 등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임기 동안 ICSB가 주창하고 있는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을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세계 청년들과 사회에 희망을 줄 뿐 아니라 기업들에 새로운 영감을 주어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특히 ‘K-기업가 정신’을 세계화하는 것도 큰 프로젝트다.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 비즈니스 스쿨을 만드는 것이 그 일환이다.”
ICSB 회장으로서 그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듣다 보니 인터뷰 맨 마지막에 하려던 질문을 먼저 묻고 싶어졌다.
ICSB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이 요즘 화두로 떠오른 K-기업가 정신과도 통해 보인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앞에서 묻고 싶다. K-기업가 정신의 본질이란 게 한마디로 뭔가.
“한마디로 인간 존중, 사람 존중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창업 세대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공감의 정신에서 기업을 일으켰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래서 어려울 때 일수록 혁신이 돋보였다. 돌아보면 오일쇼크, IMF, 금융 위기 등과 같은 격변기에 기업에도 큰 혁신이 일어났고 성장했다. 코로나19 때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한국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삼성·LG·GS·효성의 1세대 주요 기업인들이 식민지 시대에 창업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가 개인보다 이웃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창업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생전에 ‘모든 것은 나라가 기본이다. 나라가 잘돼야 기업도 잘되고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며 ‘사업보국’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지 않았나. 그 사업보국이라는 토대 위에서 ‘인재 제일, 합리 추구’라는 경영 철학을 만들었다.
LG를 만든 구인회 회장 역시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에 보탬이 돼야 기업이 영속할 수 있다’고 했다. 구 회장이 강조한 ‘인화단결’은 LG의 전통 아닌가. 효성의 창업주 조홍제 회장은 평소 ‘도리에 어긋나는 길을 가는 기업은 반드시 망한다’고 했고, 국리민복(國利民福)과 숭덕광업(崇德廣業·덕을 높이고 업을 넓힌다)을 경영 철학으로 삼았다.
여기에 삼성·LG·GS·효성의 창업주들이 진주 승산마을 지수초등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다는 것에 세계의 많은 학자와 기업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기자도 이번에 진주 포럼에 내내 참석했는데 외국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 놀랐다.
“그렇다. 포럼에 참석한 외국 교수와 학생들은 ‘단순히 이윤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우선에 둔 한국 기업가 정신에 감명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번 포럼 개최를 주도한 아이만 타라비시 세계중소기업학회(ICSB) 회장은 기조발제와 축사에서 ‘한국 기업가들을 배출한 진주라는 지역과 진주 정신에 큰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만 회장은 이번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글로벌 대기업 4개 사가 어떻게 한 거리(same street)에서 시작할 수 있었는지,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이야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 커진 현재, 한국과 진주의 ‘K기업가 정신’이 ‘한강의 기적’ ‘K팝’처럼 더 주목받고 있다. 호수와 산을 낀 진주의 지리적 위치, 유서 깊은 유교 전통뿐 아니라 실천주의 유학을 실현한 남명 조식 선생의 사상까지 더해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경제 생태계를 이뤘다. 진주는 5년, 10년 후 한국 기업가 정신의 모태 도시로 더 주목받을 것이다.”
K-기업가 정신 뿌리, 세종의 경영 철학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서양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의 3요소는 토지·노동·자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가장 으뜸 요소로 보았다. 사람을 중시할 때 가장 중요한 감정이 뭔지 아는가?”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이렇게 말했다.
“바로 ‘아픔’이다. 나는 우리 창업 세대 경영 사상의 뿌리를 세종대왕으로부터 거슬러 찾는다. 그는 백성을 보며 진정 가슴 아파했다. 거기서 혁신이 일어난 거다. 세종은 지금 말로 하면 속된 말로 ‘크레이지 보이’였다. 당시에 중국의 한자를 거부하고 한글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실천했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 일이었다. 글자 없는 백성에 대한 진정한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의 혁신을 가장 잘 정리한 단어가 ‘C4J0K21O19’다.”
