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트럼프 비서실장’ 존 켈리의 방향 바꾼 애국

[백승주 칼럼]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前국회의원

    입력2024-03-2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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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든 행정부가 장군 진급자 인솔 맡겨

    • 고위직 지낸 인사가 후배 장교에 통찰 제공

    • 올해 2월 장군 진급자들과 함께 한국 방문

    • 자유민주주의 기반 통일 여건 조성해야

    2018년 6월 27일(현지시간) 존 켈리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있다. [뉴시스]

    2018년 6월 27일(현지시간) 존 켈리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있다. [뉴시스]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관련 뉴스가 국민의 눈과 귀를 잡았다. 임종석은 누구인가.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이다. 586세대에게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운동권 핵심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재선의원으로 상당 기간 민주당의 한 축이었다. 지금도 정치 지분을 갖고 있다. 2017년 10월 13일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 만기 연장을 위해 비서실장으로서 세월호 보고서 조작의혹을 직접 폭로하는 등 도를 넘는 정치 행적을 많은 이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가 민주당 새 지도부에 의해 공천에서 배제(컷오프)되는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지켜봤다. 우리 국민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권력 무상이 여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야당에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권력과 무상은 쌍생아다. 권력 무상은 어떤 권력자에게든 언젠가 죽음처럼 찾아가게 마련이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줄다리기하던 기간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2기 비서실장이자 1기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낸 존 켈리가 미국 국방대 캡스톤그룹(Capstone Group) 한국 방문단의 인솔단장, 정확히 말하면 선임장교(Senior fellow)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캡스톤그룹은 미국 국방대가 장군진급반을 위해 운영하는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말한다. 전쟁기념사업회를 찾은 켈리 전 비서실장과 캡스톤그룹 장성들을 만나, 환담하면서 필자는 켈리 전 실장의 ‘방향 바꾼 애국’을 생각해 봤다. ‘방향 바꾼 전진’은 6·25전쟁 기간 중 장진호 전투에서 스미스 해군 사단장이 한 말이다. 미국 해병대가 ‘후퇴’라는 말이 없다는 슬로건을 제대로 지키면서 살아남도록 돕기 위해 스미스는 ‘방향 바꾼 전진’이라는 신조어로 사방에 포위된 부대의 생존로를 후방으로 개척했다. 그 말이 생각났다.

    한미동맹 강화 디딤돌, 캡스톤그룹

    캡스톤은 ‘건물 현관문의 맨 윗부분에 있는 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캡스톱그룹 교육과정은 1982년 미국 국방대학원(IISS)에서 장군 진급자들을 대상으로 처음 시도됐다. 1986년 이후에는 장군 진급자들은 반드시 이수하도록 의무화했다.

    연간 4회 정도 실시되는 5주간의 교육과정 중 2주 동안은 아시아·유럽·중남미 팀으로 나눠 해외 주요 국가를 순방한다. 캡스톤그룹에 속한 미국 진급 장군들은 교육 기간 중 국가의 안보정책 결정 과정, 주요 동맹국 관련 사항 등을 주제로 강의·토론·견학 등을 실시한다. 그룹별 외국 방문 시 자국의 지휘관과 주재 대사, 방문국 국가와 군의 주요 인사들과 면담을 갖고 군사 외교도 수행한다.

    매년 4개 팀으로 나눠 먼저 3주간 미국 전역을 돌아본 뒤 다시 3개 그룹으로 재편성해 아시아·유럽·중남미 등 해외순방에 나선다. 아시아의 경우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태국·호주 등이 주요 방문 대상국이다. 캡스톤그룹의 한국 방문은 1985년 이래 계속돼 왔다. 그간 1000여 명의 미군 장성이 한국을 다녀갔다. 이들이 한미동맹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은 불문가지다. 진급하자마자 한국 국방부 장관 등 우방국 최고지도자, 군사지도자를 만나 대화할 기회를 가진 것이다. 캡스톤그룹 프로그램이 한미동맹 강화에 디딤돌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다.



