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싼도우핑에 세워진 싼샤댐 전경. 사진은 물을 채우기 이전의 모습으로, 물을 채운 후에는 이처럼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려워졌다.
필자는 용머리 배 위로 올랐다. 쏜살같이 달리는 배 주변으로 스치는 풍경은 1년 만에 너무나 바뀌었다. 아무도 살지 않던 산 위에 새로운 도시가 생겨나고, 아래 도시들은 물이 차면서 차례차례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싼샤댐은 중국에 무엇을 가져다줄까.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긴다.
신화시대에 홍수는 하늘이 인간을 벌하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위안커(袁珂)가 정리한 ‘중국신화전설’의 앞부분에 나오는 인물은 그리스신화의 제우스에 해당되는 ‘황제’다. 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 황제에 버금가는 인물로 우왕(禹王)이 등장한다. 그가 치수의 왕이기 때문이다.
창강이나 황허(黃河)는 상하류의 고도차가 거의 없는 강이다. 때문에 태평성대로 대표되는 요순임금이라고 할지라도 홍수를 피하기 위해 수많은 지역을 전전해야 했다. 이런 하늘의 권위에 도전한 첫 인물은 곤(툠)이다. 그는 천제에게서 식양(息壤)이라는 법보(法寶)를 훔쳐서 치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곤은 치수에 실패했고, 그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바로 그 곤의 옆구리에서 우(禹)가 태어난다.
우왕은 중국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존재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인류 문명의 기원이다. 중국인들에게 치수는 중국문명의 기원이다. 우왕은 운화부인에게서 치수의 비법이 적혀 있는 책을 받았다. 그는 또한 스스로 곰이 되어 물길을 트는 방법으로 치수에 성공한다.
CCTV의 흥분된 물막이 중계
싼샤는 현대판 신화다. 2003년 6월1일 오전 9시 싼샤댐은 물 채우기에 들어갔다. 댐 안으로 초당 1만2000㎥씩 들어오는 물 가운데 5040㎥만 댐 밖으로 흘려보내, 댐에 서서히 물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창강의 물길은 순식간에 댐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고, 오후 2시 댐 안쪽 수위는 107.08m까지 올라갔다.
중국인들에겐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보도하던 CCTV 기자는 자못 흥분하며, “싼샤댐은 수대에 걸쳐 분투한 중화민족의 성과가 농축된 것입니다. 부흥하는 민족의 미래를 증명합니다”라고 말했다. 물은 상류로 서서히 올라가면서 전체적으로 수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후 댐 관리소측은 안전 점검을 위해 수위를 조절하면서 서서히 올려 예정대로 15일에는 135m에 도달했다. 이후 창강은 완만한 U자형에서 서서히 평행을 유지해 지금은 충칭지역의 수위도 상승시켰다. 이제 싼샤댐에서 충칭까지 662km의 물길은 강이 아닌 거대한 호수로 변모했다.
16일 5단계로 만들어진 갑문을 통과해 ‘선주(神州)호’가 처녀 통행에 성공했다. 댐 건설을 위해 200일 동안 단절시켰던 창강 수운을 재개시키는 신호탄인 셈이다. 이후 6월18일부터 7월21일까지 600여 척의 배가 싼샤를 무사히 통과했다.
7월10일 댐측은 발전 2호기를 72시간 동안 시험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물 채우기, 선박 통행, 발전기 가동 등 3대 핵심 기능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된 것이다. 싼샤댐 공사는 성공한 듯 보였다.
싼샤댐은 1992년 공사가 시작됐지만, 그 구상은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은 1894년 당시의 실세 리훙장(李泓章)에게 치수를 위해 수력발전을 권고하는 글을 올렸고, 1917년에는 구체적으로 싼샤댐 건설에 관한 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