무슨 암호처럼 들린다(웃음).
“(함께 웃으며) 일본 동경대학 이토 준타로 교수팀이 1983년에 편찬한 과학사 기술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이토 교수팀은 15세기 초엽부터 중엽까지 과학적 성취 건수를 집계했는데 중국(C)이 4개, 일본(J)은 제로, 조선(K)이 21개였다. O는 영어로 ‘Others’로 유럽·이슬람 등을 말하는데 통틀어봐야 19개다. 이토 교수팀이 ‘조선이 15세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적 성취를 했다’는 걸 통계로 밝혀낸 건데 이때가 바로 세종 대였다.
세종은 오로지 백성을 위하겠다는 생각뿐이어서 인재도 파격적으로 등용할 수 있었던 거다. 여진족을 정벌한 김종서만 해도 태종 때 곤장도 맞고 무능하고 게으른 관료였다. 그런데 세종 때 최고의 무관으로 등장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빛을 전혀 보지 못하던 김종서가 아이디어가 많아서 세종 때 전쟁을 제안한다. ‘여진족을 지금 치지 않으면 명과의 관계도 어려워진다’고 한 거다. 보통 때 같으면 전쟁하겠다고 나서는 신하는 당장 모가지다(웃음). 그러나 세종은 그에게 ‘훌륭하다’면서 ‘네가 한번 해봐라’고 기회를 준다. 고향이 공주인 김종서는 이후 7년 동안 백두산 두만강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노비 출신 장영실의 등용은 너무 유명한 이야기이고, 3대 악성(樂聖) 중 한 사람인 박연도 문과 고시 출신인데 세종이 즉위하고 나서 악사를 맡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보고 자기에게 기회를 준 사람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때 관료들의 과로사가 제일 많았다.”
삼성·현대 정신 가르치는 싱가포르 난양공대
세종의 애민 정신과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어떤 연관 고리가 있나.“국민의 고충과 불편을 아파한 기업이 한국에는 많다. 대표적인 게 대전의 향토기업 성심당이다. 대전역 노숙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빵을 나눠 줄 수 있을까에서 시작한 기업 아닌가. 100개를 나눠주려면 200개를 팔아야 했다. 노숙자들에게 더 많이 나눠주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했기에 더 많이 혁신해야 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정신이 상징적이듯 글로벌 기업을 일군 1세대 창업주들에게는 국민의 불편을 해소해 주고,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 바로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선명한 ‘미션’이 있었다.”
흔히 경영학 이론은 미국 이론을 배우기에 바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연유로 한국의 기업가 정신에 꽂혔는지 궁금하다.
“2013년 아세아 중소기업학회 회장을 할 때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덴 후이 난양공대 기업가정신 센터장을 만났는데 교육 프로그램 중에 ‘삼성경영’ ‘현대경영’이란 과목이 있어 깜짝 놀랐다.
싱가포르의 유수 공대에서 이병철 정신, 정주영 정신을 가르친 거다. 더 놀랐던 것은 이걸 배우겠다고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스탠퍼드대, 중국 MBA 학생들과 기업인들이었다. 그런데 교수진이 한국 교수가 아니라 싱가포르 교수들이었다. 순간, ‘대한민국 경영학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가르치고 있는 가톨릭대학교에 과목을 개설했다. 그전까지 가르쳐오던 피터 드러커 경영학을 버리고 ‘정주영 경영학’을 학부와 대학원에 개설하고 한국식 기업경영을 주제로 한 ‘K 매니지먼트’ 과목도 개설했다. 사실 가톨릭대, 성심여대 캠퍼스는 정주영 회장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캠퍼스를 춘천에서 서울로 옮길 때 정주영 회장이 다 지어주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2015년 내가 세계중소기업학회 회장이 되고 나서 현대차의 후원으로 미국 조지워싱턴대 KMI(코리아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 즉 ‘한국 경영연구소’를 만들었다. 당시 일부 미국 교수들이 왜 특정 나라의 경영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만드느냐는 반발도 있어서 교수 전원이 투표를 했는데 결국 만드는 것으로 통과됐다.
