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의대 서유헌(徐維憲·59) 교수는 뇌 연구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권위자다. 서 교수는 인턴을 마친 직후,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의 길을 접었다. 기초의학자로서 뇌 연구에 사활을 걸겠다고 다짐했기 때문. 그는 외골수로 뇌만 연구하기로 결심한 끝에 지난해에는 치매를 일으키는 새로운 유발인자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서 교수는 꽤나 분주하다. 우리나라 최초로 ‘뇌 연구원’을 설립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뇌연구원추진기획단’ 단장직을 맡은 후 “의학과 생명과학뿐 아니라 인공지능 인지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뇌를 연구해 원인을 모르는 뇌 질환을 연구하고, 뇌가 기억 지능 감성을 어떻게 컨트롤하는지를 국가 차원에서 연구하겠다”고 발표했다.
뇌 연구 관련법을 마련하고 국가 차원의 뇌 연구소를 만드는 등 20년 전부터 뇌 연구에 정책적 지원을 하는 한편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 그나마 10년 전 서 교수가 중심이 돼 ‘뇌 연구 촉진법’을 제정한 후 정부가 국가 차원의 ‘뇌 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10월2일 목요일 오후 3시. 서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 의과대학 본관을 찾았다. 기자는 인터뷰 주제를 ‘뇌’로 해놓고선 발걸음이 무거웠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복잡한 뇌에 대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앞이 아득했다. 온 세상은 연예인의 잇단 자살소식으로 우울하고 멍하게 마비된 듯했다.
최진실씨도 뇌의 병을 앓았다?
▼ 우울증이 참 무서운 질환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우울증 환자 중) 3분의 1이 자살해요. (우울증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요한 뇌 질환입니다.”
▼ 일종의 정신병도 약물로 치료가 된다는 얘기인가요.
“네. (우울증은) 마음(뇌)의 통증 같은 겁니다. 약 먹고 치료를 받으면 극복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심장이 나빠지고 간이 나빠지면 검사하고 약을 먹으면서, 뇌에 오는 병인 우울증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거나 창피하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차’하는 순간에 자살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 고(故) 최진실씨의 경우 사채업 괴담 때문에 감정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 없었다면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던 문제 아닌가요.
“그랬을지 모르죠. 복잡한 과제를 풀어나갈 때 우울한 사람보다는 명랑한 사람이 훨씬 잘 풀어나갑니다. 이성의 뇌와 감성의 뇌가 따로따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감성의 뇌는 이성의 뇌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틀렸어요. 이성과 감성은 동등합니다. 감정적으로 월등한 사람이 이성적입니다. 감정과 본능이 서로 같이 충족되어야 이성의 뇌가 제대로 작동해요. 기분이 좋을 땐 뇌의 신경회로가 막힘이 없어요. 문제 처리를 위해 기억 속에 보관한 모든 정보를 동원시킬 수 있거든요. 하지만 기분이 나쁠 땐 신경회로가 막혀서 잘 흐르지 않아요. 또 기분이 좋을 땐 신경전달물질이 원활하게 작동됩니다. 우울증이 심하면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기능을 못합니다.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주체는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면 뇌 명령체계가 부분적으로 무너져요.”
뇌는 온몸의 신경을 지배한다. 우리 몸에 퍼져 있는 수천조에 이르는 세포가 모두 뇌로 집합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뇌에는 1000억여 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들 사이에는 일정간격으로 끊어진 틈(시냅스·200만분의 1mm)이 있다.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틈(시냅스)에 분비돼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노릇을 하는 것이다. 끊어져 있는 신경회로 사이로 신경전달물질이 나와 마치 마라톤을 하듯 달려가 각종 흥분이나 감정상태를 전달하게 된다. 좌쪽 회로 끝에서 보내온 명령어를 우쪽 회로 입구까지 전달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