    도제식 교육

    존 켈리는 사병 출신 해병대 사령관으로 2016년 은퇴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1기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2017년 7월 31일부터 2019년 1월 2일까지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일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그에게 바이든 정부가 장군진급반 해외교육 인솔단장 역할을 맡긴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문재인 정부의 안보실장을 윤석열 정부의 진급장교 인솔팀장, 공공외교팀장으로 위촉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의 우리 정치 문화에서는 꿈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트럼프의 비서실장이 바이든 정부 장군진급반의 전략교육, 해외연수를 이끄는 것은 미국이 중장기 안보 이익 구현을 보장받는 데 몇 가지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된다. 첫째, 향후 미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워싱턴의 핵심 이익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할 장군들이 정치지도자들의 전략적 고민을 밀착해 학습할 수 있다. 백악관의 비서실장은 미국 대통령의 분신이다. 그런 점에서 비서실장은 전략적 고민과 선택지를 어떤 측면에서는 대통령보다 더 폭넓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캡스톤그룹은 켈리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과 고급장교단이 전략적 사고를 공유하면서 운명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플랫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둘째, 미국 고급장교들이 동맹국 지도자들의 전략적 마인드를 직접 이해할 수 있다. 캡스톤그룹은 방문국의 국가지도자, 군사지도자들을 만나는 일정을 잡는다. 올해 2월 한국을 방문한 팀도 신원식 국방부 장관 등 많은 지도자를 만났다. 방문국에서 소화할 일정을 짜는 과정에서 켈리의 국제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진급한 장군들이 특정 지역 및 국가에 배치돼 근무하면서 그 지역 최고지도자들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그런데 미국 진급 장군들은 임무를 맡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그들 지도자를 만나 대화하게 된다. 향후 전략적 판단과 임무 수행에 엄청난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미국 고급장교단 상호 간 인식 공유다. 교육과정, 특히 해외 방문에서 지속되는 대화를 통해 장교단 각자가 가진 전략적 마인드와 리더십이 일상적으로 교환될 것이다. 켈리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는데도 캡스톤그룹 해외 교육과정을 인솔하는 단장이 된 데는 운영 규정상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르면 은퇴한 4성 장군은 캡스톤그룹 프로그램에 선임장교로 참여할 수 있다. 켈리는 해병대 대장 자격으로 그 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잘 아는 태평양사령관 출신 전 주한 미국대사 해리 해리스 등 40여 명이 이 리스트에 위촉돼 있다.

    바쁜 일정에도 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후배 장교를 위해 장기간 해외 여정에 동참하는 것도 솔직히 부럽다. 시니어 장교단의 교육적 기여는 캡스톤그룹 참가자와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데 두고 있다. 일상적 접촉을 통한 교육 방법도 눈길을 끈다. 고위직을 지낸 인사의 특강이나 강연을 통한 기여가 아니라 일상적 접촉을 통해 경륜을 전수하고, 새로운 성찰을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다. 큰스님과 시자 간 교육 방법과 흡사하다. 미국 최고의 고등 군사교육 프로그램에 우리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도제 교육 방법이 녹아 있는 것이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월 29일 텍사스주 이글 패스에서 미국-멕시코 국경을 지키는 주 방위군 대원들을 맞이하고 있다. [뉴시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월 29일 텍사스주 이글 패스에서 미국-멕시코 국경을 지키는 주 방위군 대원들을 맞이하고 있다. [뉴시스]

