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0일 성 김 미 국무부 한국 과장이 핵 자료가 든 박스를 들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고 있다.
북한 핵 문제가 단적인 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이 오로지 표면상 목표인 북핵 문제 해결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단정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은 북핵이 제거되는 과정을 누가 주도할 것인지, 그 결과 북핵 해결 이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누가 행사할 것이며 북한의 미래상을 누가 주도적으로 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저마다의 전략을 염두에 두고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런 점에서 주변국들에게 북핵 자체는 ‘게임’을 벌이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프롤로그’의 내용은 최근 날짜 중 무작위로 골라잡은 6월12일 하루 동안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뉴스들이다. 이런 뉴스들은 다분히 해당 국가들이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영역’이다. ‘드러내는 영역’ 중에는 현안을 에둘러 표현해 게임의 상대방에게 자기 패를 슬쩍 내보이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아무튼 그 배경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이들 국가들이 ‘감추고 싶은 영역’의 일단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① 6월 10~12일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평양을 방문했다. 회담 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의 핵시설 무력화(불능화)를 결속(마무리)하는 데 나서는 기술실무적 방도와 그에 따른 정치경제적 보상 완결 문제가 토의됐다”고 밝혔다. 판문점을 넘어 서울로 돌아온 성 김 과장도 “핵시설 불능화와 관련해 매우 좋은 논의를 했다”고 화답했다. 양측 모두 ‘공개적으로’ 앞으로의 북핵 프로세스에 낙관론을 밝히고 있다.
북핵 협상은 그동안 지지부진을 면치 못해왔다. 심지어 지난 5월10일 성 김 과장이 평양에서 1만8000쪽에 달하는 북핵 자료를 인수받아 나온 뒤에도 수시로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렸다. 그러던 협상이 6월에 들어와 분명하게 드러난 계기도 없이 급물살을 타는 듯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된 ‘드러나지 않은’ 배경은 무엇일까?
② 6월 11~12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회의가 열렸다. 6월 초 양측이 비공식 접촉을 가진 데 이어 열린 공식회의다. 납치자 문제는 그동안 양측이 한 치 양보 없이 맞서왔던 거대한 암초였다. 그 암초가 바야흐로 치워지려는 참이다. 궁금한 건 공개된 소스만으로는 양측 입장에 변화를 가져온 직접적인 ‘동력(動力)’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③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평양 방문은 6월 초부터 기정사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첫 해외 행보로 북한을 택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행차는 여러모로 각별하다. 봄부터 외교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을 둘러싼 소문이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시 부주석의 평양행 보따리엔 식량지원 이외에 또 무엇이 들어 있을까.
④ 가장 흥미로운 게 6월10일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김정일 방중 25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다. 이런 유의 행사는 전통적인 혈맹(血盟)관계라는 북·중 관계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 류홍차이(劉洪才) 대외연락부 부부장 등 중국 측 고위인사들이 참석해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25주년을 기념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두 나라가 이 행사를 통해 대외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각각의 뉴스를 별개로 떼어놓고 읽어서는 큰 구도가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을 무대로 나오는 뉴스들은 대부분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부터 지난 두 달간 나온 뉴스와 물밑 정보들을 종합해 이 복잡다단한 다차원 방정식을 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