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다른 형’이 아니라 ‘돈키호테형’이냐고 물었어야 했겠지만 부정적 의미가 강한 단어를 장관에게 직접 빗대는 건 아무래도 결례 같아 에둘러 물었다. 스타 연기자 출신으로 장관직에 오른 뒤 그는 돈키호테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의 발언들은 앞뒤가 잘린 채 수없이 인용되며 큰 파장을 몰고 다녔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정부 산하기관장 사퇴 요구, 민영미디어렙 도입 발언, 한국방송광고공사 폐지 발언, 종교 편향 시비, 언론사 지원 중단 발언 등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햄릿과 돈키호테가 먼저 떠올랐던 것은 그가 그 인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계에서 햄릿 연기로 손꼽히는 배우였다. ‘햄릿’을 네 번이나 상업무대에 올렸고, e메일 아이디도 ‘hamlet2005’로 쓰고 있다. 햄릿의 성격 연구로 석사 학위까지 받은 이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마치 햄릿처럼 잠시 고개를 젖히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9월2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위원회에 출석한 유인촌 장관(오른쪽)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장관의 말을 감안하면 활기차고 저돌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를 이끌어가는 돈키호테형 장관의 이미지를 떠올린 기자의 판단이 영 어긋난 것은 아닌 셈이다. 사실 그는 2월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좋아하는 연극 대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읊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즉 돈키호테의 행동철학이 그의 좌우명인 셈이다.
전임 장관이 누구였는지 이름도 가물가물한 상황이지만 유 장관은 짧은 기간에 자신이 대한민국 문화부를 이끄는 수장임을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켰고, 7개월 재임기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런 유 장관 인터뷰를 통해 최근 화제가 됐던 그의 발언들의 배경과, 달라진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을 짚어보고, 앞으로 이 나라가 어느 정도의 문화국가가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해봤다.
‘인터넷 불특정 다수의 힘이 너무 세다’
10월3일 ‘하늘이 열린 날’ 오후 서울 광화문 문화부 청사에서 유 장관을 만났다. 그는 역시 일반적인 관료들과는 많이 달랐다. 인터뷰 장소도 장관실이 아니라 앞마당 한켠으로 잡았다. 경복궁 뜰에서 인터뷰하는 것도 고려됐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취소됐다. 장관실을 나선 유 장관은 바깥바람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고, 심호흡하며 혼잣말을 했다.
“바람이 부니까 아주 괜찮네. 지금이 딱 좋을 때구나. 날씨도 좋고 기온도 적당하고.”
▼ 늘 그렇게 한가로운 마음을 갖습니까.
“지난 7개월 동안 뒤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은 더 바빠요. 참석해야 할 행사도 많고, 왜 그렇게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지…. 참, 인터뷰 끝나면 조문 가야 돼요.”
인터뷰 전날 배우 최진실씨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연예계 후배의 안타까운 소식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 최진실씨의 사망에 인터넷 악플이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르지 않은 비방이나 인터넷의 부정적 기능은 어떤 정책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을까요?
“좀 포괄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 등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IT(정보기술) 사업은 국가적으로 역점을 둬왔고, 현재 그로 인해 분명히 많은 것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악플은 바로 기술문명을 문화가 따라가지 못한 데서 온 부작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차원에서 최진실씨 문제를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유 장관은 연예계 후배의 불상사가 못내 마음이 아픈 듯했다.
“연예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민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고, 화도 잘 안 내고, 늘 가슴속으로 울면서도 밖으로는 웃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너무 심하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진실씨 사망 이후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강화를 위한 법안(일명 최진실법)이 추진되고 있다. 10월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고흥길) 국정감사장에선 이 문제가 논란이 됐다. 한나라당 측은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하므로 대책을 빨리 마련하라”고 주문했고, 민주당은 이 법안이 ‘인터넷 죽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