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 기계화사단 전차들이 허난 지역의 군사훈련 ‘꿰샨 2006’을 위해 열차로 수송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즉각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미 국방부는 5월25일 배포한 ‘중국 군사력에 관한 연례보고서(Annual report on the military power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에서 ‘중국이 여전히 국제사회의 군사적 균형을 파괴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대국으로서의 패권을 추구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사흘 뒤 성명을 통해 ‘미국이야말로 중국 군사력 증강을 과대평가하고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는 향후 군사 및 무역관계를 증진하려는 의도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0년대부터 맹위를 떨쳐온 해묵은 중국 위협론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최근의 흐름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는 미국의 대(對)중국관과 이를 경계하는 중국의 대(對)미국관이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점, 중국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프리카의 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6년이 다 돼가는데도 여전히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환율조작이나 지적재산권 침해 등 무책임한 행동을 계속함으로써 세계의 안보와 안정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중국도 할 말은 있다. 미일 안보동맹이 자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여전히 대만을 지원하는 미국의 행동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반감,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해 중국 국내정치에 혼란을 야기하는 이른바 ‘화평연변(和平演變)’을 시도하고 있다는 경계심 등은 꾸준히 양국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어왔다. 이러한 흐름이 급기야 위협론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최근의 형국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중국을 장래의 도전세력 또는 국제질서의 균형을 깨뜨리는 현상파괴세력으로 보는 이른바 ‘중국 위협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중국의 부상과 발전을 과대평가하고 있고 현재의 상황에 미래의 가능성을 억지로 꿰어 맞춰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중국 위협론’은 과연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의 일환에 불과한가. ‘위협론’과 이를 반박하는 ‘기우론’ 모두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예측하는 귀납법적인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두 가지 주장 모두 현재 중국의 발전이 괄목할 만한 것이고 향후 지역 내 안정뿐 아니라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엿보인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넘어설 때
중국 위협론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 8월 일본방위대학의 무라이(村井友秀) 교수가 ‘제군(諸君)’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중국, 잠재위협을 논함’이라는 논문에서였다. 미국에서는 1992년 ‘폴리시리뷰(Policy Review)’ 가을호에 로스 먼로 교수가 ‘깨어나고 있는 거룡(巨龍), 아시아의 진정한 위협은 중국으로부터 온다’라는 논문을 게재하면서 ‘중국 위협론(China Threat)’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학계와 언론계, 군사 및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 위협론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중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게 된다. 1995년과 1996년 미국은 홍콩 반환으로 자유세계가 전체주의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중국 위협론을 재등장시켰고, 1997년에는 이를 극명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리처드 번스타인과 로스 먼로의 ‘다가올 중국과의 일전(Coming Conflict with China)’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