    방향 바꾼 애국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의 대선 출마를 막을 수 없다는 판결을 3월 4일 내렸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는 거의 소멸됐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보면 당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일부 국민은 켈리 전 비서실장의 방한을 새로 출범할지 모르는 트럼프 정부에 접근할 루트로 개척하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난센스다. 켈리는 이미 트럼프와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해병대사령관 출신 켈리는 장진호 전투에서 스미스 해병사단장의 용어대로 ‘방향을 바꾸어 애국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2023년 10월 2일 CNN 성명을 통해 트럼프를 직격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민주주의, 헌법, 법치를 경멸하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트럼프가 미국의 참전용사와 그 가족을 가리키는 ‘골드스타 패밀리’에 대한 폄훼를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참전용사들에게 빈번하게 패배자(loser), 멍청이(suckers)라고 조롱했다. 심지어 공화당 지도자인 존 매케인까지 조롱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 같은 조롱으로 매케인 가족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그것이 재선을 막았다는 분석도 있다. 평생 군에 복무하면서 전선을 지킨 해병대 대장으로서 지닌 자부심 덕분에 켈리가 트럼프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2010년 11월 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임무 수행 중 지뢰를 밟아 전사한 그의 둘째 아들 로버트 마이클 켈리의 비극을 생각하면 참전용사를 조롱하는 트럼프와 정치적 결별을 수긍할 수 있다. 전쟁기념사업회를 방문해 미국 매사추세츠주 전사자 명부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선조인 아일랜드계 출신이 많음을 확인한 후 낮은 목소리로 말할 때 눈가에 고인 애국심과 결기가 잊히지 않는다.

    켈리의 증언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7년 집권 초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했고, 북한에 대한 핵 공격을 거론했고,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이후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핵 공격 구상에 대해 인명피해 규모보다 경제적 후폭풍 때문에 그 구상을 철회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짜증을 냈고, 2018년 1월에는 한반도 거주 미국인 전체의 철수를 지시했다가 철회했다는 게 켈리의 주장이다. 그의 증언 하나하나를 되돌아보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트럼프의 좌충우돌 대북 구상은 백악관 참모들에 의해 진정됐다고 한다. 장관, 비서실장으로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한 켈리 또한 위험한 정책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제어를 넘어 트럼프를 직격하고 있기에 일부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손을 보고 싶은 첫 번째 인사’로 켈리를 거론한다. 그렇기에 켈리를 통해 트럼프에 접근하는 노력은 실효를 기대하기 힘들다.

    자유민주주의 확산 절실

    켈리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근무한 기간에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2018년 6월 12일 한반도 정세 변화에 큰 변곡점이 될 것 같은 기대가 커졌다. 당시 우리나라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싱가포르 회담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는 대외적 환경을 만들었다. 트럼프는 우리 정부와 의논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은에게 일정 규모 이상의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말하는 등 많은 약속을 했다. 결과적으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흔들렸는데도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이었다. 한반도 군사 정세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북한 핵무장은 강화되고, 남북관계는 교착 국면이 이어졌다.

    방문단에게 여러 질문을 준비했지만 필자는 켈리 단장에게 조크성 질문을 던졌다. “미국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대 정당이 경쟁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두 개 거대 정당이 경쟁하고 있다. 북한에도 두 개 정당이 권력 경쟁을 하고 있는데 알고 있는가?” 그 질문에 켈리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필자는 북한 정세를 함축해 설명하기 위해 북한식 양당 체제 경쟁을 조크성으로 거론한 것이다. 내외 정보를 종합하면 ‘북한 내부에 장마당이라는 또 하나의 당이 세력을 얻어 노동당과 싸우고 있다. 점차 장마당이 노동당보다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장마당이 노동당을 이기는 상황이 오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산되는 그러한 통일 여건이 올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근무하게 될 미국 진급 장군들이 현 상황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을 갖지 말고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일 여건을 만드는 데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필자의 주문이 담긴 메시지를 미국 장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3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를 통해 통일 준비를 강조했다. 우연히 필자는 미국의 진급 장군들에게 통일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대한민국 진급 장군들이 경륜 있는 국내외 고위 지도자들과 국가전략을 일상적 접촉을 통해 함께 고민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통찰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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