7월 10일, 경남 진주시 능력개발관 대강당에서 ‘K-기업가정신 진주 국제포럼’ 개회식이 열렸다. [동아DB]
인도네시아와도 인연이 각별한 것으로 아는데.
“2016년부터 전 세계에 K기업가 정신을 강의하고 있는데 미국, 아르헨티나, 이집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였다. 특히 인도네시아 프레지던트대에 ‘한국경영학’을 개설했는데 무려 800여 명이 듣는다. 해외의 기업가, 학자들이 수시로 내게 물었다. 삼성과 현대는 어떻게 그렇게 혁신하고 성장하는지 말이다. 무에서 유를 만든 기업가 정신과 도전 정신을 배우고 싶다면서 말이다.”
프레지던트대 국제 부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원래는 안식년에 조지워싱턴대에 가려고 했는데 대학에서 제안이 와 K기업가 정신과 AI데이터 분석을 가르쳤다.”
AI데이터 분석은 뭔가.
“댓글이라는 고객 경험 데이터를 활용해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기업가는 상상과 꿈을 혁신으로 만들어내는 데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AI분석이 꼭 필요하다.
어떻든 인도네시아 교수와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우호적이기도 하지만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알다시피 인도네시아 경제는 일본 친화적이다. 차도 도요타 등 일제가 대세다. 97%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다. 그런데 요즘 인도네시아 안에서는 일본이 단순 생산만 시키고 혁신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불만이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인기가 가장 좋다. 도요타는 인도네시아에 아직 연구소가 없는데 현대차는 연구소도 세웠다. 인도네시아는 연구소도 데려오는 이런 한국 기업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러한 성장 기회에서 한국의 협력업체나 한국 청년들의 인도네시아 진출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김 교수는 K-기업가 정신에 대한 관심이 요즘 경영학계의 화두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단지 주주의 이익을 넘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한다. 2019년 8월, 미국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모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에서 고객과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 이행을 기업의 목적으로 내세우겠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경영학계의 화두가 됐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등 181명의 CEO가 서명했다. BRT는 1997년 기업의 목적을 ‘주주의 이익 제고’로 정하고 20년 넘도록 이 기조를 유지해 왔는데 소득 불평등과 척박한 노동환경 등 부작용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런 기조는 이듬해인 2020년 1월 다보스포럼으로 이어졌다. 다보스포럼은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을 의제로 삼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구현을 이야기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기업의 이익, 주주만의 이익에 몰두하는 자본주의는 재고해야 한다는 게 논의 내용이었다.
2020년 2월, 전 세계로 확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업들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비슷한 ESG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대한상의는 최태원 회장의 주도로 지난해 ‘이윤 창출이라는 과거의 기업 역할을 넘어서 직원과 주주,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신기업가 정신을 선포하기도 했다. ESG 경영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이제 기업의 역할이 주주 이익만을 구현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사상이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 왔다. 밀턴 프리드먼은 주주 중심 자본주의, 즉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돈을 벌어 종업원에게 월급을 주는 것 자체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전부라고 했다. 자유주의 경제를 번성시키게 만든 틀이었다. 큰 정부의 비효율이 높은 시대 상황이다 보니 시장 메커니즘을 강조하고 작은 정부, 시장에 모든 걸 맡기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극단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그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소송으로 압박하는 시대가 됐다.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대리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로펌이나 회계법인인데 이들은 갈등을 조장해 이해관계자를 괴롭히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전 학장 콜린 메이어는 ‘기업의 목적은 세상의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적으로 푸는 것’이라고 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고객이 살고 종업원이 살고 협력업체가 살고 사회 공동체가 사는 것을 말하는데 K-기업가 정신이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을 해서 나라를 지키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학교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이처럼 강한 ‘미션’이 있었다. 이건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경우다. 아이만 전 회장이 이번 포럼에서 ‘세계의 기업가 정신이 한국으로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기업가는 위기를 기회로 보는 사람들
지금 한국 경제는 저출산 고령화를 포함해 미래 먹거리가 안 보이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위기를 어려움으로 보면 전문가고, 기회로 보면 기업가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30년 동안 세 번의 큰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장 동력을 만들어냈다. IMF, 금융위기, 코로나19가 그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요소가 사람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탠퍼드대 짐 콜린스 교수는 ‘위대한 기업가들은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을 광적으로 길러낸다’고 했다. 원리, 원칙, 규범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도나 규제가 사람 몸에 체화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기업이 보통 기업보다 10배의 성과가 있다.
이걸 잘한 사람이 세종이고, 미국은 링컨이고, 중국은 공자이며, 역사적으로는 예수다. 예수의 제자 12명 중 11명이 순교했다. 배신자는 1명이었다.
삼성이 수많은 스타 CEO를 길러낸 건 이병철·이건희 회장이 제자들을 길러낸 거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잠시 쓰고 버린다는 느낌이 든다. 삼성을 생각할 때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삼성의 앞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많이 했는데.
“우리는 1세대 창업주들을 칭송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런 정신을 가진 기업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이런 것을 잃어버렸다는 철저한 현실 자각이 필요하다. 백 투 더 베이식(back to the basic)으로 가자는 거다. 지금 우리는 모두 돈 놓고 돈 먹기, 돈독이 들어 있는 공감 소멸 사회다. 창업주들이 가졌던 ‘공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이재용 회장조차 기업가 정신보다도 관리자 정신에 충실해 보인다. 기업경영은 기업가와 관리자와 기술자 사이의 3각 전투다. 이 중 관리자들이 전면에 나서는 순간 혁신은 없어진다. 기술자는 기술에만 관심이 있고, 관리자는 돈에만 관심을 가질 뿐 사람을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다.
실리콘밸리 100년의 역사에서도 관리자와 기술자가 주도하는 모든 기업이 망했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이 기업가 역할을 못하는 순간, 관리자만 남는다. 지금은 돈을 벌지 몰라도 미래가 없다. 신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회사는 살아남지 못했다. 5년 동안 똑같은 일을 하는 회사는 다 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건희 회장의 ‘위임 경영’에 대해 다시 새겨야 할 때라고도 했다.
“지금 삼성의 미래를 보려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출근하는 직원의 비율이 과연 몇 프로인지 곱씹을 때다. 이건희 회장은 그걸 관리했다. 그의 ‘권한 위양(empowerment)’이 삼성의 혁신을 만들었다.
이 회장은 관심을 가진 임원에 대해서는 임원 방에 살짝 들어가 사장을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사람은 당분간 손대지 마라, 앞으로 2년 동안 전적으로 자유를 주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관리자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당장 이익을 내지 않는 직원들은 쓰고 버린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김 교수는 조규일 진주시장과 아이만 타라비시 ICSB 회장, 오준 전 유엔 대사와 함께 ‘한국 기업가 정신의 원류(Origin of Korean Entrepreneurship)’ 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이번 진주포럼에서 K-기업가 정신의 뿌리를 남명 조식에서 찾았다. 신선한 착점이지만 아직은 가설에 불과해 보인다.
“그렇다. 더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주제다. 한국 기업가 정신은 이타적인 한국의 유교적 공동체주의와 인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 유림(儒林) 집안 후손인 대기업 창업주는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 남명의 주특기가 바로 제자 길러내기였다. 무려 136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그리고 실천을 강조했다. 행동하지 않는 유교의 문제를 극복한 것이다.
이런 사상적 뿌리를 통해 진주 승산마을에서 글로벌 기업인들이 탄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남명 조식 선생이 주창한 실천적 유교 문화가 대한민국 위대한 기업인들의 몸에 어떻게 체화되었는지는 앞으로 더 깊이 연구할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